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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실함만으론 교육 개선 버거워”

일제고사 관련 해직교사 7인 “전교조도 한계 많지만 참교육 실천의 보루인 건 분명”
등록 2009-01-08 16:30 수정 2020-05-03 04:25

“다른 선생님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혼자 유별나게 구세요?” 1989년 9월, 당시 23살이던 정상용(43·구산초등학교) 교사는 그렇게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들었다. 빗자루, 쓰레받기 등 교실 청소도구를 왜 학부모가 사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청소도 교육의 일환이고 학교 생활의 한 부분인데 당연히 학교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이상할 것도 없는,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동료 교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교장 선생님에게는 미운털이 박혔다. 그해 12월, 정 교사는 법적 근거가 없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막 창립된 전교조에 가입한 1500여 명의 교사들이 대거 해직되던 해였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합리함이 제 성실성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것에 대한 답답함이 더 컸습니다.”

해임된 뒤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던 정상용 교사. 수업이 끝난 뒤 정 교사를 찾아온 학생과 이야기하고 있다. 정 교사는 “아이들이 슬퍼하는 것이 가장 슬프다”고 말했다.

해임된 뒤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던 정상용 교사. 수업이 끝난 뒤 정 교사를 찾아온 학생과 이야기하고 있다. 정 교사는 “아이들이 슬퍼하는 것이 가장 슬프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방학숙제 때문에 또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아이들에게 아이들 특성에 맞는 개별 방학숙제를 내줬기 때문이다. “왜 저마다 다른 600명이 모두 똑같이 탐구생활을 하고 수학 문제 풀이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글쓰기 숙제를 내주고, 문제 풀이를 못하는 친구에게는 문제 풀이 숙제와 수학에 흥미를 줄 수 있는 책을 추천해주는 식으로 방학숙제를 개별화해줬어요. 그랬더니 또 교장 선생님이 부르더라고요. 왜 너만 다르냐고요.”

일제고사 반대는 20년 교육철학에서 비롯

그렇게 ‘유별난’ 교직생활 20년째에 그는 돌연 파면당했다. 20년 전,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교조에 가입할 때만 해도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국가가 치르는 일제고사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을 뿐이다. “평가를 포함한 수업권은 교사에게 있고, 학부모와 학생에게는 교육 선택권이 있습니다. 정부가 수업 자율권을 침해해놓고 되레 저를 ‘파면’한다니….” 그러나 학교라는 공간은 원래 그런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튀면 안 되는 조직’이다.

정 교사가 일제고사에 반대한 것은 그의 20년 교육철학에 따른 것이다. ‘공부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를 잘 풀고 분석을 잘하는 능력만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지는 말자.’ 그러나 일제고사는 획일적인 사지선다형 평가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시험이었다.

일제고사는 그의 수업 내용과 배치되기도 한다. 정 교사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 내용을 ‘지역화’해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획일적인 지필고사를 금지하고, 학습목표에 도달하도록 수업 내용을 각 학교 여건에 맞게 재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정 교사는 이에 맞춰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배울 때는 아이들과 인근의 거북산에 직접 간다. 거북산에 있는 풀, 곤충, 동물 등을 직접 잡거나 본 뒤 ‘먹이사슬’을 공부한다. 임진왜란을 배울 때는 학교 근처 불광동에 있는 ‘밥할머니 석상’에 아이들과 함께 간다. 임진왜란 4대 대첩을 외우는 식이 아니라 밥할머니 이야기를 통해 왜군이 쳐들어온 경로, 조선이 명나라에 군사원조를 하게 된 경위 등을 배우며 임진왜란을 익힌다. 이런 수업을 하려면 평균 3개월 이상의 교재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 나름대로 관점을 갖고 교재를 재구성해 지도안을 만든 뒤, 직접 현장 답사를 나가야 한다. 평가계획도 세워야 한다. “일제고사는 이런 교육과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저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파면 또는 해임된 다른 6명 교사의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설은주(29·유현초등학교) 교사가 맡고 있는 반 아이들에게는 ‘점수’가 없다. “등수를 매기지 않아도 아이들이 점수를 보고 서로 비교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아예 점수를 내지 못하게 동그라미, 세모, 별, 체크표 네 가지 단계로 채점을 해요. 그리고 시험지 밑에 모자란 부분과 잘한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달아줘요.”평가는 수업의 중요한 도구지만 모든 교사가 이렇게 평가하고 수업을 재구성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번에 일제고사에 반대한 교사들은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지런히 수업하고 평가했을 뿐이다. 혹은, 조금 ‘다른’ 선생님일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파면·해임된 7명의 교사들은 모두 ‘전교조’ 조합원이다. 이들에게 전교조는 어떤 의미일까?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최혜원(26·길동초등학교)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부임 첫해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1인시위를 했다가 시말서를 써야 했다. 그때 교육활동을 강건히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전교조에 가입했다. 전교조 선배들은 ‘교사의 수업권’, ‘교사의 평가권’을 포함해 그가 생각하는 교육관을 실천하기 위해 교사가 갖고 있는 권리를 알려줬다.

전교조·비전교조 안 가리고 공동 연구

함께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최혜원 교사와 해임된 뒤 방학식날까지 바깥에서 야외수업을 한 박수영 교사(36·거원초등학교), 1989년 해직 뒤 두 번째로 해직된 송용운(50·선사초등학교) 교사는 ‘참세’라는 모임에서 함께 교육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회원들이다. 정상용 교사는 지역 교사 모임도 하는데, 전교조 교사와 비전교조 교사가 두루 모여 있다. 생태환경에 관심을 두고 생태환경적으로 교과서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학습지도안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가볼 수 있도록 미리 답사를 한다. 김윤주(33·청운초등학교) 교사도 학교 내 협동학습 혁신팀에서 교재를 협동학습이라는 틀에 맞게 재구성하는 데 동료 교사들과 머리를 맞댄다.

물론 조직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정상용 교사는 “일제고사야말로 ‘참교육’에 대해 전교조가 주도권을 갖고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컨텐츠”라며 “전교조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제고사를 반대해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교조 서울지부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연가투쟁을 할 때처럼 일제고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당성도 있다. 창의적·자율적 교육으로 바뀌어가는 시점에서 오히려 역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교조 본부에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본부에서는 일단 시험은 본 뒤 시험 답안을 제출하지 말자라고 했다. 그건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이고, 실제 교사들이 이것을 이행하기는 쉽지 않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한 간부는 “나중에 체험학습 간 것에 대해 ‘본부 방침이 아니다’라고 발표했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12월23일 중학교 1,2학년에 대해 치러졌던 일제고사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자고 해직교사 몇몇이 본부에 얘기하자 돌아온 반응도 해직교사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 해직교사는 “본부에서 ‘이미 해직당한 7명으로 충분하다. 다 같이 해직되자는 얘기냐’는 식으로 대응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직교사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만이 전교조가 할 일은 아니다”라며 “‘참교육’을 다시 내세울 내용을 찾고, 그것이 일제고사든 뭐든 그에 대해 전교조가 온몸으로 고민하고 싸우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데 그걸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교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김윤주 교사는 “이번에 일제고사 반대가 전교조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교조라는 조직을 통해 바람직한 교육관을 공유해온 교사들이었기에 실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전교조가 그동안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이번에 일제고사 반대는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을 물었는데,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줬다. 전교조가 학생·학부모와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교육관을 공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인식하는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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