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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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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잡아먹는 도둑놈을 잡아라

‘덜 하는’ 삶을 위한 <한겨레21> 기자들이 제안하는 ‘실천21’
등록 2009-01-01 14:45 수정 2020-05-03 04:25
TV 끄고 자기

TV 끄고 자기

그것은 유전자에 있다고 한다. 5번 염색체 끄트머리 809번째 유전자. 어머니는 애국가의 애청자셨다. 나는 애국가 소리에 맞춰 일어나 엄마의 잠든 몸을 넘어 텔레비전에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꾹. 리모컨이라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에 2~3년 뒤에나 생겨난 물건이다. 리모컨만으로 전원이 작동하는 텔레비전이 있는 ‘럭셔리’한 나의 집에서 풍수지리가 가장 빼어난 곳은 텔레비전 앞이다. 여름이면 바람이 지나가고 겨울이면 노곤해진다. 모두 잠자기에 빼어난 조건이다. 24시간 채널이 즐비한 케이블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텔레비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명당에 누워 잔다. 어머니의 행복을 대를 이어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 맛을 며느리는 모른다.

어머니의 TV는 브라운관이었지만, 나의 것은 LCD다. 지난해에 바꾸었다. 어머니의 TV는 안테나로 수신했지만 나의 것은 IPTV 셋톱박스가 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수신용 셋톱박스도 있었다. 같은 크기의 경우 LCD는 브라운관에 비해 2배 정도 전기가 더 든다. LCD는 브라운관에 비해 대형화했으므로 3배 넘게 더 든다고 봐야 한다. 셋톱박스는 대기전력만 1시간에 10W가 넘는다.

얼마전 코드마다 스위치가 있는, 보통의 것보다 세 배(!)쯤 비싼 멀티탭을 샀다. 텔레비전과 셋톱박스 전원을 스위치에 연결하고, 잘 써보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엉뚱한 곳에서 이미 집 전체의 전력이 새는 걸. 회사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화장실이나 안방 불이 켜져 있다 해도, 도둑놈이 들었나고 겁내지 않는다. 올해는, 세상 모든 텔레비전을 다 끄러 다닐 듯한 말똥말똥함이 엄습한다고 하더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리라. 전원장치를 끄고 출근하리라. 그리고 집의 불도 다 끄고 출근해, 도둑놈을 꼭 잡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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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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