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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신봉자의 과학적 오류

등록 2008-05-30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김종훈 교섭본부장이 그토록 강조한 ‘과학’… 재판정에서 가려지는 ‘과학적 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font>

▣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font color="#C12D84">[미국산 쇠고기 파동] </font>

“지난 4월18일 한-미 간에 합의한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은 우리 검역당국이 국민건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과 지금까지 제시된 과학적 근거, 지금까지 채택된 국제기준에 따라서 협상한 결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사정 변경이 크게 발생하면 물론 재협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과학적인 발견이 있거나….”

인간 광우병 발생 전까지 인체 유해성 부인

지난 5월20일 오후 2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브리핑에 나섰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교환한 서한의 내용을 ‘추가 협의’란 이름으로 공개한 이날 브리핑에서 김 본부장은 유독 ‘과학’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국민적 논란을 지켜보고, 마지막에 제가 추가 협의에 나서고 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여론이 탄탄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여론’이 비과학적이란 쓴소리다.

월령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에 대해서도 ‘과학’을 들이댔다. 그는 “30개월 이상, 이것이 분명히 굉장히 해롭고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이 틀렸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우리 스스로 발견을 하고 뒤집으면 된다”며 “그런데 제가 아는 한 그러한 발견이 우리나라 안에서뿐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아직 유효하게 뒤집을 만한 과학적인 발견이 없었다고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상교섭본부가 작성한 녹취록을 보면, 이날 그는 모두 23차례 ‘과학’을 입에 올렸다.

그러나 김 본부장이 한 가지 잊은 게 있다. 과학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과학적인 발견’은 언제고 나타난다. 이를테면 영국 정부는 1986년 광우병 발병 사실을 처음 공개하면서 인체 유해성은 부인했다.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른 1996년에야 ‘인간 광우병’을 인정했다. 유럽은 ‘광우병 공황’에 허덕였다. 과학을 말할 땐, 그래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김 본부장이 외면한 것도 있다. 그토록 강조한 ‘과학’적 사실이다. 미국의 광우병 감시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점은 그동안 여러 차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다. 사례가 필요한가? 일본 위생학회가 펴내는 2005년 5월치에 실린 나오루 로이즈미·히로시 이구치(이상 효고대)·토니 스미스(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연구팀이 쓴 ‘미국과 일본의 광우병 감시체계 비교·검증 연구’ 논문을 들여다보자.

지난 2003년 12월 미 서부 워싱턴주에서 광우병 사례가 발견된 이후 쇠고기 수출길이 막히자, 미 농무부는 2004년 6월부터 광우병 감시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강화’라기보다 ‘신설’에 가까웠다. ‘고위험군’(주저앉는 소, 농장에서 죽은 소, 중추신경계 이상 증세를 보이는 소 등)으로 분류된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가 시작됐다. 당시 미 농무부는 “강화된 광우병 감시 프로그램에 따라 한 해 26만8천 두의 소를 검사할 경우 99% 신뢰수준에 1천만 마리당 1마리만 감염됐어도 이를 찾아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불안한 간격, 173만 마리 대 4만 마리

하지만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런 주장엔 ‘과학적 오류’가 있음이 드러났다. 미 농무부가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는 월령 30개월 이상 일반 도축소’에선 광우병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란 전제 아래 이 부류의 소를 광우병 검사에서 배제한 탓이다. 일본 검역당국이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는 도축 월령대 소 138만7522마리를 검사한 결과, 3마리(전체 검사 대상의 0.00022%)에서 광우병이 발견됐다. 이들 3마리가 미국에 있었다면, 광우병 검사를 아예 받지 않았을 게다. 연구팀은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에선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는 월령 30개월 이상 소가 해마다 580만 마리나 광우병 검사 없이 도축된다. 일본의 통계를 대입하면, 이들 가운데 13마리는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 미 농무부의 주장대로 광우병 감시 프로그램이 99%의 신뢰수준을 확보하려면, 통계적으로 이상 징후가 없더라도 월령 30개월 이상 소 173만116마리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해야 한다. 이는 그동안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았던,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은 도축 월령대 소의 30%에 이르는 수치다.” 지난해 미 농무부는 전체 도축 물량 3500만 마리 가운데 단 4만여 마리를 검사하는 데 그쳤다. 이쯤 되면 과학적으로 ‘불안’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미 농무부의 ‘과학적 고백’도 불안을 키운다. 미 워싱턴DC 지방법원 민사소송 사건번호 제06-0544호로 등재된 ‘크릭스톤팜스 대 농무부’ 사건 판결문에서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원고인 크릭스톤팜스(이하 크릭스톤)는 한 해 약 30만 마리의 도축소를 판매하는 대형 쇠고기 유통업체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 사례가 보고되면서, 이 업체는 매출이 35%가량 급감했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면서 하루 20만달러가량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불안감’이 문제였다. 상황 타개를 위해 크릭스톤은 자사 도축소에 대해 광우병 전수검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약 50만달러를 들여 캔자스주 아칸소 시티에 자체 광우병 검사실을 갖췄다. 또 광우병 검사·진단 전문업체인 프랑스의 ‘비오라드’로 인력을 파견해 검사방법 훈련을 받도록 하는 한편, 이 업체에 광우병 검사·진단 장비 구입을 타진했다. 하지만 비오라드 쪽은 “미 농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판매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크릭스톤은 미 농무부에 수입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 농무부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크릭스톤은 2006년 3월23일 소송에 나섰다.

법정 공방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재판 과정에서 미 농무부는 “전수조사보다 고위험군 샘플 조사가 광우병 소를 찾아내는 데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광우병 검사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란 게다. 재판을 맡은 제임스 로버트슨 판사는 판결문에서 농무부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업체 검사 장비 수입, 미 농무부가 거부

“광우병은 감염 이후 병증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 기간이 2~8년으로, 평균 잠복 기간만 5년이나 된다. 따라서 월령 30개월 미만 소에서 광우병 증세가 나타나는 건 매우 드물다. 현행 검사법으론 광우병 증세가 나타나기 2~3개월 전에야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병에 걸린 도축 월령대 소를 검사하더라도, 광우병 진단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미국에서 식용으로 시판되는 소는 대부분 월령이 24개월 미만이다. 따라서 30개월 미만 소를 전수조사하는 것은 식품 안전도를 높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되레 오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낼 우려마저 있다.” 스스로 ‘과학’의 신뢰도에 생채기를 낸 셈이다.

결국 법원은 지난해 3월29일 크릭스톤 쪽의 손을 들어줬다. “…유럽연합은 ‘고위험군’이나 ‘의심군’뿐 아니라, 식용으로 도축되는 30개월 이상 된 소에 대해 광우병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또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선 24개월 이상 도축소 전체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한다. …농무부가 민간업체의 광우병 진단·검사 장비의 구입과 사용을 금지하는 충분한 법적 권한을 가진 건 아니다.” 미 농무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고, 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과학’은 때로 법정에서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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