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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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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강우로 백두대간이 무너진다

등록 2008-06-20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리산·설악산·덕유산을 헬기로 살펴보니 토사유실로 스키장이 생긴 것처럼 암반 드러나

▣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백두대간이 대규모 산사태로 무너지고 있다. 설악산의 대청봉과 중청봉, 덕유산 향적봉,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등에서 스키 슬로프가 개설된 것처럼 숲이 쓸려나갔다. 이런 현상은 주능선과 산 정상부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리산 2004년 이후 4개소 추가

산사태 현장은 하늘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 5월 헬기로 접근해 하늘에서 살펴보았다. 지리산의 경우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사방 어디에서든 산사태가 난 모습이 보인다. 하늘에서는 4~5km 전방에서도 산사태가 난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현장 가까이 헬기로 선회하다 보면 더욱 선명하게 산사태의 모습이 관찰된다. 능선이나 산정부에서 바라보면 깊은 계곡까지 허옇게 암석이 드러난 띠가 길게 이어진다. 나무 하나하나가 관찰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300~500m까지 접근해 보면 산사태가 쓸고 간 현장은 참혹하다. 숲으로 뒤덮였던 곳에는 암반만 남아 있다.

지리산의 산사태가 최초로 목격된 것은 1990년 중봉 지역에서였다. 천왕봉 정상에서 탐방객들이 확인한 결과다. 이후 2004년 헬기 조사에서 지리산 천왕봉∼중봉 및 제석봉∼세석평전 일대의 총 26개소에서 자연적인 산사태가 발생했다. 2008년 5월 현재, 이 26개소에 4개소가 추가돼 30개소가량이 됐다. 중봉 지역의 산사태 지점은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모습이 산자락인 함양 마천면과 남원 산내면 등지에서 관찰될 정도다. 특히 겨울철 눈이 내린 이후에는 지리산에 대형 스키장이 세워진 것은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간 지리산의 산사태만이 파악됐는데, 이번 5월 조사에서는 설악산과 덕유산, 소백산 등 주요 백두대간 능선에서도 산사태가 관찰됐다. 설악산을 하늘에서 보면 아찔한 전모가 드러난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의 경우 북사면인 천불동 계곡 방향으로 대형 산사태가 2개소 발생했다. 설악산 산사태는 중청대피소에서 직선 거리로 700m, 설악산 정상 사이의 등산로 바로 옆이다. 걸어서 정상으로 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다. 헬기로 보면, 숲을 도려낸 것처럼 넓고 깊게 토석이 쓸려간 흔적이 그대로 나타난다. 길이가 1km가 넘고, 폭도 30m가 넘는다. 설악산 정상에 새로운 계곡이 생긴 듯하다. 대청봉은 오색 쪽인 남사면에도 설악폭포 아래를 향해 길이 1.5km, 폭 25m가량의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중청봉 주변에도 봉우리와 능선을 중심으로 서북쪽 사면을 따라 8개소 이상에서 규모가 큰 산사태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아래 계곡까지 길게 이어졌다.

인위적인 개발과 거리가 먼 곳에서 발생

설악산 주능선의 산사태는 2006년에 처음 발생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을 거치면서 대청, 중청, 서북 능선 등을 비롯한 주능선 지역에 총 50곳 이상의 자연적인 산사태가 발생했다. 해발 1700~1800m에서 발생한 곳만 20개소 이상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전체 지역에서는 200개소가 족히 넘는다.

소백산의 경우 연화봉을 중심으로 주능선 일대에 폭 10m 내외의 산사태가 발생했다. 설악산과 지리산 등에 비해 규모와 빈도는 적은 편이지만 도솔봉 지역, 충북 단양군 대강면 성금리 일대에서는 길이 500m, 폭 30m가 넘는 대규모 산사태가 관찰됐다.

덕유산은 2004년 전후 정상 능선을 중심으로 서쪽 사면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구상나무와 주목 등을 중심으로 생태적으로 극상림에 해당하는 덕유산 향적봉∼중봉 일대다. 길이 1km 이상, 폭 20m가량 되는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난 곳도 2개소가량 보인다. 이 현장은 10km 상공에서도 보일 정도다. 덕유산 서사면을 길게 잘라낸 모습이다. 띠 같은 상처 자국을 현장 가까이 200m 상공까지 다가가 살펴보면 수목은 물론이고 토양과 암석까지 대부분이 쓸려나갔다.

산사태가 발생한 곳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으로, 대부분이 국내 으뜸의 생태계를 간직한 곳이다. 국립공원 중에서도 절대보전 지역에 해당하는 자연보존지구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산사태가 국내의 산림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산사태와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간 산사태의 원인은 산림 황폐화나 송전탑·임도·도로 건설 등 인위적인 개발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백두대간의 산사태는 이런 인위적인 개발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조선시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규모 산사태 기록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심각성이 더해진다.

현재까지는 집중강우에 의한 토사 유실 이외에 발생 원인을 해석할 길이 없다. 2007년에 조사하고 올 3월27일 발표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산사태 대책 보고서’에서도 국립공원 산사태의 직접적 원인을 집중강우로 꼽았다. 산악형 국립공원의 강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 지역보다 최고 1천mm 정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 설악산·소백산국립공원을 비롯한 국립공원 지역에서 발생한 산사태도 집중호우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즉, 기후변화의 한국적 징후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국지성 호우와 집중강우가 빈번히 발생했고 이것이 산사태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산림 및 자연재해 분야의 전문가들도 백두대간 산사태의 원인에 대해서 집중강우로 정리하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권태호 대구대 교수(산림자원학)는 이 집중강우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징후라고 본다. “한반도 차원에서 나타나는 기상이변의 징후다. 더욱이 백두대간이기 때문에 우연히 일어났다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번과 같은 산사태는 적어도 재해든 환경이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일들이 나타난 것이다.”

현재로서는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절실하다. 정부 차원의 대응은 지난 2004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지역의 실태조사를 한 것과 2007년 재해 예방 차원에서 산사태 대책을 마련한 것이 전부다. 백두대간의 주요 능선부에 강우 및 기상 측정망을 가동해 비와 바람은 물론이고 기상 관련 현장 정보를 좀더 촘촘히 파악해야 한다. 현장을 직접 조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기와 인공위성 등을 통한 입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백두대간 및 국립공원의 대규모 산사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땅바닥에서는 전체적인 양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

백두대간은 기상변화의 ‘카나리아’다. 변화를 민감하게 먼저 감지한다. 백두대간은 한반도 전체 하천의 수계 및 유역을 나누는 분수령으로 기후 및 기상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지점이 바로 백두대간 주능선 지역이다. 기후변화가 육지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태계와 자연환경 전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려면 백두대간을 주목해야 한다. 백두대간의 산사태는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다. 백두대간은 그 징후와 흔적을 생채기처럼 싸안고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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