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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뉴딜’ 대역사인가 대재앙인가

예비타당성 조사 안 한 프로젝트 수두룩… 광역경제권 선도산업은 구체적 계획도 없어
등록 2008-12-18 17:16 수정 2020-05-03 04:25

‘삽질 경제’의 시작인가. 새해 예산안이 윤곽을 드러남에 따라 토목공사로 경기를 띄우겠다는 ‘MB 뉴딜 정책’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모든 것이 정부와 여당 뜻대로 됐다. 문제가 됐던 24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거의 그대로 확정됐다. 돈이 확보된 만큼 ‘대운하 위장사업’으로 의심받던 4대강 정비사업은 물론, 새만금 개발 등 ‘5+2 광역경제권’ 프로젝트도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있다. 정부는 최근 경인운하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사업 주체를 민간에서 한국수자원공사로 바꿔 최대한 사업의 속도를 낸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2009년부터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사업이 줄줄이 시작될 예정이다. 2008년 4월5일 서울 은평 뉴타운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2009년부터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사업이 줄줄이 시작될 예정이다. 2008년 4월5일 서울 은평 뉴타운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2009년은 ‘대역사(大役事)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MB 정부의 해법은 통할까. 4대강 정비와 새만금 개발이 정부의 기대만큼 일자리 창출과 경기부양에 효과적일까. 답안지를 미리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하다.

양양공항 등 SOC투자 실패 원인

먼저 점검해봐야 할 대목은 정부가 예산안을 산출한 근거다. 대규모 SOC 사업일수록 새로 계획하고 추진하기 전에 꼼꼼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구체적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예산만 따낸 사업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문제는 정부의 새해 예산안을 보면 후자에 해당하는 사업이 많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5+2 광역경제권 프로젝트다(지도 참조). 이 프로젝트는 전국을 인구 500만 명 안팎의 5개 광역경제권과, 인구 100만 명 안팎의 2개 특별광역경제권으로 나눠 신성장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사업이다. 광역경제권 프로젝트는 성격에 따라 △30대 선도프로젝트 △선도산업 육성 △거점대학 육성 등 3개 사업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대부분 토목공사인 30대 선도프로젝트다. 새해 예산안을 봐도 30대 선도프로젝트에 배정된 예산이 3조5549억원으로, 선도산업 육성(2017억원)이나 거점대학 육성(500억원)보다 월등히 많다.

그런데 국토해양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9년도 30대 선도프로젝트 예산안 내역’ 자료를 보면, 30대 선도프로젝트 사업 가운데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사업이 10건이나 된다. 총 사업비 2조원이 투입될 예정인 ‘동북아 제2허브 공항’과 1조1800억원 규모의 ‘마산∼거제 연륙교’ 사업은 신규 사업일 뿐만 아니라 예비타당성 조사를 11월 말 현재 실시하지 않았다. 새해 예산 1413억원이 책정된 수도권 ‘제2외곽순환도로’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사업이란, 쉽게 말해 사업의 경제성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가재정법에는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이 300억원 넘게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예비타당성 조사에는 정책적 고려 항목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은 경제성 평가다.

5+2 광역경제권 30대 선도프로젝트 현황

5+2 광역경제권 30대 선도프로젝트 현황

예비타당성 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과거 대규모 SOC 투자의 실패 사례가 보여준다. 경기부양을 위해 2002년 문을 연 양양공항은 찾는 사람이 없어 2008년 10월 정기 노선이 모두 사라졌다. 경기부양은커녕 2008년 상반기까지 550억원의 누적 적자만 기록한 애물단지로 남게 됐다. 1999년 착공한 울진공항은 1320억원이라는 재정이 투입됐지만 10년 가까이 문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취항하겠다는 항공사가 한 곳도 없었다. 울진공항은 2007년 〈AFP통신〉의 ‘세계 10대 황당뉴스’에 선정됐다. 예천·김제공항도 사정은 비슷하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예산 자체가 불법적이란 뜻이고, 자칫 ‘제2의 양양공항’이나 사람이 건너지 않는 다리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90% 이상이 토목공사로 구성

광역경제권 프로젝트 가운데 선도산업 육성사업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광역경제권별로 1~2개 신성장 선도산업을 대표산업으로 육성해 지속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꾀한다는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새해 예산안에는 관련 예산으로 2017억원이 배정돼 있다. 이 사업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가 지적한 문제점은 세 가지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우선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로 예산안이 편성됐다”고 밝혔다. 각 광역경제권으로부터 선도산업 구상안을 모두 제출받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지역 개발과 관련된 법률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시·군·구로 나뉜 현재의 행정 체제에 따르면 사업을 추진할 주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회예산정책처는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육성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개정과 권역별 선도사업의 선정 및 사업 추진 체계의 정비를 마친 뒤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아예 그 이후라고 못박았다.

