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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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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맞다가 뽀뽀 받는 관료들

등록 2008-07-11 00:00 수정 2020-05-03 04:25

‘공무원 머슴론’으로 때려잡기식 압박 가하던 이명박 정부… 위기 처하자 청와대 수석비서진에 전진 배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그것 봐라, 교수나 정치인들로는 안 된다.” 6월20일 제2기 청와대 수석비서진에 관료 출신 참모들이 대거 기용되자 관료사회에서 나온 말이다. 정동기 민정수석(전 법무부 차관), 박병원 경제수석(전 재경부 차관), 강윤구 사회정책수석(전 복지부 차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외교통상부 제2차관), 박길상 사회문화수석(전 노동부 차관) 등 5명의 면면을 보면 50대 관료 출신의 약진이 뚜렷하다. 행정고시 출신인 박재완 정무수석이 국정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것까지 포함하면 수석비서관 9명 중 6명이 관료 출신이다. 경제·사회정책·외교 분야에 관료 그룹을 대거 등용한 것으로, 교수 일색이던 제1기 수석비서진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촛불 정국’을 감안해 정책 경험이 많고 전문성이 있는 관료들을 구원투수로 전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교수의 시대가 벌써 가고 엘리트 관료의 시대가 왔다”는 말도 나온다.

고위직 민간 영입·인원 감축

이명박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공무원은 머슴”이라거나 “공무원은 우리 시대의 걸림돌”이라고 말하는 등 공무원 사회와 ‘척지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던 것에 비춰보면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과연 이명박 정부 역시 역대 정권에서처럼 관료사회에 벌써 장악된 것일까? 참여정부는 초대 청와대 비서관 인사에서 공무원을 거의 등용하지 않았고, 국민의 정부 역시 관료를 배제하고 교수·정치인들을 내세워 개혁을 추진했으나, 결국 정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관료들에 의존하고 말았다. 역대 정권의 경우 초반에는 대통령 친위 그룹을 중심으로 개혁 드라이브가 이뤄지다가 나중에 관료들이 권력 ‘이너서클’에 진입하는 형국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촛불 정국에 빠져들면서 관료들의 진출이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작은 정부’와 ‘규제 철폐’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직사회는 크게 흔들려왔다. 새 정부 첫 내각과 청와대 수석 그리고 공공기관장 자리를 고위 공무원 대신 교수 등 민간 출신이 대거 차지하고, 새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공무원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신분 보장도 불투명해졌다. “관료 출신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특히 정부 조직 개편으로 발생한 ‘정원 외’ 4급 이상 무보직 대기 인력 205명이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입교하면서 동요는 더욱 고조됐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6개월간 ‘새 정부 국정이념 이해 증진 교육’ 등을 받고 있다. 6월30일자로 1차 교육이 끝났고, 각 중앙부처마다 인사위원회를 열어 결원이 생긴 자리에 이들을 충원할지 여부를 심사하는 중이다. 일부 고위 공무원들은 보직을 받지 못한 상태로 교육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자 ‘울며 겨자 먹기’로 명예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산하기관장 자리에는 가능한 한 고위 공무원을 기용하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방침도 명예퇴직을 부추겼다(상자기사 참조).

물론 규제를 없애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권에서 공무원 사회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자유시장 근본주의를 믿는 정권에서 정부는 최소화해야 할 대상이고, 결국 관료를 보는 시각이 곱게 형성될 리 없다. 우리나라 관료들의 정책 능력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철학으로 내면화된 ‘정부 불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예전에 사업하면서 느꼈던, 공무원에 대한 ‘사업가로서의 불만’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계 일각에서 “관료사회에 대한 통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의 접근 방식이 상당히 미숙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정권 교체로 집권한 정부일수록 기존 공무원들이 펴온 정책 기조에 불만을 품을 수 있고, 관료세계 개혁과 장악에 나서게 된다”며 “그러나 ‘공무원 머슴론’을 내세우는 것 같은 권위주의형 혹은 CEO형 리더십을 통해 관료를 통제하려는 건 오버”라고 말했다.

