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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장’과 ‘IOC 위원’을 따라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재출마설, 정몽준·천신일·김정행 출마설… IOC 위원 자리두고도 치열한 경쟁

▣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은 목표(금메달 10개, 종합 10위)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이명박 대통령도 덕분에 지지율 상승이라는 ‘올림픽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베이징올림픽은 끝났지만, 정치권과 재계에서 그런 올림픽 효과를 얻고자 하는 이들의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메달은 대한체육회장과 일부 위원들의 탈락으로 공석이 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한국 몫이다.

‘올림픽 퍼레이드’도 선거운동용?

대한체육회는 내년 1월에 제37대 새 회장을 뽑는다. 회장 선거에 나설 후보들은 이연택 현 체육회장과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축구협회장)이 먼저 손꼽힌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후배인 천신일 세종나모여행사 회장(레슬링협회장)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지난 5월 보궐선거에 나와 쓴잔을 마셨던 김정행 용인대학 총장도 물망에 오른다.

이연택 현 회장은 지난 5월 대한체육회장 보궐선거에 “잔여임기 9개월만 맡겠다”며 출마해 당선됐지만, 체육계의 기반이 워낙 단단해 재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선거에서 김정행 총장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한 체육계 인사는 “이연택 회장이 지난 선거에서 산하 체육단체장들의 확고한 지지를 확인한 바 있기 때문에 연임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청와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보궐선거의 구도는 이연택 회장과 여권의 지원을 받은 이승국 한국체대 총장, 그리고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의 인연을 내세운 김정행 용인대학 총장의 3파전 구도였다. 이승국 한국체대 총장은 사실상 천신일 회장의 대리인으로 불렸다. 여당이 이승국 총장을 밀고 있다는 사실은 체육계의 정설이었다.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임원을 지낸 한 체육계 인사는 “지난 5월 선거에서 이연택 회장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대한체육회 산하 53개 단체 중 10개의 호남표를 중심으로 한 고정표에 동정표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여권 성향의 산하단체 회장들은 이승국 총장과 김정행 총장으로 갈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 이연택 회장이 재출마하려면 여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 회장이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의 개선 퍼레이드를 기획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체육계의 한 인사는 “이연택 회장이 올림픽 선수단이 초반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문화체육관광부에 올림픽 개선 퍼레이드를 제안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회장이 재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방증은 많다. 베이징올림픽 현장에 다녀온 체육계의 한 인사는 “이연택 회장이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산하 53개 단체장들에게 올림픽 경기장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프리패스’ 2장씩을 나눠줬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사실상 선거운동용이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유도계의 한 인사는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조재기 동아대 교수를 휴직까지 시키고 임기 8개월밖에 안 되는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도 장기 재임을 생각한 포석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정몽준, 런던올림픽 수혜 입는다면…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대한체육회장 도전 여부도 정치권과 체육계의 관심사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내년 2월까지인 축구협회장 임기가 끝나면 연임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대한체육회장은 전국체전 등 전국적인 체육행사를 모두 총괄하고 스포츠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어 정치적으로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계의 한 인사는 “정몽준 최고위원이라면 이연택 회장을 충분히 꺾을 수 있다”며 “이 회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경우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정몽준 최고위원 쪽은 일단 부인하고 있다. 한 측근은 “대한체육회장은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안다.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IOC 위원 진출에 대해서는 “한국 위원들의 탈락으로 우리 쪽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IOC 위원 쪽은 관심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대한축구협회장 자격으로 14년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맡아왔기 때문에 국제 스포츠계에서의 영향력과 인지도가 매우 높다.

스포츠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정몽준 최고위원에게 2002년 대선에서 대권까지 꿈꿀 수 있게 해줬던 가장 큰 원동력은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었다.

△ 8월1일 베이징올림픽 한국대표팀 1진을 이끌고 선수촌에 입촌하는 김정행 선수단장(용인대학 총장). 이명박 대통령과 동향(포항)인 김정행 총장이 이번 올림픽 선수단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지원 덕분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정행 총장은 지난 5월 대한체육회장 보궐선거에서도 이상득 의원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다음번 올림픽은 2012년 8월 런던에서 열린다. 2012년 12월에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선수단이 ‘기적’을 이뤄낸다면 그 올림픽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그때 IOC에서 유력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여당 관계자는 “정몽준 최고위원이 IOC 위원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맞설 수 있는 유력한 차기 후보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며 “정 최고위원은 청와대의 동의도 얻어야 하고, 박 전 대표의 견제도 돌파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IOC 위원은 그 자체로도 개인에게는 큰 영광이다. IOC 위원은 국빈 대접을 받는다. 해외여행 때 입국비자가 필요없다. 호텔에 묵을 때는 해당국 국기가 호텔 앞에 게양되고, 이동할 때는 차량에 IOC 기를 달아 신변 보호를 받는다. 급료는 따로 안 받지만 명예와 권한은 대통령에 버금간다. 정년도 70살까지다.

김운용·박용성·이건희… 잇단 불명예

한국은 지금까지 4명의 IOC 위원을 배출했다가 그중 2명이 유죄 판결로 중도사퇴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2005년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WTF) 회장이 사퇴했고, 지난해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사퇴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도 삼성비자금 재판 최종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경우 IOC 위원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한국인 위원은 지난 8월21일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문대성 동아대 교수만 유일하게 남게 된다. 이 공백 때문에 IOC 위원 경쟁이 가열되는 것이다.

지난 8월15일 복권된 김운용 전 회장은 IOC 위원직을 되찾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8월9~15일 한국올림픽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한 김운용 전 회장은, 복권 방침이 알려진 직후인 8월13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을 만났다.

새 IOC 위원으로 뽑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내 인사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이다. 조정원 회장은 김운용 전 회장이 IOC 위원을 사퇴한 2005년부터 활발하게 표밭을 다져왔다. 그러나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이 IOC 위원으로 복귀할 경우 같은 협회의 후임자인 조 회장이 선임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IOC 위원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태권도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태권도협회에서 SK그룹에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안다”며 “최태원 회장은 아직 나이가 젊고 그룹에서 할 일도 산적해 있기 때문에 그룹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장기적으로 스포츠 발전과 국익에 도움이 되고, 그룹의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면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여운을 남겼다.

고대교우회장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을 꼽는 이들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든든한 신임과 지원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천 회장은 96년 IOC 위원이 된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레슬링협회장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해외 스포츠 공간에서 쌓은 경력이 얕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체육계 인사들은 입을 모았다.

천신일 회장은 대신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체육계의 중론이다. 지난 5월 회장 보궐선거에도 직접 출마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 임기 초반에 요직을 맡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이승국 한국체대 총장을 대신 밀었다는 말이 많았다.

한국올림픽위원회 관계자는 “IOC 위원은 각국 올림픽위원회에서 오래 활동하거나, 세계적인 스포츠단체를 오래 이끌어 온 이들을 대상으로 뽑는다”며 “재력이나 권력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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