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불사의 길, 블로그를 만들자
조직에 당신의 삶을 의탁하지 마라. 조직이 당신을 보호할 거라는 기대, 얼토당토않다. 드물게 조직의 정점에 오른다 해도 7년을 땅속에서 인내해 7주를 나무에서 울다 죽는 매미의 운명, 그게 전부다. 건달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유가 있다. 조직은 반드시 개인을 배신한다, 는 동서고금의 진리 널리 깨우치기 위해서다.
게다가 요즘 같은 불황에는 개인을 챙겨가면서 후일을 도모하는 살뜰한 조직, 없다. 이런 아사리판에 필요한 것은? 토끼굴이다. 소속 집단이 없으면 영혼의 불안을 어쩌지 못하는 21세기의 허약한 개인에게 그 토끼굴은 바로 블로그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그람시가 이런 말을 했다. ‘진지전’과 ‘기동전’의 유기적 결합! 이거 혁명이론 아니다. 삶의 지혜, 처세술이다. 총알 날아다닐 때는 참호 속에서 박격포 쏘고, 잠잠하다 싶으면 뛰어나와 전진하고, 여의치 않으면 또 참호 파고…. 근데 이건 닭-달걀 논쟁이나 뫼비우스의 띠하고는 조금 다르다. 일의 선후가 있다. 참호부터 파야 한다. 참호가 있어야 작전도 짜고 잠도 자고 자기최면도 걸면서 싸울 수 있다.
어려울 거 없다. 어느 포털이건 가서, 대화창이 시키는 대로 클릭 몇 번, 자판 몇 번 살포시 두들겨주면 제 이름의 블로그 뚝딱 만들 수 있다. 한국 담론 시장에 명함 내미는 역사적 순간이다. 물론 문패 달아놓는다고 블로거가 되는 건 아니다. 물 주고 거름 주고 가꾸긴 해야 한다. 블로그에 주는 거름은 따로 있다. 텍스트다.
읽지도 않는데 어떻게 써? 이러면서 뒤로 자빠지는 언니·오빠들, 물론 있겠다. 이런 경우엔 ‘노는 시간’을 글로 옮기면 되겠다. 남친과 함께 본 영화 감상문, 너무 많이 자서 생긴 두통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법, 뭐 이딴 것부터 무조건 써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나’의 표현의 시작이다.
다만 그런 짓만 하면 영원히 ‘기동전’ 못한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준비해라. 리뷰는 언제나 좋은 출발이다. 독후감, 영화 비평, 미술전 소개, 심지어 기사나 칼럼 리뷰도 괜찮다. 그 다음엔 ‘일하는 시간’을 토끼굴에 끌어들여야 한다. 변호사라고? 흠, 니는 좋겠다. 블로그에 법률 상담글 올려라. 교사라고? 공정택 교육감 좀 어떻게 해봐라. 수업 내용과 아이들 이야기 쓰면 되겠다. 외판원이라고? 고생 많겠다. 수금 요령부터 시작해라. 자동차 정비한다고? 왜 진작 블로그 안 했나. 당장 자동차 분해 조립 방법부터 써봐라.
그러면 반응이 온다. 소속 조직의 구질구질한 ‘계급장’ 떼고 자연인 아무개의 영혼에 감응하는 이들이 하나둘 생긴다. 그들이 당신 삶의 진정한 도반이다. 텍스트가 모이면 콘텐츠가 된다. 책 내자고 출판사에서 연락 올 것이다. 블로그에 광고 싣겠다고 대행사에서 전자우편 올 것이다. 무엇보다 조직이 배척하는 나의 진심을 대중이 위로해줄 것이다. 블로그 없이 불황과 불안의 시대를 불만 없이 버텨낼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자신을 표현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로 인해 더욱 자유로워지는 삶을 누구나 동경한다. 불멸을 꿈꾸기 때문이다. 조직이 아니라 블로그에 영생불사의 길이 있다. 약장사처럼 떠드는 나는 3년 전 블로그를 시작해서 2년간 쉬었다. 올해부터 다시 토끼굴을 팔 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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