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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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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만은 강남에서 교육하고 싶다

등록 2008-08-08 00:00 수정 2020-05-03 04:25

교육감 선거에 투영된 욕망… 강남의 눈에 띄는 계급투표, 강북은 ‘강남 학교’를 꿈꿨네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집이 경제력도 되고 아이가 상위권이신 분은 당연히 경쟁을 강조하는 후보를 뽑아야죠. 아이는 상위권인데 집에서 공부시킬 능력이 없다, 그러면 평등을 강조하는 후보를 뽑아야죠. 우리 아이는 자사고(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는데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거든요. 저라면 당연히 아이가 능력대로 마음껏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후보를 뽑을 거거든요. 자기 애 수준에 맞춰서 사람(교육감)을 뽑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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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교사가 1~10등 학부모를 부르다

7월17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 학부모 10명이 모였다. 인근의 한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반에서 1~10등 하는 학생들 엄마 10명을 불러모은 자리였다. 식사 자리였지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서울시교육감 선거 쪽으로 흘렀다. 담임교사는 거듭 ‘능력’과 ‘수준’을 강조했다. 한 엄마가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담임교사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솔직히 학교에 실력 없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근데 전교조 때문에 이분들을 내보낼 수가 없어요. 저희 학교 재단이 지금 고등학교를 자사고로 바꾸려고 하는데 이것도 전교조 교사들 때문에 쉽지 않아요.” 모든 게 전교조 탓이라는 투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학부모는 “자리를 끝내고 보니 교육감 선거 이야기하려고 모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의 증언.

“이제 갓 중학교 1학년이 된 애들 엄마니까 얼마나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겠어요. 그래서 다들 ‘우리 애도 (특목고·자사고 진학 대비) 시켜봐야겠다’는 열의를 품고 자리를 떴죠. 그러다 보니,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던 분들까지 특목고·자사고를 많이 만드는 후보에게 표를 줘야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이 대놓고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참석자들이 ‘그럼 누구를 찍는 게 좋겠다’고 대놓고 말하게 되고, 내용은 전교조 비난 일색이고. 사실상 선거운동 자리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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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0일 서울에서는 교육감 선거가 실시됐다. 결과는 공정택 당선자(현 교육감)의 ‘신승’이었다. 공정택 당선자는 서울 25개 구 중 17개 구에서 뒤졌지만, 서초·강남·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의 ‘몰표’로 이길 수 있었다. 강남구는 투표자의 61.14%, 서초구는 58.88%, 송파구는 48.08%가 공 당선자에게 표를 몰아줬다. 공 당선자는 서울 전체에서 2위인 주경복 후보를 2만2천여 표 앞섰는데, 강남·서초·송파에서는 6만6천 표를 더 얻었다.

‘리틀 MB’(공정택)와 ‘촛불 후보’(주경복)의 구도에서 리틀 MB가 승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웃었다. 이 대통령은 7월31일 선거 결과에 대해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했다며 “규제 완화, 공기업 개혁 등 개혁정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은 울었다. “촛불의 승리를 교육감 선거로 이어가자” “이명박 정부의 ‘미친 교육’에 제동을 걸자”고 주장해왔던 시민사회단체와 누리꾼들은 맥이 빠졌다.

‘촛불은 왜 교육감 선거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먼저 강남 지역 학부모들은 자신의 이익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쪽으로 표를 몰아줬다. 사실상 ‘계급 투표’였다. 강남구 일원동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부모들과 중고생 자녀를 둔 이웃과 이야기해봤더니 ‘변화로 인해 잃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더라”고 말했다. 그는 “그간 국제중학교부터 외국어고·과학고·민사고 등 각종 특목고·자사고에 보내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주경복 후보가) 막상 이런 학교들을 없앤다고 하니 이쪽 학부모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이야기가 퍼지면서 막판에 강남 쪽 학부모, 특히 어머니들의 투표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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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엄마들은 1997년부터 교육감 선거 경험

강남 엄마들은 간선제 때부터 교육감 선거에 참여한 경험도 많았다. 서울시는 1997년부터 학교운영위원과 교원단체 선거인이 참여하는 간선제를, 2000년부터는 학교운영위원 1만5천여 명이 참여하는 간선제를 통해 교육감을 뽑아왔다. 강남구에 사는 주부 서정원씨는 그간 여러 차례 교육감 간선에 참여했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의 주요 구성원으로, 학교운영위원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해왔던 터다. 서씨는 교육감이 교육제도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그간의 경험으로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공정택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청 중등교육국장으로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했다.

“공 교육감은 그때부터 학부모 말을 잘 들어주고 타협했어요. 우리 아이와 관련한 학교 정책들을 그때부터 우리가 사실상 만들었어요. 근데 지금 전교조 같은 (주경복 후보) 세력이 되면 엄마들 얘기가 먹히겠냐고요. 그건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고, 교육의 심각한 정치화를 가져오는 거예요.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서정원씨는 이미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낸 상태지만, 주변의 ‘전직’ 강남 학부모까지 모아 함께 투표장으로 갔다. 서씨는 “평준화로 잘하든 못하든 똑같은 교육만 받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교육의 평준화와 정치화는 정말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투표했고, 애들이 대학간 다른 엄마들에게도 전화로 투표하게 독려했다”고 말했다.

