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한겨레21 르포상 기획] 정규직 교수가 비극을 끝내라

등록 2008-08-15 00:00 수정 2020-05-03 04:25

300일 넘게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 중인 김동애씨… 대우교원으로 편법 임용된 뒤 들통나자 직위해제돼

지난호에 이어 시간강사 문제를 다룬 르포를 연재합니다. 전체 르포는 3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마지막 장을 이번호에 싣습니다. 편집자

▣ 이민호 리얼리스트100 회원·시인

1막3장 가마솥 개구리와 올챙이

김수영은 시 ‘거대한 뿌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속임수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서 범죄와 같은 관습을 뚫고 문명의 억압을 슬기롭게 이겨냈던 사람이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 김동애.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다. 300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 그의 주장은 명쾌하다. 비정규직 교수를 교원으로 인정하라는 것!

“시간강사의 문제는 바로 정규직 교수의 문제예요. 전임교수 집단이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강사가 자신들과 공동 운명체임을 인정하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서로 제자이며, 동료이며, 후배입니다. 단지 ‘시간’의 꼬리표를 달고 있느냐 않느냐 그 차이입니다. 전임교원이 수행해야 할 강의를 시간강사들이 거의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도 알고 있어요. 다만 침묵하고 있을 뿐이에요. 아무런 발언을 하고 있지 않아요.”

대학강사는 교양, 전공, 교직 중 교양강좌를 많이 담당한다. 국공립대에서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한데 65.5%의 교양강좌를 시간강사가 책임지고 있다. 이는 사립대에서 시간강사의 교양강좌 담당률이 47.1%임을 감안할 때 상당한 차이로 간주될 수 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간에 전공을 담당하는 시간강사의 비중은 별 차이가 없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각각 29.4%와 30.5%의 전공강좌를 담당하고 있다(‘전국 4년제 대학 시간강사 실태분석’ 이주호, 2006 참조).

중국 현대사를 전공한 그는 2000년 2학기에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다. 7년6개월 동안 강의했던 대학에서 쫓겨난 것이다.

“1991년 7월 대만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1992년 3월 ㅎ대학교에 처음으로 강의를 나갔습니다. 그 학기에 동양사 전임교수가 다른 학교로 옮겨갔기 때문에 동양사 전임교수가 한 사람도 없었어요. 2주쯤 지난 뒤 학교 쪽로부터 대우교원을 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교육부에는 정식 전임교원으로 올리고 대우는 강사료의 두 배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편법이지요. 1~2년 후에 정식 전임으로 임용되는 데 유리할 것 같기도 했고, 더구나 고2와 중2인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 가장으로서 거절할 수 없었어요. 학교로 봐서 전임으로 교육부에 내놓기에 무리가 없는 외국 국립대학 박사학위증과 강의 경력은 그렇게 헐값으로 교육부에 등록되었습니다. 그해 6월, 교수 초빙 공고가 났을 때 부풀었던 순진한 기대는 지금 생각해도 낯이 뜨겁습니다. 서류를 냈으나 그 대학교는 3배수 안에도 끼워주지 않았어요. 서류상으로 이미 전임강사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더구나 설립자의 사위인 당시 ㅎ대학교 재단 이사장이 ㅅ대 교수였기 때문인지 결국 ㅅ대 출신이 전임으로 임용되었고, 몇 해 뒤에 뽑은 고·중세사 교수 역시 ㅅ대 출신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이 없는 스승들

그래도 그는 7년6개월 동안 강의를 계속했다. 그러다 학교 쪽이 전임에 해당하는 연금을 내지 않아 교육부에 편법 임용이 들통이 났고, 급기야 강사로 직위가 변동되었다. 아무런 견책사유도 없이 직위해제되었고, 감봉 처리된 것이다. 거기에는 괘씸죄도 한몫했다.

“ㅎ대는 1998년에 야간 사학과를 개설했어요. 그래서 학과장 교수에게 어렵사리 물었지요. (야간) 전임이 필요하면 선생님과 내가 세부전공이 같아도 상관없지 않느냐고. 그러자 학과장은 펄쩍 뛰었습니다. 그 교수도 수도권 어느 대학에서 대우전임을 하다가 결국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던 상처가 있어 전임이 못 된 내 처지를 걱정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립서비스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전임 자리나 넘보는 ‘부담죄’를 저지른 셈입니다.”

이후 그는 “문제를 일으키면 좋지 않다”는 교무과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직위해제 및 감봉 처분 무효소송을 냈다. 그러나 기각됐다. 다시 퇴직금 소송을 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다.

“내가 겪은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사회가 바로 대학입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우리 모두는 개구리입니다. 가마솥 개구리처럼 서서히 삶아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걸 몰라요.”

‘시간강사’에게는 스승의 날이 없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을 만큼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강의만이 교육은 아니다. 강의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 역시 소통의 연장이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시간강사는 선뜻 학생들 곁으로 갈 수 없다. 시간강사에게는 학생들과 이야기 나눌 공간이 따로 없으며, 이 학교 저 학교 강의에 몰려 시간 내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은 1학년만 지나면 시간강사가 일반 전임교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시간강사의 교권은 때로 그 권위를 상실하기도 한다. 중이 제 머리를 깎기는 어렵다. 시간강사의 문제는 거듭 말하지만 정규직 교수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의 관심과 양보만이 이 비극적인 현실에서 조금 앞으로 발을 내딛게 할 수 있다. 적어도 한국의 대학교육이 파탄 지경에 이르지 않고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은 시간강사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기 희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시간강사는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지식인 집단이며 한국 사회 발전의 동력임이 분명하다. 이들을 일회용처럼 쓰다가 폐품 처리하듯 버리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가 아닌가?

지금, 새로운 역사를

한국의 대학이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 세계 몇 개 대학 안에 들겠다고 장밋빛 비전을 제시해도 그것은 상업주의에 물든 하나의 구호에 불과하다. 차별을 그대로 안고 있는 한 그것은 요란한 착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인터뷰하기가 미혼모 인터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괜한 엄살은 아닌 것 같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특히 실명이 거론되는 것을 극히 꺼렸다. 역설적으로 이들의 자기 검열은 이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비참하고 부끄러운 일인지 잘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교수의 이야기가 1막3장의 단막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기를 쓰고 대학에 가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로 하여금 떳떳한 위치에서 새로운 시간의 역사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