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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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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청계천, 펜촉에 촛불을 켜다

등록 2008-07-29 00:00 수정 2020-05-03 04:25

YTN의 날치기 주총 그 뒤… 이태희 기자가 언론노조와 함께 참석한 77번째 촛불문화제

▣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1995년 10월, 공채 8기 합격. 사회부 수습기자로 시작해 국제부, 사회부, 경제부 그리고 정치부 사이를 오가다 2008년 7월 현재 정치팀장. 얼마 뒤면 기자 생활 만 13년을 맞는 기자가 촛불을 들었다. 기자가 촛불을 들고 뛰어든 세상 이야기다. 편집자 주

7월23일 저녁 7시30분, 서울 청계광장에는 장맛비가 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주최하는 77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자리였다. 주제는 ‘언론 공공성 사수, 의료 민영화 저지’라고 적혀 있었다. 광장에 앉은 이들은 1천 명 남짓.

젖은 바닥에 알루미늄 깔개를 깔고 앉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깃발이 있었다. 그 옆으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SBS 그리고 YTN의 깃발이 보였다. 노조는 깃발을 내렸다. 청계광장 무대가 안 보인다는 주변의 ‘민원’ 때문이라고 했다.

남 일이 아닌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

청계광장 소라기둥 앞 무대에서는 호남 사투리가 걸쭉한 두 남녀가 사회를 보고 있었다. 광장 입구 좌판에서 2천원을 주고 노란색 반투명 비닐 우비를 샀다. 안과 밖, 땀과 빗물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는 우비는 더웠다. 언론노조에서 나눠주는 촛불 하나를 받아 불을 켰다. 가늘어진 빗줄기는 촛불을 끄지 않았다. 옆에 있던 노조원이 촛불을 두고 자리를 떴다. 사람은 줄었지만, 내겐 촛불이 하나 더 늘었다.

저녁 8시, 사회자가 부산스러워졌다. “길보드 18주 연속 1위, 트로트계의 떠오르는 별, 트로트계의 황태자….” 이런 말이 쏟아졌다. 반짝이 의상을 입은 남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어지는 귀에 익은 노랫소리. “무조건, 무조건이야~.” 가수 박상철이었다. 웬 트로트 가수? 잠깐만.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선택한 주제가가 이 노래 아니었던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정책에 반대한다고 모인 자리에서 듣는 이명박 대선 주제가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하긴, 와 사이의 청계광장에서 언론 자유를 이야기하는 상황 아니던가.

방송사의 카메라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강한 조명을 내쏘았다. 뉴스를 만들던 사람들이, 펜과 마이크 그리고 카메라를 놓고 본인들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질문하고, 캐묻고, 의심하는 것으로 삶을 살아온 기자들은 인터뷰 당하는 것을 껄끄러워한다. 카메라에 잡히는 자리는 기자회견의 노루목이 아니면 피하기 마련이다. 뉴스에 나오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 기자들이 뉴스 되기를 자처했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시작은 메일 한 통이었다. 노조에서 언론노조 주최의 공정방송 사수 집회가 있다는 메일을 받은 것이 오후 1시40분께였다. YTN의 날치기 주총으로 시작된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YTN 입사동기들 눈물에 심란한 마음

메일을 읽고 의 동영상뉴스 코너를 클릭했다. 7월17일의 YTN 제16기 임시 주주총회 영상을 보려는 참이었다. 17일 당일, 난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목이 터져라 외치다 목이 메이는 YTN 입사 동기(언론계에서는 같은 해 입사한 기자들은 소속사를 가리지 않고 동기라고 부른다)의 눈물로 시작되는 그 영상은 나에겐 ‘심란’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영상을 클릭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그동안 후배들에게 뭘 가르치신 겁니까. 그렇게 방송 잘하자고, 제대로 뉴스해보자고 했던 게 결국 이런 겁니까. 제 젊음을 다 바쳤습니다. 스물여덟에 들어와서 지금 마흔입니다. 선배들이 하는 것 보고 자라온 우리들입니다. 근데 이게 뭡니까.”

주총장에서 기자들은 동원된 용역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용역들의 완력에 가로막힌 기자들은 소리 지르다 속이 터져 울었다. 여의도 국회에서, 경찰서 기자실에서, 식당과 술집에서 마주 하던 그들이었다. 영상이 끝나는 순간, 4년간 끊었던 담배가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나를 청계광장까지 끌고 왔을 터다.

저녁 8시50분, 이젠 포크듀오 ‘나무자전거’(자전거 탄 풍경)가 등장했다. . 촛불문화제라더니…, 진짜 문화제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불법 야간집회’였다. 밤 9시였다. 청계광장과 태평로 사이에서 파란색 경찰 방송차량이 불쑥 들어왔다. “여러분들은 현재 불법집회 중입니다. 즉시 자진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시키겠습니다.” 밤 9시7분. 진압복 위에 남색 비옷을 입고 방패를 든 전경들이 일제히 배치됐다.

