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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민을 타격하다

[특집1] 진보의 눈물마저 폭력으로 짓밟은 극우… 그 뒤엔 웃고 있는 정부의 그림자
등록 2009-07-02 14:17 수정 2020-05-03 04:25

2009년 서울 복판에서 민(民)이 민(民)을 직접 단죄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 6월24일 새벽 보수 성향 단체인 애국기동단(국민행동본부 산하)과 고엽제전우회 소속 50여 명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부쉈다. 4분 걸렸다. 경찰은 지켜보았고, 오후 2시가 넘어 서울 중구청 직원은 부서진 천막을 회수하며 말끔하게 뒤처리를 했다.

지난 6월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가 보수단체 회원들에 의해 파괴됐다. 이들은 4분 만에 모두 부순 뒤, 영정을 갖고 철수했다. 남대문경찰서에 영정을 건네려 했으나 거부돼 봉하마을에 직접 택배로 보냈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 6월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가 보수단체 회원들에 의해 파괴됐다. 이들은 4분 만에 모두 부순 뒤, 영정을 갖고 철수했다. 남대문경찰서에 영정을 건네려 했으나 거부돼 봉하마을에 직접 택배로 보냈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분향소 지킴이 “네 차례 공격당했다”

마침내 보수 아니 수구가 ‘선방’을 날렸다.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시기, 극단으로 이념을 달리하는 민간이 좌우 따라 세력화하며 법 테두리 밖에서 서로를 응징하던 시절 이래 처음이다. 공권력을 불신하며 자신들의 ‘정의’를 손수 구현하려는 이들의 태도는 미국의 인종차별 폭력단체 KKK나 유럽의 신나치가 자행한 ‘백색 테러’와 닮았다. 최근의 양상은 1960년대부터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민간 세력이 화염병을 던지고 파이프를 휘두를지언정 오직 공권력을 상대로만 저항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올해 5월이 진보 세력의 눈물로 젖었다면, 6월은 보수 세력의 폭력으로 얼룩졌다. 지난 6월20일 인천 중구 동인천역 광장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도 공격당했다. 이날 낮 12시께 시민 상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현수막과 천막 안 물건들이 분향소 1m 앞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영정만 살았다. 분향소를 다시 세웠으나 이튿날 또 칼에 찢겨 있었다. 지난 5월25일부터 자비를 들여 분향소를 차리고 지켜온 정아무개(54)씨는 “모두 네 차례 공격을 당했다”며 “평소 지나가며 시비를 거는 보수 세력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후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당초 보수 기득권은 길 위에 있지 않았다. 노상에 권력과 이익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가 집 밖으로 나와 궐기를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반핵·반김’은 체화된 본능이며 이념이었다. 그런데 대북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도 길 위의 보수는 귀가하지 않았다. 이제 대신 ‘상식’과 ‘법’까지 선점·지배하려 한다.

나아가 보수 세력은 대놓고 공권력을 자임하며 물리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선방’은 원래 겁먹은 자가 날리는 법이다. 잇따른 공격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 이후 수세에 몰린 보수의 반격이란 얘기다. 오창은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현 정부를 자신의 정부라고 생각해온 이들이, 촛불·서거 정국을 지나며 정권이 힘을 잃은 때를 적기로 삼았다”고 평가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도 “(진보 진영이 잠잠해진 때) 공을 세우려는 단기 셈법”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보혁 갈등 증폭시켜”

이렇게 ‘보수 선봉대’의 뒤에는 공권력이란 배후가 있다. 공권력은 최근 진보 세력의 집회는 원천 봉쇄하고, 보수 세력의 공격은 사실상 방임해왔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정부가 특정 집단은 강하게 통제하고 어떤 집단에는 폭력마저 허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사회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국가가 보혁 갈등을 조장·증폭시키고, 결국 국민운동본부가 애국기동단까지 발족했을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결국 뒷짐 지고 코를 푼다는 얘기다.

