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백지화국민행동 회원들이 지난 5월2일 청와대 입구인 서울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반도 대운하를 강행하려는 청와대를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는 12월10일 ‘신 뉴딜이 부럽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썼다. 칼럼의 결론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 불황을 계기로 획기적인 투자를 하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철도에 700조원 중국판 뉴딜, 8% 경제성장 지켜줄 구원투수로 선택’, 12월2일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미, 고속도로·교량 건설에 최대 투자, 오바마 250만 개 일자리 창출 신 뉴딜 정책’, 12월8일치 1면 두 번째 기사 제목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신 뉴딜 정책으로 25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조·중·동의 보도를 보면 미국과 중국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해 지금의 경제난을 돌파할 계획인 것으로 비친다. 한국 정부도 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때를 맞춰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4대강 정비 사업은 과연 한국판 뉴딜 정책일까? 정부·여당은 4대강 정비 사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니올시다’라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4대강 정비사업의 핵심은 하천을 문화·관광의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하천을 정비하면서 주변에 ‘에코 트레일’(자전거길·산책길·마라톤길)을 만들고 요트장·캠프장 등을 설치해 문화재와 연계한 관광코스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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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이 4대강 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내건 가장 큰 이유는 경기부양과 고용효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내 보인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12월10일(현지시각) 미 뉴욕에서 열린 한 초청 강연에서 “뉴딜은 제도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둔 것이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맞지 않는 대운하 사업에 들어갈 돈은 장기적 연구와 개발 등 소프트파워 신장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12월11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우리는) 과거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 당시 괭이나 삽을 들고 근로자들이 잔뜩 들어가 사업을 벌이는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이 신 뉴딜 정책을 한다고 하니까 4대강 개발을 한국판 뉴딜 정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과장된 표현이고 고용효과도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12월11일 내놓은 ‘우리나라의 고용구조 및 노동연관 효과’를 산업별로 보면, 농림어업 취업유발계수가 51로 가장 높고, 서비스업(18.4), 건설업(16.6), 제조업(10.1) 등의 차례였다. 건설업 취업유발 효과는 10억 원당 16.6명인 셈이다. 단순화해 설명하면 SOC 투자를 1조원 늘리면 고용은 1만6천 명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운하 사업처럼 중장비 투입이 많은 토목 건설현장에선 1만 명 미만의 임시직 고용을 만드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가운데 정규직 비율은 수백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며, 그나마 운하 규모의 새 공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이들은 곧바로 구조조정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뉴딜 정책을 1면 머리에 비중 있게 다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산업연구원의 ‘정부지출의 거시경제 및 산업별 파급효과’(2004) 보고서에선 정부가 1조원을 건설부문에만 투입한다면 평균 1조1815억 원의 소득을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육·보건부문에만 투입하면 1조2668억 원이 창출돼 853억 원이 더 많았다. 건설과 교육·보건에 고루 투자하면 건설에만 집중 투자할 때보다 소득창출액이 많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데이터를 좀 더 검토해봐야 하지만 토목공사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게 과거처럼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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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20대와 여성의 미래를 빼앗아 40~50대 남성과 지방 토호의 배를 불리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를 쓴 생태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에서 경부운하의 고용효과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일부 20대들이 ‘그래 우리 경부운하에서 삽질이나 하자’고 표현하지만, 삽질할 걱정은 없다. 이런 고된 일자리는 40~50대와 외국인의 몫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건설업에서 여성 고용비율은 10%가 채 안 되니, 경부운하 사업은 가뜩이나 좋지 않은 세대 간 형평성과 성 형평성을 더욱 안 좋은 형태로 고착시키는 과거 회귀형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나랏돈을 당장 배고픈 서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같은 재원이 있다면 어떤 곳에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한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김병권 센터장은 “재정지출과 공적자금 투입의 제1원칙은 고용 창출력이 높은 곳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볼 때 현재 정부지출이 집중돼야 할 지점은 ‘토목 건설 분야’가 아니라 ‘사회서비스 분야’”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굳이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면 1930년대 미국이나 1970년대 한국의 토목건설 뉴딜은 아니다. 사회서비스 투자에 집중하는 21세기 방식의 뉴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회서비스에 재정을 투입하면 △앞으로 장기 불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육아 여성·노인·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효과적인 지원책이 될 수 있고 △고용창출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날 수 있으며 △선진국에 비해 절반 수준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 분야의 기반 확충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은 전체 서비스업 가운데 20.2%에 그친다. 스웨덴의 43.9%나 미국의 32.4%에 견줘 턱 없이 적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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