이종석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은 “광역경제권 프로젝트의 내용을 살펴보면 90% 이상은 토목공사로 구성돼 있다”며 “토목공사를 경제 살리기의 전부라고 인식하는 현 정부의 한계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됐던 4대강 정비사업 예산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입수한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까지 4대강 정비사업에 14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새해 예산안에도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에 6861억원을 책정했다. 전체 하천 정비사업 예산을 모두 합치면 1조6750억원이다. 2008년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났다.

한강과 낙동강 등 각 수계별 예산을 빼곡하게 정리한 정부 예산안에 빠진 것이 있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이다. 최영희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예산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쓰겠다는 계획이 없다”며 “예산만 통과시켜주면 알아서 쓰겠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하천 예산 2500억 늘려 대운하용 의심

진보신당은 4대강 정비사업 항목 가운데 하나인 국가하천 정비사업 예산이 크게 증가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5410억원을 관련 예산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에 수정예산안을 제출할 때는 2500억원이 증가한 7910억원이라고 보고했다.

진보신당 녹색정치특별위원회는 “수정예산안에서 나타난 증가분의 근거가 불분명하고 수계별로 볼 때 한반도 대운하를 구성하는 4개 강 가운데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 유역의 사업 예산이 크게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며 “4대강 정비 관련 수정예산안은 세부 내용과 근거에 대한 추가 공개와 해명이 없다면 대운하 추진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5+2 광역경제권 프로젝트 등 대규모 SOC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김제 새만금 갯벌. 한겨레 김진수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5+2 광역경제권 프로젝트 등 대규모 SOC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김제 새만금 갯벌. 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명박 정부가 이처럼 설익은 SOC 사업계획을 내놓은 배경은 뭘까.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건설 본능’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토목공사를 통한 경기부양을 강조했다. 2008년 9월2일 국무회의 자리에서도 그랬다. 이날 이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건설경기 활성화가 중요하다”면서 “건설경기가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재개발, 재건축을 활성화해 일자리 늘리기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이 대통령의 철학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신 뉴딜 정책’을 내놓는 등 SOC 예산을 큰 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자 한층 힘을 얻은 모습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12월8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처럼 일류 선진국을 주장하는 나라도 경기를 부양할 때 SOC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한다”고 말했다.

GDP 대비 투자 비중 선진국보다 높아

하지만 오직 SOC 사업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정부와 여당의 믿음을 배신하는 지표들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투자로 SOC 시설을 이미 큰 폭으로 확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1980년과 비교할 때 2007년의 SOC 시설은 도로 길이의 경우 2.2배, 항만 능력은 6.4배, 공항 능력은 2.2배로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02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SOC 재정투자 비중에서도 한국은 2.7%로 프랑스(1.0%)와 독일(1.2%), 영국(0.9%)은 물론 이탈리아(0.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짤 때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도로 분야 SOC는 OECD의 67%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이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제외한 모든 도로는 1차로’라는 비현실적 가정에 근거한 것”이라며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측해보면 유효도로 연장은 정부가 밝힌 13만8004km가 아니라 25만3477km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홍 위원은 “이 사례만 보더라도 정부의 2009년 예산안이 얼마나 엉터리로 책정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는 SOC 확충이 경기 불황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2008년 9월23일 발표한 ‘재정적자 팽창과 일본 경제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이었던 일본은 거품이 꺼진 1994년 이후 세 번에 걸쳐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단행했다. 동시에 92년부터 2000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경기부양책을 추진하면서 124조엔이라는 추가 재정을 동원했다. 추가 재정의 대부분은 도로공사와 항만 및 치수 등 SOC 사업에 투입됐다. 이같은 지출 확대와 감세 정책은 결과적으로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누적으로 연결됐다. 보고서는 “2050년까지 일본의 인구구조 변동은 고령화율을 현재의 2배 이상 끌어올려 사회보장 지출을 팽창시키고 이르면 2010년대 후반, 늦어도 2030년대 후반에는 잠재성장률도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실패 타산지석 삼아야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일본도 잃어버린 10년 동안 무리한 SOC투자를 해 재정을 허투루 썼다. 예를 들어 하루에 차 한두 대도 지나지 않는 곳에 다리를 놓거나 했다. 결국 국민 혈세를 낭비한 것이다. 토목공사에 나랏돈을 쓰는 게 아니라 복지와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재정 파탄을 맘 편히 구경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OECD의 2007년 ‘경제 전망’을 보면, 2006년 한국의 국가 채무 잔고의 GDP 대비 비중은 27.7%로 OECD 국가 평균 77.1%를 크게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는 나라 살림이 튼튼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가 채무 잔고는 외환위기 이후, 즉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21.1% 증가했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세수 여건도 나빠졌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빼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듬뿍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17조원 규모의 엄청난 국채까지 발행하면서 SOC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현 정부가 5년 뒤, 10년 뒤의 한국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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