“아, 어제(7월22일)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이 촛불문화제 진압을 제대로 못했다고 해임됐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2003년 경찰청을 출입하던 시절, 한진희 청장은 경찰청 대변인이었다. 한진희 청장을 경질한 경찰은 이제 광장에 앉아만 있어도 해산하겠다고 한다. 경찰이 1980년대 폭력 진압의 상징이던 백골단을 사실상 부활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떠올랐다.

밤 9시30분, 무대에 오른 사회자는 남대문 앞 YTN 사옥까지 평화행진을 하자고 했다. 경찰은 청계광장 앞뒤를 전경버스와 방패로 완전히 막았다. 나갈 길은 없었다. 기자들도 이렇게 완강히 막는다면, 앞으로의 촛불들에게는 얼마나 ‘빡세게’ 나올까. 역시 기자들은 물리력에는 젬병이었다. 10여 분을 입씨름하다 “개별적으로 YTN 앞으로 모이자”며 헤어졌다. 줄줄이 흐르는 식은 땀을 닦으며 도착한 YTN 앞에는 10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후배와의 통화 “기사를 못쓰게 되면…”

YTN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총장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후배다. 왜 울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워낙 절절해서 그대로 옮겨본다.

“너무 참담했어요. 새벽 6시부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갔는데, 30초 만에 무너졌어요. 30초 만에 바보가 된 느낌. 사실 구본홍 사장이 왔다는 건 당장 눈앞에 안 보이니까 실감은 나지 않았는데, 선배들이 후배들을 용역들과 싸우게 만들고 자기들은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니까, 정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 너무 괴로웠어요. 회사 일 때문에, 언론의 자유라는 것 때문에 제가 괴롭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방송기자란 것이 편한 직업이 아니라서, 일로는 얼마든 고생을 할 각오는 되어 있었는데, 이런 일로 괴로워하게 될 줄이야. 민주화됐다는 이런 시대에. 정말 요즘 며칠간은 ‘내가 꿈꾸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괴로웠어요. 자려고 누우면 바윗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어요. 그간 내 인생에서 괴로운 순간도 많았죠. 연애 문제로,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해서, 일을 잘 못해서…. 근데 정말로 회사 걱정, 언론 걱정에 이렇게 마음 아파야 할 때가 오다니요. 삼성 문제가 터졌을 때 기자들이 기사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더구나 (홍석현 회장 출두 당시 법원 앞에서) 다른 기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몸으로 막는 것을 볼 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다른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삼성 비자금 사태 같은 것이 났을 때 기사를 못 쓰게 하거나, 다른 기자들을 막으라고 하면 당장 그만둘 것 같아요’라고. 근데 저에게 유사한 현실이 온 거예요. 오늘 보도국장 전달 사항에 승진 인사를 바로 하겠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4월에 할 예정이었는데, 그간의 사정으로 못했던 것을 지금 하겠다는 거예요. 아마 주요 부장부터 갈리겠죠. ‘만약 나도 제대로 기사를 못 쓰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회사를 다녀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기자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어떤 시점에 사표를 내야 할까 그런 고민도 했어요. 근데 제가 그만둘 수 없어요. 그만두면 지는 거죠. 전 기자 준비를 2년 반을 했어요. 어느 날 ‘내가 왜 기자가 되려고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체성을 찾기 위한 근본적인 물음이었죠. 그 답이 ‘나에게 기자는 사명(使命)이다’였어요. 사명이 뭐예요. ‘맡길 사’ ‘목숨 명’ 아니에요? 그것을 위해서는 목숨도 맡길 수 있다. 누군가는 기자를 직업으로 삼겠지만, 나는 사명으로 삼겠다. 그런 각오를 하고 독하게 공부해서 기자 시험에 붙었어요. 그런 각오를 하고 된 기자인데, 지금 상황에 그냥 회사를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 원망하지 않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일단은 끝까지 (사장) 출근 저지를 해야죠. 선배들 중에서는 ‘어차피 끝난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밖에서도 ‘YTN은 이미 끝난 상황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아뇨. 저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왜 구본홍 사장은 안 되지?

“어차피 과거 정부에서도 방송에 정권의 영향력은 있었어요. 정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 사장으로 왔어요. 그건 인정해요. 한나라당 성향이든, 민주당 성향이든, 민주노동당 성향이든, 정치적 성향 자체가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런데 ‘대통령 특보’라는 딱지가 문제인 거예요. 딱지 붙이고 완장 찼던 사람이 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정치하려고 정치판에 갔으면 정치를 해야죠. 정치판에 가야죠. 언론사 사장으로는 왜 와요? 대통령의 대선특보였던 사람이 공정방송을 한다고 말하면 누가 믿어요. 방송은 공정성이 생명인데.”

하긴,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언론전략을 짰던 대선특보 출신 사장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사의 뉴스를 용납할 수 있을까.

대선특보 출신 사장 앞에서 ‘바위처럼’

YTN의 공정방송 사수 집회장을 처음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YTN 노조원들은 이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리.” 제목은 이다. 이 시대는 그렇게 기자들에게 바위가 되라고 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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