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펀드’ 관련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우리파워인컴펀드’의 불완전 판매 책임을 물어 손실액의 50%를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손실의 책임 비율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피해자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우리2스타파생상품KH-3호’와 ‘우리2스타파생상품KW-8호’ 펀드 가입자들도 운용사인 우리CS자산운용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국민은행과 푸르덴셜증권이 판매한 ‘블랙록월드광업주’ 펀드와 ‘블랙록월드골드’ 펀드도 법정으로 ‘소환’될 예정이다. 국내 최대 펀드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펀드’ 소송 준비 카페도 개설된 지 보름 만에 가입자 수가 3천 명을 돌파했다.
우리파워인컴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11월10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파워인컴펀드와 관련한 조정 결정은 고객들의 자금 사정과 투자 성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몇천만원어치 펀드를 대충 설명하고 팔아치우는 펀드 판매의 관행을 응징한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투자자 권익보다는 금융사의 기득권을 보호한다고 인식돼온 금융감독 기구가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준 사례로 앞으로 비슷한 소송들이 봇물처럼 터지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반토막 펀드’의 손실 책임을 둘러싼 법적·제도적 공방에서 소비자가 배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어떤 것들일까. 파워인컴펀드의 사례 등을 근거로 삼아보면, 불완전 판매와 과장 광고 여부, 상품 자체의 적합성 문제 등이 공방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는 이번 결정의 요지를 설명하며, 은행이 신청인에게 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설명서를 제공하지 않은 점. “원금 손실 가능성은 대한민국 국채가 부도날 확률만큼 낮다”고 적힌 상품 안내장(팸플릿)으로 고객의 눈을 속인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판매창구 직원이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아 안전한 채권형 상품으로 오인시켰다는 것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은 350조원대로 4년 만에 갑절 규모로 성장했지만, 불완전 판매 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불완전 판매인지를 가름하는 주요 잣대로는 자필서명 여부와 약관·투자설명서 교부 여부 등을 꼽을 수 있다. ‘투자설명서를 제공받고 그 주요 내용을 설명 들었음’이라는 내용의 투자상품 가입 확인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거나, 가입자가 아닌 제3자가 서명한 경우엔 손실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파워오일펀드’에 투자했다가 7700만원대 손실을 본 개인이 지난 6월10일 받아낸 조정결정서의 내용을 보자. 당시 금융분쟁조정위는 투자설명서의 서명 필체가 고객이 아닌 은행 직원의 필체라는 점, 고객이 투자설명서나 약관을 교부받지 못한 점 등을 근거로 은행 쪽에서 손실액의 70%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과장 광고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파워인컴펀드의 경우, 상품설명서를 보면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무디스 ‘A3’)으로 국고채+1.2%의 수익 추구”라고 적혀 있다. 펀드 관련 피해자들은 “광고문구나 판매창구 직원들의 이야기를 접하고선 이 상품이 원금을 까먹을 확률이 한국이 망할 확률과 같구나,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이구나 이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한다. 그렇다면 파생금융상품의 신용등급이 국가신용등급과 같다는 표현은 성립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무디스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원화를 쓰는 한국인들에게 정부가 부도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국가와 금융상품의 신용등급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면 일반인들의 오해를 부르게 된다”고 밝혔다. ‘돈이 된다면 어디에든 무엇에든 다 투자하는 스윙펀드’라고 소개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펀드도 ‘중국 몰빵’과 과장 광고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펀드 피해자들의 온라인 모임에 올라온 글 중에는 중·고령자들의 탄식이 두드러지게 많다. 올 초 오일펀드에 가입했다가 원금의 40%를 손해보았다는 한 60대 중반 은퇴자는 “고정 수입이 없는 노인에게 이런 위험천만한 상품을 소개하면서, 조기마감되니 서두르라고 등을 떠밀던 창구직원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기자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앞으로 소송 과정에서는 금융사들이 고객에게 알맞은 상품을 팔았는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내년 초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본격 도입될 예정인 ‘적합성 원칙’에 따르면, 상품구조가 복잡한 금융상품을 팔 때 판매자는 소비자의 재산 상태, 경험, 수요 등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도록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 펀드 피해자 관련 집단소송을 대리 중인 PNC파트너스의 남욱 변호사는 “적합성 원칙은 현행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도 일부 반영돼 있기 때문에 판매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파워인컴펀드의 경우도 ‘적합성’에서 흠결이 두드러진다. 우리은행 쪽에서 만든 ‘판매 직원용 Q&A’ 자료를 보면, 이 상품은 ‘퇴직금이나 기타 여유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시고자 하는 고객’에게 어울린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분쟁조정 신청으로 손실 일부를 배상받게 된 우리파워인컴펀드 투자자는 펀드 가입 경험이 없는 58살의 가정주부다. 그는 정기예금에 가입하러 갔다가 은행 직원의 권유로 펀드에 가입하게 됐다. 우리파워인컴펀드는 장외파생상품이 편입된 펀드로, 파생금융상품 경험이 없는 고객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그런데 정기예금 같은 안전한 투자를 위해 은행을 찾은 50~60대 퇴직자·주부 등에게 위험성이 따를 수밖에 없는 복잡한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권한 것이다.
우리파워인컴펀드에 편입된 장외파생상품은 특수목적회사(SPC)에서 발행하고 크레디트스위스그룹의 자회사가 매니저 역할을 하는 구조다. 크레디트스위스그룹은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금융그룹으로 1856년 창립돼 2005년 6월 기준으로 총자산 1063조원, 시가총액 458조원에 이르는 거대기업이라고 설명돼 있다. 요약하면 ‘뭔가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상품인데, 훌륭한 외국 회사가 발행했다’는 정도가 된다.
펀드 피해자들의 분노와 눈물에도 불구하고 실제 피해 구제를 받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분쟁조정 신청을 하려면 금융감독원 금융민원센터를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www.fcsc.kr), 우편, 팩스 등을 이용하면 된다. 이미 펀드를 환매한 가입자도 소급해서 손실금을 배상받을 수 있다. 만일 소송에 나선다면 판매 당시 위험에 대한 고지 등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녹취·문건 등 객관적인 증거가 필수다. 문제는 금융사에 비해 개인이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아 승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주가조작·분식회계와 관련한 집단소송과 달리, 펀드 불완전 판매 피해자들은 직접 소송에 참여하든 분쟁조정 신청을 하든 배상을 받으려면 본인이 직접 해당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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