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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하면 기름값은 아낀다

등록 2008-06-17 00:00 수정 2020-05-03 04:25

멈춰선 화물트럭·버스·택시기사의 끔찍한 마이너스 노동…화물연대 파업은 이명박 정부의 서민정책 시험대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살인적인 기름값 폭등의 1차 타깃은, 바로 기름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서민들이다. 화물트럭·버스·택시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잇따라 빨간 머리띠를 매고 생존권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왜 운전대를 놓고 길거리로 나서는 것일까?

“파업하다 죽으나, 앉아 있다 죽으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완성차를 전국 각지의 출하센터로 옮기는 일을 하는 김상수(50)씨. 흔히 카캐리어 화물 노동자로 불린다. 그 역시 화물연대 소속이다. 김씨는 6월9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일을 하면 할수록 수입은 ‘마이너스’다. 파업을 하면 그나마 기름값은 아낄 수 있다고 했다.

할부로 산 화물차 때문에 타격 더 커

김씨가 승용차 또는 승합차 6대를 울산에서 인천으로 수송(왕복)할 때의 대차대조표를 한번 보자. 일단 경유 280ℓ를 주유해야 한다. 경유값이 1900원이라고 치면, 유류비는 53만2천원이다. 고속도로 요금 5만2800원, 식사비 2만원, 지입료·타이어 교체비·오일교환·보험료 등을 한 달 평균으로 나누면 6만6250원쯤 된다.

하지만 그가 받는 운송료는 56만1088원. 한 번 뛸 때마다 10만9962원이 적자다. 18시간 노동에 대한 임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돈을 쏟아내야 한다. 그의 통장에는 마이너스 800만원이 찍혀 있다. “대학생인 두 딸은 다음 학기에 휴학계를 낼 겁니다. 늦둥이 초등학생 아들은 세 살 때부터 태권도를 가르쳤는데,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런데 지난 4월부터 그마저도 끊어버렸어요.”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1997년 ℓ당 300원 하던 경유가 지난해 말 1300원으로 올랐고, 지난달에는 2천원까지 치솟고 있다. 화물 노동자들은 화물차를 할부로 산 경우가 많아 타격은 더 크게 다가온다. 1억2천만원짜리 화물차를 살 경우, 보통 5년 동안 300만원 안팎의 할부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할부금 내기가 버겁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막판까지 몰린 사람들이 많다.

화물은 화주(짐주인)→ 알선업체→ 운송업체→ 화물운송 노동자 등 하청에 재하청을 거쳐 운송된다. 그러다 보면 화주가 100을 운송료로 줬다고 하면 화물운송 노동자는 중간 단계를 거치면서 37을 떼인 63을 운임으로 받는다.

화물연대는 유가 대책과 표준요율제(최저임금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또 화주와 운송업체가 운송료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힘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화물연대 쪽은 정부와 지금까지 수십 차례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협상은 항상 제자리였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정부의 고위 인사는 “화물연대의 요구 조건은 각 부처마다 연관돼 있어 하나의 부처가 주도적으로 처리하기 쉽지 않다. 청와대에서 부처 의견을 조율해 조정을 해줘야 한다. 즉,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쇠고기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런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에선 노동계 현실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에선 다른 해석도 내놓는다. 한 화물연대 조합원은 “청와대와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안 보인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 사이에선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장기간 끌고 가, 촛불 정국을 파업 정국으로 돌리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2003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화물연대 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 동참이 크게 늘고 있다. 심동진 화물연대 사무국장은 “2003년에는 운송료를 좀더 올려달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 화물연대 파업은 이대로 가다가는 최소한의 생활도 못한다는 생존권 차원의 저항이다”라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6월1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곧바로 주말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파업은 월요일인 16일에 시작될 전망이다. 금요일인 20일쯤이 파업 장기화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덤프트럭·굴착기·레미콘 노동자들도 16일 파업을 결의했다.

고유가는 서민의 발인 버스와 택시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전국 533개 버스운송사업자의 모임인 전국버스연합회도 정부가 관련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16일부터 전국 버스 운행 노선의 30%를 감축 운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기름값 인상→ 적자 누적→ 일자리 감축→ 서민 교통수단 감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정부에 노동 전문가가 없다

전북의 ㅈ버스회사. 시내·외 버스와 고속버스 250대를 운행하다 이달부터 시외버스 30대를 멈춰 세웠다. 기름값이 너무 오른 탓이다. 차만 멈추는 게 아니다. 차를 운전하는 노동자들도 덩달아 줄여나가야 했다. 다행히 노사는 마라톤 협상 끝에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대신 노동일수를 ‘21일 만근’에서 ‘20일 만근’으로 줄였다. 고통을 분담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근무일수가 감축돼, 임금이 개인당 평균 10만원 정도씩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들도 고통을 받는다. 하루 10회 다니는 노선이 7회로 줄어들고, 7회 노선은 5회로 축소됐다. 배차 간격이 더 길어진 것이다. 시외버스가 운행되는 지역은 도시와 달리 지하철이나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시외버스 배차 간격이 줄어드는 것은 도시보다 더한 타격으로 다가온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 역시 노년층과 출퇴근 노동자, 도시로 통학하는 학생 등 교통 약자들이다.

