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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만에 출몰한 유령과 사귀려면

‘덜 하는’ 삶을 위한 <한겨레21> 기자들이 제안하는 ‘실천21’
등록 2009-01-01 15:25 수정 2020-05-03 04:25
160년 만에 출몰한 유령과 사귀려면

160년 만에 출몰한 유령과 사귀려면

나도 모처럼 재기발랄한 토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뭐? 을 읽어보라고? 국제 공산주의 강령을 일상의 지혜로 연결할 내공이 내겐 없다. 프티부르주아 근성으로 충만한 나에게 마르크시즘은 그저 허위의식을 위무하는 도구일 뿐이다. 어쨌든, 강 건너 불이던 월가의 재앙이 발등의 불로 서울의 마이홈에 떨어졌다. 부동산에 자꾸 군불을 때는 정부를 준엄하게 비판하면서도 화장실에선 우리 동네 아파트 시세표를 초조하게 들여다본다. “그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건 역사의 합법칙성이야. 끙~.”

주류 경제학도 자성하는 척하는데 비주류의 전망과 대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원전으로 돌아가자!” 뜬금없이 160년 전에 나온 을 소개하는 명분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을 “미국과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로 바꿔 읽으니 새록새록하다. “부르주아지는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 없이 토막냈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냉혹한 ‘현금 계산’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고 은 적었다. 미국의 금융 부르주아지도 온갖 반자본적 규제를 토막냈다. 다른 점은 현금 정산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파멸적 귀결에 대해 은 예언한다.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마술사를 데려갈 저승사자는 누군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국제통화기금조차 떨고 있는 ‘대공황’이다. 생산 양식 전체를 변혁하는 의 10가지 방책 중에 이런 항목이 있다. “국가 자본과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진 국립 은행을 통해 신용을 국가의 손안에 집중시킨다.” 지금 미국은 마르크스의 방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의도는 정반대이니 결과가 궁금하다.

자본과 적대적 모순관계에 놓여 있다는 임노동의 운명은 어떠한가? “임금은 그 자신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비용에 국한될 뿐이다.” 청와대에 이 책을 보내야겠다. 최저임금 삭감은 임노동을 넘어 자본주의 자체의 번식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새해엔 재야 경제연구소나 사이버 논객의 글도 많이 읽자.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유령의 실체를 정확히 봐야 하니깐.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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