일부 강북 엄마들은 ‘강남(화된) 학교’를 꿈꾸며 공정택 당선자를 지지했다. 사실 한국의 현실에서 ‘강남’은 모든 학부모의 꿈이 아니던가.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서울 중랑구의 한 주부. 그가 공정택 당선자를 선택한 이유는 ‘광역학군제’ 때문이었다. 그는 “공정택 후보가 되면 다른 구에 있는 학교에도 지원해서 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며 “그러면 공부 잘하는 우리 둘째는 강남의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는 “중랑구가 아니라 강남에 있는 더 교육 여건이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하니, 돈이 없어서 강남에 살지 못하던 부모들에게는 큰 희망 아니냐”고 되물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부 박아무개(45)씨도 “잘하는 애들이라도 더 잘할 수 있도록 키워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향 평준화되기 때문에 공정택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강북에서 전략적 투표는 역부족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사실 강남은 ‘대한민국 국민’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표준이다.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의 질투 대상이기도 하다. 나도 돈만 있으면 강남에 집 사고, 강남 학부모처럼 조기 유학도 시키고, 사교육도 시키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다. 강남에 살지 못하면 자기 지역 안에 ‘강남’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 지역에도 특목고 하나 생기면, 우리 아이를 사교육 잘 시켜서 거기 보내고, 결국 ‘강남 아이’처럼 키웠으면 좋겠다는 환상을 가지고 소득 수준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환상’에 부합하는 후보에게 표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관심이 없기도 했다. 7월31일,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할인마트.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러 온 많은 학부모들에게 “투표에 참여하셨나요”라고 물으니 “관심이 없어서 투표를 안 했다”라고 말을 흐린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황아무개(39)씨는 “남편 휴가가 겹쳐서 물놀이를 갔다 왔다”며 “한 달에 사교육비를 50만원 정도 쓰는데 아이가 워낙 창의력도 뛰어나고 잘하기 때문에 별달리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한 달 교육비만 150만원씩 든다는 직장인 이아무개(39)씨도 “누가 돼도 지금 교육 정책과 달라질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이씨의 자녀는 현재 사립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대표는 “강남 엄마들은 교육이 삶의 일부다. 굉장히 밀착해서 교육을 경험했고, 그런 밀착으로 교육 정책들을 바꿔왔기 때문에 교육적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삶의 여유도 있다. 그러나 강북 엄마들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경험과 여유가 부족하다. 강북 지역에서 적극적 투표, 전략적 투표를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빡빡한 생활도 교육감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김아무개(38)씨는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다 보니 정신이 팔려서, ‘선거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들이라도 선거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생각이 났을 텐데, 하루 종일 아무도 선거 이야기를 안 해서 나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주경복 후보 캠프의 박범이 대변인은 주요 타깃층인 강북 지역 서민들에게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을 쉽게 전달하고, 정책의 의미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노점을 하시는 분, 세탁소·식당 등 소규모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하루하루의 생계도 벅차고 빡빡합니다. 시의원·구의원 선거도 아니고, 교육감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주경복 후보의 교육 정책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하루하루 삶이 벅찬 이들에게 ‘아이들 교육을 직접 바꿀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주경복 후보 캠프에서는 민주노총과 전노련, 철거민연합회 등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체포될 위기였고, 전노련과 철거민연합회 등은 선거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극히 약했다고 한다. 어차피 이 땅의 서민들에게는 사교육 자체가 ‘그림의 떡’이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의 경쟁은 부모의 ‘자본 경쟁’

선거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초등학생 딸과 유년기 아들을 둔 안영우(38·송파구 잠실동)씨는 “하나 있는 딸 사교육비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인데, 아들까지 학교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까 싶다”며 “자기 자식만은 특목고에 꼭 들어갈 거라고 믿는 학부모들의 맹신이 결국 자기 무덤을 팠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안씨는 투표 마감에 맞추기 위해 서울 신사동에 있는 회사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두 자녀를 둔 박월아(47·영등포구 당산동)씨는 “낮은 투표율과 선거 결과를 보고 사람들의 무관심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박씨는 “이미 그런 세상이 오긴 했지만, 내 아이가 가진 것이 없다고 뒤처지고 차별받는 세상에서 살게 될까봐, 아무리 노력해도 차이는 좁아들지 않고 그 벽이 구조화되는 사회에서 헉헉대며 살까봐 두렵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우단희(41·영등포구 신길동)씨는 “사교육비를 아무리 들여도 결국 더 나은 사교육을 찾아 경쟁하는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들러리인 학교 교육이 될 것인데, 엄마들이 그걸 모르고 ‘내 아이는 주인공이야’라는 환상 속에 빠져 사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정택 당선자는 당선 직후인 7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고교 경쟁에 불을 빨리 붙여야 할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 공 당선자는 같은 날 오전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선증을 받는 자리에서는 “세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초등학교부터 철저히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 주에 평균 7.19시간(2004년 기준,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의 사교육을 받는 한국의 초등학생들에게 공 당선자는 더 혹독한 경쟁을 주문했다. ‘고3’들에게도 역시. 아이들의 경쟁은 곧 학부모들의 ‘자본’ 경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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