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찬 여자와 절약 정신이 투철한 남자가 살림을 차렸다. 사랑이 불타오른 첫 겨울은 여자를 위해 보일러를 불태우며 뜨끈뜨끈하게 보냈다. 매달 10만원을 훌쩍 넘긴 도시가스 요금이 나왔다. 남자의 걱정은 커졌지만 그래도 여자는 춥다 했다. 부부의 보금자리는 부실하게 지은 게 분명한 빌라 2층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이 벽을 통과했고 방바닥 아래로는 텅 빈 주차장이었다. 보일러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돌고 돌고 돌아갔다.
콩깍지가 벗겨져갈 무렵, 가스요금 고지서가 눈에 보였다. “이대로 또 겨울을 맞을 순 없다”며 남자는 여자에게 “겨울에 추워질 때까지 보일러를 틀지 말자”고 말하고 말았다. 급기야 남자는 잠자는 방만 빼고는 보일러 배관을 잠그는 ‘만행’을 저질렀다. 발이 시린 여자는 분노했고 전쟁이 벌어졌다. 때는 10월이었다. 화가 난 여자는 ‘따뜻한 친정’에 가서 잠을 잤고 남자는 혼자 모든 배관을 잠그고는 얼어죽은 듯 잠을 잤다.
유치찬란한 3일 전쟁이 끝나고 부부는 포옹으로 싸움을 끝냈다. 남자는 배관을 풀었고 여자는 마음을 풀었다. 그러고는 ‘가스비 줄이기’에 머리를 맞댔다. 우선 집에서 가장 크고 추운 방에서 침대를 빼서 가장 작고 따뜻한 방으로 옮겼다. 그렇다, 이 집엔 방이 2개다. 잠자리의 훈훈함이 바로 달라졌다. 다음으로 보일러를 20분 정도 돌린 뒤에는 절전 모드로 변경해놓는다. 일단 따뜻해진 바닥에는 이불이나 카펫 등을 덮어놓으면 차갑게 식지는 않는다. 겨울에도 반팔을 고수하던 여자는 긴팔에 긴바지, 양말이나 슬리퍼를 착용한다. 침대 위에 좌우가 독립된 전기매트를 깔아 여자가 누운 쪽만 작동시킨다.
이 정도로 뭐가 달라질까… 했는데 고지서가 확 변했다. 2008년 10월12일~11월11일 가스 사용량은 25m³, 전년 동월 74m³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요금은 1만8860원. 남자와 여자는 다시 한번 포옹했다. 참, 포옹도 집 안의 온도를 높여준다. 따로 있는 것보다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면 공기가 훈훈하다. 60만 명의 회원을 둔 절약 커뮤니티 ‘짠돌이 카페’(cafe.daum.net/mmnix)의 가스비 줄이기 달인 ‘짠소금인형’도 “마루를 잘 사용하지 않고 안방에 같이 있으면 사람 온기로 따뜻하다”고 말했다. 역시, 사람이 희망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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