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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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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경찰승진 뒤웅박

등록 2008-08-01 00:00 수정 2020-05-03 04:25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임용 배경 풀어보니… 임용 연도 비슷한 동년배끼리 경쟁하는 체제의 결정 변수는 정권 실력자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갑작스런 서울경찰청장 교체를 두고 경찰 조직 안팎이 뒤숭숭하다. 부임한 지 5개월도 안 된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이 갑자기 한직으로 밀려난 것과 관련해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촛불시위 책임을 물은 것이라든가, 서울시의회 뇌물 사건 수사 구속영장이 언론에 새어나간 ‘죄과’를 물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번 인사를 통해 김석기라는 ‘실세 경찰관’의 이름을 온 국민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어 청장의 선배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례적인 ‘발탁’ 인사가 이뤄졌을까? 우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대구 대륜고 선배인 최 위원장이 김석기 신임 서울경찰청장을 강하게 밀어줬다는 것이다. 실제, 정권이 바뀐 직후 경찰 주변에서는 김 서울청장을 아예 곧바로 경찰청장에 앉히고 싶은 게 정권의 바람이라는 말이 돌았다. 경북 경주 출신으로 경북경찰청장과 대구경찰청장을 지낸 ‘성골 TK’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서울청장은 당시 치안감이었는데 경찰청장은 한 계급 더 높은 치안정감 가운데서만 임명될 수 있기에, 이런 말은 그냥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3월 김 서울청장이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청 차장으로 부임하자 ‘그러면 차기네’라는 해설이 뒤따랐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김석기 서울청장이 어청수 경찰청장보다도 선배라는 점이다. 김 서울청장은 경찰간부후보 27기(1979년 임용)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 청장은 그 1년 후배인 간부후보 28기다. 나이도 김 서울청장이 한 살 위다.

어 청장보다 김 서울청장이 경찰 선배이긴 하지만, 사실 경찰에서 이런 관계는 다반사다. 기수 문화가 강한 검찰과 달리 경찰은 임용 연도가 비슷한 동년배끼리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김 서울청장은 한때 어 청장보다 앞서나갔다. 김 서울청장은 2000년 12월 경무관으로 승진했지만 어 청장은 그 1년 뒤인 2001년 11월에야 경무관을 달았다. 치안감은 둘이 2004년 1월에 함께 달았는데, 그 뒤로는 어 청장이 역전했다. 어 청장은 치안감 승진 2년 만인 2006년 2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하고 또다시 2년 만에 치안총감으로 승진하면서 경찰 총수 자리를 거머쥐었지만, 김 서울청장은 계급 정년을 꽉 채워 만 4년 동안 경찰청 경무기획국장과 경찰종합학교장 등 치안감 계급을 맴돌았다.

사실 올해 초 경찰청장 경쟁에서 밀린 강희락 전 경찰청 차장(현 해양경찰청장)과 어 청장의 관계도 비슷했다. 강 해양청장은 올해 2~3월 2~3주 동안 차장으로서 어 청장을 보좌했는데, 과거 관계는 정반대였다. 2001년 어 청장이 경찰청 공보담당관(총경)으로 있을 당시 직속 상관인 공보관(경무관)이 바로 강 해양청장이었던 것이다.

어 청장은 부산파, 김 서울청장은 TK

이렇듯 경찰에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상관-부하 관계가 바뀔 수도 있는데, 문제는 이런 ‘뒤웅박 팔자’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권의 실력자라는 점이다. 사실 어 청장부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참여정부 386 인사들과 인연을 쌓고 ‘부산파’ 유력자의 후원을 받게 된 것이 고속 승진의 발판이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에 새 정권에도 줄을 잘 대 정권이 바뀐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TK 정권이 들어서면서 김 서울청장은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동아줄을 잡았고, 이런 사실은 서울청장에 임명됨으로써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사실 김석기 서울청장에 대한 경찰 내부 평은 우호적인 편이다. 경찰대 출신 한 간부는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화한 편이어서 모든 사람에게서 괜찮다는 평을 받는 편”이라며 “무조건 정치권에 줄을 댔다고 하는 것은 그분으로서는 좀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컴백을 TK 정권 출범과 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김 서울청장의 행보를 걱정스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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