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는 유신이 만들고 천민자본주의가 키웠다… 뿌리 뽑힌 삶을 털어놓는 정규환씨와 임성윤씨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르포가 이번주와 다음주, 2회에 걸쳐 실립니다. 전체 르포는 3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번호에는 1, 2장을 싣습니다. 편집자
▣ 이민호 리얼리스트100 회원·시인
유진오가 소설 를 쓴 것은 1935년 일제강점기다. 김 강사라는 인물 속에 침윤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좌절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시간은 더 가혹하게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2008년 봄날, 또 한 명의 대학강사가 이국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한 지방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있던 한경선씨다. 그의 죽음은 그간 간간이 일어났던 해프닝 같은 죽음과는 다르다. 그 자신이 왜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유서로 남겼기 때문이다. 식민지 상황도 아닌데 그 사람은 무슨 연유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스스로를 심문한 것일까? 그에게 보내는 일말의 연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이제 한 지식인이 죽음으로 이 시대의 모순을 심문했듯이 우리도 스스로를 심문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1막1장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정규환. 현재 서울의 한 대학 연구교수로 있다. 그는 한때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에서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했을 만큼 시간강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현재 그의 모습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지쳤다고 말하기에는 심중에 담아둔 말들이 그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듯 보였다.
“우리의 시간강사 문제는 문명국으로서 수치예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전임교원과 비교해서 비정규직 교수를 차별하는 곳은 없습니다. 교원이 아닌 사람에게 대학 교육을 맡기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제도적으로 소외된 경계인입니다.”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시간강사로 전전하는 한국과 달리, 다른 나라들은 우선 강의 부담이 적다. 강사의 연구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강의 수준도 유지하기 위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는 강사가 학부 교육만 담당하도록 못박고 있다. 파리2대학처럼 강사의 총 강의 시간이 1년에 96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강사와 시니어 강사로 급을 나누어 강사의 연구와 강의 업적에 따라 정규교수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본이나 독일 대학 중에는 계약 기간에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곳도 있다. 특히 도쿄대의 경우는 보험 혜택은 물론 신분보장까지 받는다( 1999년 9월20일치 참조).
혹시 시간강사의 문제는 개인적인 명예 욕구나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자기 선택이며, 전임교원이 되기까지 한 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가 아닐까?
“어불성설입니다. 시간강사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역사성을 가지고 있어요. 1977년 교수 재임용에 관한 정부의 안이 나오기까지 교수와 강사의 차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판적 지식인으로부터 취약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조교수 밑에 전임강사를 두고 강사를 이원화해 시간강사란 이름으로 교원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비판적 목소리를 무력화하려는 독재정권의 꼼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학의 고등 교원 수가 늘어나면 비판 세력이 증대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지요.”
유신정권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왜 이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자와 교수의 급여를 대폭 올려놓고 이들의 위상과 역할을 망가뜨렸습니다. 교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고, 대학은 졸업정원제 실시 이후 학생들을 30% 추가 모집해놓고는 전임교원을 쓰지 않고 시간강사로 대체했습니다. 단순히 ‘교과과정 운영에 필요한 자’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부려도 법에 저촉되지 않았습니다. 소모시켜 폐기하면 되는 정도지요. 더더욱 심각하게 된 것은 김영삼 정부의 교육정책 때문입니다. 이때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내세웠는데, 말 그대로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이 가능했습니다. 이제 대학은 장사꾼의 손에 넘어간 거지요.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하는 이 대학들은 교원 확보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려 어떤 몸부림이 있지 않았겠는가?
“무엇보다 신분보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시간강사 차별 문제를 조사해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으며, 대학강사의 지위를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만든 법안은 아직도 잠자고 있어요.”
그랬다. 이들이 촉구했던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상정도 하지 못한 채 17대 국회와 함께 역사의 수레바퀴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는 스스로를 ‘그림자 인생’이라 부르고 있다. 시간강사는 이 나라 법체계 안에서는 교원도 아니요, 노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유령도 허깨비도 아닌 것이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하며 학술 저술에 번역·저작도 한다.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이와 같이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삶의 뿌리 뽑힘이다. 그들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은 계획이 없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족의 대소사에는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세 번 걸음할 것을 한 번으로 갈음하거나 아예 발길을 끊기가 십상이고, 치솟는 집값에 전·월세 평균 거주 연한은 스무 달 안쪽입니다. 전임교수 사회에 진입하는 데 실패한 때가 공교롭게도 IMF 때였습니다. 그때 휴지 조각만도 못한 학위를 가지고 이 대접을 받느니 아예 그만두고 실팍한 생업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나이와 직능 등을 냉혹히 따져 대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병원 지하에서 염습을 하면 딱 제격이었습니다.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던 의대 교수님에게 우연히 말을 꺼냈더니 대경실색하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그러나 심각하게 꺼낸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고요.”
실제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4대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신분이다. 더군다나 전체 강의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면서도 전임교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급료를 받고 있다. 19세기 영시를 전공한 그가 낭만적 상상력을 배반한 전망을 내려놓는다.
