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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위한 비판은 달게 받겠다”

정진후 새 전교조위원장 “양심적 교사 압박 위해 교원평가제 악용 우려”
등록 2009-01-08 15:39 수정 2020-05-03 04:25
정진후 새 전교조위원장

정진후 새 전교조위원장

정진후 신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제14대)은 직접 커피를 내왔다. 그는 지난 12월11일 결선 투표에서 총투표자 5만7천여 명 가운데 3만여 표를 얻어 당선됐다. 그러나 “여러 현안이 있어 아직 집행부도 제대로 인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는 뉴라이트 단체들이 전교조를 이적단체로 고발한 사건에 대한 경찰의 출석 통지서를 받아 읽기도 했다. 안팎의 여러 난제 앞에서 고심 중인 정 위원장을 지난 12월30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전교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 집행부의 슬로건이 ‘학부모 곁으로, 아이들 속으로’였다. 이번 선거 때는 ‘고립을 넘어 변화의 중심으로’를 모토로 내걸었다.

=전교조의 궁극적 목적은 참교육 실천이다. 전교조가 가장 관심을 둬야 하는 부분이 교실의 변화다. 전교조가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교조의 본래 목적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는 삼아야 한다.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와 교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중점을 두겠다.

-보수 세력은 전교조를 악의적으로 비판해왔다. 그런 비판이 먹혀드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교육 현장의 요구를 어떻게 제도나 정책의 변화로 연결할 것인지 전교조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보정당 등이 부진한 가운데 전교조의 요구를 전달할 통로가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결국 이를 어떻게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몰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론 환기를 위해 다소 무리한 방법을 쓰게 된다. 이게 전교조가 강경투쟁만 일삼는다는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경쟁’에 익숙해진 측면이 있다. ‘경쟁교육’을 통해 계층과 신분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사고가 형성돼 있다. 전교조가 지향하는 참교육과 경쟁교육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교권 문제도 잘 살펴보면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 여전히 잘 이뤄지지 않아 이를 제기하는 것인데, 밖에서 보면 집단적 이기만 관철하려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 같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저 교사가 과연 내 자식을 잘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불안 심리가 당연히 있다. 관건은 부적격 교사 문제다. 부적격 교사에 대한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면 그 불신을 제대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나 교육관청은 성적 조작 교사, 성폭력 교사 등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일선의 양심적 교사를 압박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교사들의 교육력을 제고하겠다면 승진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보다 교육관청의 눈에 드는 일에 신경쓰는 교사들이 승진하도록 돼 있는 체계에서 교원평가제도는 교사들의 교육력 향상과 관련이 없다. 이런 전제를 풀 수 있다면 전교조도 교원평가에 대해 논의할 자세가 돼 있다.

-제도 변화 이전에 전교조 차원의 부적격 교사 자정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떤가.

=촌지 거부 운동 같은 것이 그런 자정운동의 하나일 텐데, 그런 일은 창립 때부터 해왔다. 다만 전교조 조합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런 대목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는 반성을 한다. 전교조 공동의 실천을 통해 전교조 교사의 정체성을 강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 머지않아 몇 가지 실천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참교육 운동을 조만간 선언할 것이라고 들었다.

=매년 1월이 되면 전국의 전교조 교사들이 모여 참교육 실천사례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10년째다. 그 성과를 모아 전교조 조합원들이 학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참교육 실천의 내용을 내놓으려 한다. 궁극적으로는 내 임기 내에 전교조가 꿈꾸는 참교육의 정신이 적용된 ‘참교육 학교’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교장 공모제를 통해 20명 정도의 조합원들이 몇몇 학교의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 학교들에서 실질적 변화를 보여주겠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라는 지침을 전교조가 현장에 내려보냈나.

=전교조는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과정 선택의 권리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있다. 반대 방법에 대해 학부모 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왔다. 그래서 그런 방법이 있다고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그게 지침이라면 지침이었다.

-그런데 왜 7명만 해직됐을까.

=더 많은 선생님들이 알림장을 보냈는데,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평소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부단히 개진했던 선생님들을 표적으로 삼은 것 같다.

-1989년에 비해 해직 교사들의 연대의식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자발적으로 나온 교사들이 매일 500~600명씩 참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탄원서명을 받고 있는데 거의 모든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교사 7명의 해직 이후, 12월23일 치러진 일제고사에서는 더 많은 교사들이 똑같은 알림장을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몇만 명의 교사가 여기에 참가했다. 이를 다시 문제 삼아 해직하겠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해직 사태 직후 방학이 시작되면서 학교 현장의 움직임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에게 불법 자금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노조 역시 같은 법 조항 위반으로 곤욕을 치른 전례가 있다. 그런 법률 문제를 충분히 살피지 못한 것은 아닌가.

=주경복 후보가 ‘시민 후보’로 추대된 것은 촛불정국 때의 일이다. 전교조 차원에서 그분을 지지 후보로 결정한 적이 전혀 없다. 시민 후보에 대한 지원이 정치자금법 규정에 어긋나는지는 주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사전에 서울 선관위에 문서로 질의하고 회신을 받은 것으로 안다. 교육감 후보는 정당의 추천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감 후보에 대한 단체의 자금 지원이 정치자금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회신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 모금·전달 과정에서도 개별 교사가 1만~2만원씩을 후원했다. 이 대목은 현행 정치자금법과 선관위의 해석, 그리고 검찰의 기소 내용 등을 두고 법정에서 논쟁해야 할 사안이다.

-환경운동연합에 이어 전교조까지 재정이나 회계 부문의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건 전교조 죽이기다. 전교조는 창립 때부터 회계 투명성을 위해 복식부기를 해왔다. 내부 감사도 1년에 두 차례씩 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전교조 내부의 대표적 정파로 ‘참교육실천연대’와 ‘교육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직 내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야 한다. 수만 명에 이르는 대중조직이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겠는가. 다양한 목소리가 몇 개의 가닥을 잡아 제출되는 건 오히려 도움이 된다. 대의원 대회 직속으로 30명 정도가 참여하는 정책위원회를 만들려 한다. 거기서 다양한 생각의 가닥을 잡고 자료로 만들어 조합원이 판단·선택하도록 하면 정책 논쟁이 좋은 방향으로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마감 중이던 새해 1월1일, 검찰이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 선거자금 지원 수사에 전교조가 조직적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을재 서울지부 조직국장 선에서 (수사를) 방어한다”는 취지의 전자우편을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서울지부 쪽은 “조직적 모의가 아니라 수사에 대한 간략한 연락 메일”이라고 밝혔다. 전교조 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불법 활동의 근거로 들이미는 검찰의 칼날이 좁혀오고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정진후 위원장은 전교조 창립 20년 이래 최대 위기 국면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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