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의 정인환 기자가 묻는다. “어때? 예쁘지?” 그는 새로 산 흰색 MP3 플레이어 신제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 몇 메가(MB)야?”, “아니 무슨 메가야, 기가(GB)지.” 미안하다, 2MB 같은 질문이었다. 요즘 무슨 메가냐, 기가지. 내 MP3가 ‘무려’ 512메가바이트라고 네 MP3도 ‘기껏’ 메가라고 생각했다. 그래, 네 것은 동영상도 된다지. 그러나 말이다. 나의 가장 오래 지니인 MP3를 나는 여전히 뜨겁게 사랑한다. 2005년 여름 수중에 들어온 그것을 언젠가 글에서 ‘반려물건’(伴侶物件)이라 불렀다. 나의 빨간색 강아지, 너는 여전히 아프지도 않다.
너를 만난 뒤로, 내가 들어야 할 모든 노래와 내가 배웠던 모든 영어를 너에게 배웠다. 21세기 최고의 구매를 꼽으라면 단연 너다. 너는 식빵에 바르는 버터처럼 무언가에 어울려 더욱 빛나는 ‘보완제’다. 러닝머신 위에서 다리가 멈추려 할 적에 다리에 힘을 주는 응원가를 불러준 것도 너였다. 2시간 넘게 오가는 출퇴근 버스에서 신문조차 읽기 싫을 때,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영어 폴더를 누르면 너는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너는 그렇게 버릴 뻔한 시간에 의미를 새겨주었다. 내가 외로울 때 〈Everybody hurts〉라고 노래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그리울 때 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나의 탄식은 길어지고 주름은 늘었을 것이다. 네가 묵묵히 날선 인터뷰를 하는 그의 목소리를 녹음해주지 않았다면 기사를 쓰고 나서 혹시나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너는 이동식 강의실이고, 찾아오는 콘서트이며, 동행하는 변호사다. 그것도 매우 저렴하게 모시는.
그래서 공짜로 얻은 DMB폰도, 한때는 살까 망설였던 PDP도 너를 이기진 못했다. 영어학원 수강비 10여만원을 확인하고, 너의 몸값을 생각한다. 아니, 이것은 이렇게 저렴한데 저것은 저렇게 비싸단 말인가. 간난고초의 시절에 동행하는 나의 반려자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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