사실 새 정부는 지난 10년간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권의 지휘 아래 관료들이 만들어 실행해온 재벌 규제와 복지 정책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다. 관료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개인적 불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정권을 ‘실패한 좌파 10년’이라고 보는 인식 때문에 엉뚱하게(?) 엘리트 관료들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진보 세력이 집권하면 거기에 맞게 정책을 실행하고,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거기에 맞춰 또 정책을 바꾸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재진 교수는 “우리나라 의회는 정책정당 기능이 취약하고, 관료를 지휘할 만한 정치인들의 정치 역량도 없기 때문에 결국 관료사회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정부의 경우 오직 경제 살리기만 내세워 집권했기 때문에 관료집단을 통제하면서 이끌고 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부처의 경우 강만수 장관 같은 ‘정통 경제관료’의 전문성에 갈수록 더 의존하고 있다.

전형적인 건설업 리더십

김광호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실용’을 내세우면서도 규제 타파에만 매몰되는 건 또 다른 이념주의다. 정부가 꼭 수행해야 할 역할마저 없애려고 하면 안 된다”며 “아무리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해도 그것이 곧 공무원을 잘라내는 것으로 이어지는 건 자의적인 것이고, 실용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정권이든 행정부 조직을 통해 국정을 펼칠 수밖에 없는데, 데리고 같이 일할 공무원들을 대통령이 폄하하면서 사기를 떨어뜨리는 건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이야 ‘철밥통’ 공무원 조직을 개혁한다고 하면 당장 박수를 보낼지 모르지만, 때려잡기 방식으로 관료조직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양재진 교수는 “공무원들에게 새 국정 철학을 설득시키고 힘을 북돋우면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요즘 세상에 ‘머슴’이라고 몰아붙이고 또 새벽같이 일찍 출근해 일하라고 다그치면서 끌고 가려는 건 세련되지 못한 방식”이라며 “건설업을 하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어설픈 방식으로 정부 개혁에 나서면서 관료들과 불화를 빚어왔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와중에 경험 많고 노회한 관료들의 위기 수습 능력을 활용해 국정 혼란을 타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명예퇴직 신청자 증가

국토해양부, 지난해 상반기의 3배

이명박 정부의 공무원 정원 감축에 따라 명예퇴직을 신청해 공직생활을 끝낸 공무원이 크게 늘고 있다. 6월30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새 정부 들어 명퇴를 신청해 공직을 마감한 인원은 75명으로 집계됐다. 건설교통부 시절이던 지난해 상반기 명퇴 인원(27명)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국토해양부는 건설교통부에다 해양수산부의 해양정책·물류항만 기능이 보태져 탄생한 부처다. 직급별로 올해 명퇴자는 고위공무원 6명, 3급 2명, 4급 14명, 5급 10명, 6급 43명 등이다. 대부분 정원 감축에 따라 보직이 부족하자 옷을 벗은 공무원들이다. 행정안전부는 7월15일까지 중앙부처별 명퇴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공직사회 개혁과 연금개혁 논의가 나오면서 2004년 이후 국가공무원 명퇴 신청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한 해 동안 명퇴수당을 받고 퇴직한 국가공무원은 1656명(교육공무원과 군무원 제외)에 이른다. 20년 이상 공무원으로 근속하고 정년퇴직이 1년 이상 남은 사람이 명퇴 대상이다. 명예퇴직이 인정된 국가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퇴직 당시 월 봉급액(각종 수당을 뺀 순수 기본급의 81%)의 절반을 명퇴 수당으로 받게 된다. 정년이 1∼5년 남은 공무원은 남은 개월을 모두 명퇴 수당 지급 기간으로 인정해준다. 즉, 정년이 5년 남았다면 60개월분의 명퇴 수당을 받는다. 정년이 5∼10년 남았다면 5년까지는 전부 인정해주되, 나머지 초과 기간은 절반만 인정해준다. 즉, 6년 남았다면 ‘60개월+6개월’이 된다. 물론 기소 중이거나 감사·수사를 받고 있는 공무원은 명퇴 수당 지급에서 제외된다. 명퇴자 수와 명퇴 예산은 각 행정기관이 운영하는데, 최근 명퇴자가 늘면서 총액인건비 중 다른 항목에서 돈을 빼내 명퇴 예산에 충당하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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