이 회사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름값 폭등에 있다. 기름값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3%까지 올라왔다. 5월에 17억원 적자를 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죽는다는 생각이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 퍼져 있다.

앞으로 기름값이 계속 오르면 어떻게 될까? 이 회사의 분석을 보면, 경유값이 ℓ당 2천원대로 몇 달만 지속하면, 차량 200여 대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버스기사 375명 가운데 300여 명이 줄어들고, 총무·경리·수금사원, 정비기능사 등도 따라 해고해야 한다. 지방 서민들의 교통 불편도 더 커진다. 감축 운행이 아니라 노선 폐쇄까지 불가피한 곳도 생길 수밖에 없다.

버스 기름값이 매출액의 53%

택시 쪽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LPG의 경우 지난 1월 ℓ당 94원 인상된 데 이어, 6월에는 78원 올랐다. 하루 12시간 운행하는 택시에 들어가는 LPG는 40ℓ. 보통 25ℓ는 택시회사가 부담하고 20ℓ는 운전기사가 부담한다. 한 달 26일 만근으로 따져보면, 택시기사는 지난해 말에 견줘 6월에는 8만8440원의 가스값을 더 내야 한다. 개인택시의 경우는 더하다. 지난해 말보다 한 달에 30만~40만원의 LPG 비용을 더 내야 한다.

일부 택시회사에선 가스값이 늘어난 만큼 이를 사납금 인상을 통해 택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결국 더 많은 사납금을 벌기 위해 택시기사들은 합승과 승차 거부, 무리한 주행으로 내몰리게 된다.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노조원들의 요구는 표준요율제 도입과 다단계식 알선구조 철폐였다. 5년이 흐른 오늘도 노조원들은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촛불시위에 화들짝 놀란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신 ‘서민 프렌들리’로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밝혔지만, 같은 서민이라도 노동자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책만 내놓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은 이명박 정부 서민정책의 본격적인 시험대이자 앞으로 이 정부가 어떤 식으로 노동정책을 펼쳐나갈지 엿보게 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전세계 화물노동자가 연대 파업

프랑스·영국·불가리아·스페인·포르투갈에서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6월7일 원자력 단지로 이름난 일본 혼슈의 아오모리에 11개국 에너지 관련 부처 장관들이 긴급 회동을 위해 모여들었다. 2박3일간 열린 회의에 참가한 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 8개국(G8)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인도였다. 이 11개 나라는 전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약 65%를 차지한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전세계 경제가 극심한 불황으로 내몰릴 게다.” 아랍 위성방송 는 6월9일 인터넷판에서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산업상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앞서 참가국들은 6월8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한목소리로 원유 증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OPEC 회원국들은 “시장에 원유는 충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OPEC 회원국인 리비아 국영석유공사 소크리 가넴 사장은 6월9일 과 한 인터뷰에서 “투기세력의 발호와 국제정치적 불안정이 원유값을 비정상적으로 올려놓은 주범”이라며 “현 원유 공급량은 충분하다”고 못박았다.
“아직 멀었다. 유가 상승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급기야 파국을 예고하는 불길한 예언까지 등장했다. 영국 는 6월11일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가스업체인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의 최고경영자 알렉세이 밀러의 말을 따 “가까운 장래에 1배럴에 250달러 선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쯤 되면 백약을 쓴들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인 게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화물·운수 노동자들이 유가 인상에 따른 수입 손실분 보전과 유류세 인하·면제를 요구하며 도처에서 생존권 투쟁에 나서는 건 당연했다.
지난 5월3일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도로를 화물운송 노동자들과 택시 노동자들이 가로막으면서 유럽에서 고유가 관련 시위가 본격 시작됐다. 5월28일 불가리아에선 화물 노동자들이 수도 소피아 외곽에서 트럭 150여 대를 동원한 항의시위를 벌였고, 영국에선 노동자들이 런던으로 향하는 도로를 봉쇄해버렸다. 고유가에 민감하기는 어민들도 마찬가지였다. 5월30일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어민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날 스페인에선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의했고, 어민들은 수도 마드리드로 몰려들어 20t가량의 수산물을 시민들에게 거저 나눠주며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영국 어민들도 6월3일 런던 한복판에서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고, 이튿날인 4일엔 벨기에 어민 시위대가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인근에서 경찰과 충돌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은 극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파업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차량 통제를 하던 노동자들이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AFP통신〉은 6월10일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북부 알카네나 교외에서 파업 중이던 50대 노동자가 화물운송을 막기 위해 트럭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바퀴에 깔려 숨졌다”며 “또 스페인에선 남부 그라나다의 한 대형 마트에서 파업을 깬 화물차량 운행을 가로막던 노동자가 승합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파업은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AFP통신〉은 6월13일 영국 중서부 엘스미어 지역의 로열더치셸 석유저장고에서 유조차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전역에서 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대한 기름 공급이 중단됐다. 극한에 몰린 노동자들에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도 ‘지구적 현상’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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