“한국 사회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다. MB 정권하에서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희망이 없다.”
1막2장 그들을 키운 건 팔할이 사학(私學)
4월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아침.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임성윤. 화요일마다 대학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촉구하는 1인 시위 중이다. 비정규직 교수의 노동조합 결성에 많은 시간을 쏟았던 그가 들려준 것은 대학 경영의 천민자본화다.
“대학은 지금 영화 에서 보듯 아버지가 죽고 난 뒤 펼쳐진 하이에나의 세상과 같아요. 지난 30년 동안 학교 자본은 이윤에 길들여져 발상 전환을 하지 못하는 불구 상태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기업 경영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요즘엔 시간강사도 일본 만화의 캐릭터처럼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포켓몬스터는 영원한 삶을 향해 탈바꿈하지만, 시간강사는 죽음의 옷을 갈아입을 뿐이다.
“한마디로 넌센스죠.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학에서 전임을 보장하지 않는 시간강사에 ‘비정년 트랙’이라는 말을 쓰니까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그 이름을 갖다 쓰다가 요즘엔 잠잠합니다. 그게 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지요. 비정년 트랙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느 법에도 교원이라고 정해진 바가 없어요. 그 역시 시간강사에 불과합니다. 대학 경영자들은 이외에도 겸임교수, 초빙교수, 대우교수, 강의전담교수 등 다양한 이름으로 시간강사를 쓰고 있죠. 그러나 이는 대학의 교수 충원율을 높이기 위한 편법일 뿐입니다. 연구교수 또한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를 받는다는 것 외에는 딱히 신분보장을 받는 교원은 아니지요. 이 허울 좋은 교수 타이틀은 시간강사 문제의 심각성을 호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국공립대 전임강사와 시간강사 간의 임금 격차는 평균 약 3.8배로 나타났다. 국공립대 시간강사의 월평균 강의료 100만원은 3인 가구 최저생계비(월평균 93만9849원)를 겨우 넘기는 것으로, 단신가구 표준생계비(민주노총 월평균 146만2944원, 한국노총 150만4168원)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사립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전임강사와 시간강사 간의 격차는 평균 약 4.47배다. 사립대 시간강사의 월평균 강의료는 75만원이다. 2인 가구 최저생계비(월평균 70만849원)를 겨우 넘기는 것으로, 2006년 최저임금(월평균 78만648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단신가구 표준생계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전국 4년제 대학 시간강사 실태분석’ 이주호, 2006 참조).
시간강사는 무엇으로도 호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국가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4년 전에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시간강사 수는 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지금은 7만~8만 명에 이르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앞으로는 법인화와 신자유주의적 흐름으로 정규교수의 노동시장 또한 불안정해질 전망이다.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 때문에 비정규교수 노동시장은 더욱 파편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교수의 노조 조직률은 5%도 안 된다.
임성윤은 한 대학의 노조위원장으로 지금도 지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그 와중에 경남 진주 소재 한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을 강의하기 위해 서울에서 진주까지 천릿길을 다녀오는 것이다.
“진주에 강의가 있는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강남터미널로 가지요. 돌아오면 어느새 밤이 깊습니다. 그런 상태로 그냥 집으로 향할 수 없어 술 한잔 먹고 노조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러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노조일 한다고 주위 사람들은 슬슬 피하고… 완전히 기피 인물입니다. 하하! 나한테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꺼립니다. 이해는 하지요.”
시간강사에게 대학은, 특히 사립대학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그들은 사학(私學)의 부당한 대우와 횡포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지성인이면서도 아무런 저항 없이 스스로를 내맡겨야 하는 자괴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 어렵게 인터뷰한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한 지방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있다가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자 곧바로 쫓겨나듯 짐을 꾸려야 했다.
“개신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이었습니다. 시간강사보다는 조건이 나은 계약직 교수였지요. 그 전에는 농담이 아니라 연봉 300만원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했으니까요. 정년이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4대 보험이 있었고, 연봉은 적었지만 방학 때도 급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임용 조건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2년 뒤 계약이 끝나면 혹시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학교 쪽에서도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몰고 갔습니다. 천주교인이었지만 성당에 발을 끊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종교적 이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매번 학교 교목실에서 교회 출석 여부를 점검했고 일상생활까지 단속했습니다. 예를 들면 음주와 흡연은 금지였고, 시시때때로 종교 모임에 참여해야 했고,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종교 모임을 가져야 했으며, 정작 강의보다는 대외 행사나 교단 종교행사에 끌려다니며 4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몰아붙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정규직 교수의 사적인 일까지 아무 말 없이 대신 했습니다. 푸코의 소설 에 나오는 중세 수도원 같았습니다. 하지만 계약 만료가 되는 순간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연구실 자물쇠는 내가 갖고 있는 열쇠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배웅도 없이 홀로 캠퍼스를 나오면서 열쇠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4년 동안 내가 지낸 곳이 그런 곳이었다는 생각에 대학이라는 위선적 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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