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창석)는 8월14일 삼성특검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를 내렸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등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특검 사건 파기환송심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던 삼성SDS BW의 적정 가격이 한주당 1만4230원이며, 따라서 배임 액수가 227억원이어서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삼성특검 사건 1심 판결이 삼성SDS 주식의 한 주당 공정가치를 9740원으로 보아, 업무상 배임으로 얻은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지 않으므로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를 들어 면소 판결을 내린 부분을 뒤집은 것이다.
삼성SDS 사건은 1999년 2월26일 신주 321만6738주(당시 삼성SDS 발행 주식의 21.1%)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BW 230억원어치를 발행해 이를 이재용 남매와 이학수·김인주씨에게 인수하게 한 사건이다. 당시 삼성SDS의 주요 주주는 삼성전자(29.9%)·삼성물산(25.3%)·삼성전기(11.7%) 등이었는데, 주주 배정이 아닌 제3자 배정 방식으로 BW를 발행해 이재용 남매가 이를 인수하게 함으로써 이재용 남매가 삼성SDS의 1대 주주가 되게 한 것이다. 이는 삼성그룹에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과 이어지는 일련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하나였다. 이 점은 삼성특검 사건 2심 판결이 삼성에버랜드·삼성SDS 모두 사채의 발행 목적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증여세 등 조세를 회피하면서 이재용 남매에게 회사의 지배권을 이전하는 데 있었다고 판단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삼성특검 파기환송심 판결의 최소한의 의미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범죄행위가 동원된 것이 법원 판결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과정을 살펴보면 얼마나 힘들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1999년 3월 경제개혁연대(당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삼성SDS BW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1999년 2월25일 삼성SDS 이사회에서 문제의 BW 발행을 결의한 직후였다. 그 뒤 1999년 11월 경제개혁연대는 삼성SDS 이사들을 고소했지만 검찰의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고, 이후 항고·재항고마저 모두 기각됐으며,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헌법소원까지 냈는데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이 삼성SDS 주식을 취득한 날짜가 범죄행위 완성 이후라 하여 “자기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의 문제 제기로 1999년 10월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SDS 사건에 대해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하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삼성SDS가 과징금납부처분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2001년 7월에는 국세청이 4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재용씨 등은 증여세부과처분취소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도중 항소를 취하했다.
국세청의 증여세부과처분을 보고 경제개혁연대는 2001년 9월3일 삼성SDS 이사들을 다시 고소했으나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렸고, 또 항고·재항고를 거쳐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2003년 6월26일 끝내 기각결정이 내려졌다. 이유는 단 한 줄, “검사의 수사가 현저하게 형평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피해액 변제 과정 투명하게 밝혀야과연 그런가? 검찰은 경제개혁연대의 두 번에 걸친 고소에 대해 항고·재항고를 거치면서 단 한 차례도 피의자 소환조사를 하지 않았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경우 법인주주 회사들의 대표이사들에 대해 2000년 6월30일 고발장이 접수됐는데도 무려 6년이 지나도록 방치하다가 2006년 12월2일자로 공소시효가 완성됐듯, 삼성SDS 사건도 부실 수사의 전형이었다. 이후 2005년 10월 삼성에버랜드 사건 1심 유죄판결 뒤, 경제개혁연대는 세 번째로 삼성SDS 이사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별다른 수사 없이 방치되다 삼성특검의 수사 대상이 되면서 이건희 전 회장 등이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기소 이후 삼성SDS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기상천외했다. 1심에서는 제3자에 대한 BW의 헐값 발행이 배임 행위인 것은 맞지만 손해액이 50억원에 미치지 못해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를 들어 면소판결을 내렸다. 2심에서는 아예 배임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에 이르러서야 배임 행위도 맞고 손해액도 최소한 227억원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도 면소판결을 내렸던 1심 판결과 양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차이가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이건희 전 회장이 구속되는 일은 없도록 하기 위한 검찰과 사법부의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파기환송심 판결은 집행유예를 선고한 중요한 참작 사유로 이 전 회장이 삼성SDS에 피해액 이상을 회복시켰다는 점을 들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가 된 것은 이 전 회장이 삼성SDS에 공소장 기재 피해액인 1539억원을 지급했다는 확인서였다. 하지만 이 확인서를 과연 믿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미 가 이에 대해 허위 변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삼성SDS 사건 1539억원과 삼성에버랜드 사건 969억원 등 총 2508억원이나 되는 돈에 대해 금융거래 기록 등 객관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고 계열사 사장이 그룹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하는 서류 하나로 피해 회복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삼성SDS나 삼성에버랜드의 회계상으로는 그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2508억원이나 되는 돈의 재원 마련에서부터 실제 지급 여부까지 삼성은 국민들에게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쨌든 실제 처벌 효과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희 전 회장에게 227억원 상당의 배임죄 유죄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재용씨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재용씨가 이를 극복하자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이건희 전 회장 부부가 공식적으로 보유한 6조6천억원 상당의 주식 등 재산을 자녀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불법·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특검이 차명재산·미술품 합법화해줬는데…
삼성특검은 이건희 전 회장에게 삼성생명 주식 등 차명재산과 에버랜드 수장고 미술품 등을 합법화해주는 혜택을 안겨줬다. 삼성특검 직후 이 전 회장은 특검 결과 밝혀진 자신의 차명재산 4조5373억원 중 삼성생명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좋은 곳에 쓰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필자가 개인적 취향에서 그 ‘좋은 곳’ 중 하나로 꼭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삼성특검 과정에서 드러난 에버랜드 수장고의 미술품 수만 점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구겐하임미술관처럼 경기 용인의 그 넓은 땅에 제대로 된 미술관을 지어 이건희 전 회장 부부의 컬렉션을 공개하는 건 어떤가? 삼성이 용인에 건설하는 관광단지 조성에 시너지 효과도 생길 수 있고,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아 국가적 관광 수입 증대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본다. 삼성특검이 그 많은 미술품의 구입 자금을 따지지 않고 이건희 전 회장의 재산으로 만들어주었는데, 국민이 감상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한다.
김영희 변호사·경제개혁연대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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