정부는 아예 전쟁을 불사한다. 공안 정치와 문화 통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며 군사정권 시대로의 회귀를 노골화한다. 현 정부는 ‘정권 나팔수’ 대한늬우스를 15년 만에 부활시켰다. 국민적 반대에 직면해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 홍보 내용을 담은 대한늬우스는 전국 190개 상영관에서 상영된다. 예전 대한늬우스는 정부 홍보 매체라는 비판과 급속도로 커진 대중매체와의 비경쟁력을 이유로 1994년 폐지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름만 땄을 뿐 내용과 형식은 전혀 다르며 상영 기간도 한 달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내용과 형식이 뭐든, 같은 이름, 같은 방식의 정부 홍보 자세에 실소한다. 보수 지식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조차 “우리가 대학 다니던 때도 대한늬우스가 끝날 즈음 영화를 보러 갔다”며 “정부와 뇌 구조가 달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군사정권으로의 회귀가 아닌, 군사정권에서의 지체다. 그 세계 상상력의 결정체가 ‘대한늬우스’다.

한편 정부는 편파 광고를 무기로 비판언론 길들이기를 넘어 비판언론 말리기 수순으로 돌입했다. 문화방송은 정부의 대국민 신종플루 홍보 광고를 1회도 따내지 못했다. 방송 3사 가운데 유일하다. 이렇게 정부 비판 방송에 대해 안으로는 광고 차별을 통해 ‘궁지’로 몰아넣고 밖에선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며 ‘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역시 이것도 보수 세력이 그만큼 위기에 처해 있음을 내보이는 것이란 분석이 많다. 설득을 포기하고, 설명과 겁박의 방식만 변주·강화하는 배경이다.

심지어 자신감을 잃은 정부는 민간을 통한 간접 통제까지 한다는 의혹을 받는다. 연세대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 콘서트를 거부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축제나 문화제 형식을 띠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십중팔구 소요로 번졌다는 1980년대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내내 비등거리며 치러졌던 6·10 집회도 그저 노래하고 웃는 축제였다. 박기수 한양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국민들은 무시당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정권은 친위대를 세워 일방통행을 하며 점점 더 고립돼간다”고 지적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현재 집회에 최루탄과 화염병이 등장하지 않는 건 그게 하나의 상징이고, 그걸 던지는 순간 과거로 돌아갔다는 의미이기에 안 하는 것”이라며 “문화행사 탄압은 이 정권이 독재정권이라는 마지막 상징마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공권력의 침묵에 기댄 분향소 철거와 미디어 옥죄기는 하나로 통했다. 대한문 앞 분향소가 철거당한 당일, 직접 철거를 도왔던 고엽제전우회는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로 달려갔다. “마찰이 없었고, 다친 사람도 없었”는데 왜곡 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사장을 면담하겠다며 본사 진입을 시도하던 회원들은 몸싸움을 감행했고, 한 회원은 “방송사에 쏘겠다”며 가스총을 꺼냈다. 이들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 정정하겠다는 취지의 임원진 약속을 받고서 집단방문 3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방송사에 쏘겠다” 가스총 꺼내

지난 6월23일, 대한상이군경회 회원 3천여 명도 문화방송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편파 보도를 했다”는 이유다. 본사 진입까지 시도하다 항의 서한을 건넨 뒤 2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보수 세력의 ‘공권력 자임’은 ‘진실과 상식의 자임’이기도 하다. 그간 대우받지 못했던 극우의 ‘인정 투쟁’이기도 하다. 다만, 왜곡 보도에 항의한다는 취지는 같으나,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진보 세력이 따졌다면, 극우보수는 혼낸다. 그렇게 길 위에서 권력을 지키려고 한다. 2004년 탄핵 반대 시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분노한 시민들 손에 쥐어졌던 촛불이 반기득권의 상식이요, 진보 진영의 새로운 ‘권력’이 되어감을 아는 까닭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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