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깊숙히 보기①…인간을 ‘죽게 내버려 두는’ 시대, 그들의 소망
▣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과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미국산 쇠고기 파문]
“‘그 많던 대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라고들 묻는데 너희는 왜 집회 안 갔냐?”
대학 1·2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누가 하겠지. 내가 안 해도… 할 일이 너무 많고….”
“나도 10대에 미얀마 사건 났을 때 막 흥분했었고, 수능 등급제 반대도 하고, 학교 비리를 풀어보려고 앞장서서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보니까 어른들 밥그릇 싸움이더라. 울면서 나가는 선생님이나 빨간 띠 두르고 온 사람들이나…. 환멸을 느꼈다. 그냥 힘이나 키워야지.”
“풋내기들이 뭘 하겠나. 전문가들이 해야지. 그 애들은 기계적 공부에 진력이 나고 자기들을 경쟁으로 몰아넣은 교육정책에 대한 일탈의 통로를 찾은 거다. 기회다 싶어서 나간 것이지….”
대학생들의 냉소와 패배주의
“한번 나가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많이 하고,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도 보기 싫고, 누군가가 조직하는 것 같은 것도 싫고….”
물론 대학생들 중에는 날마다 집회에 가서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대학 1·2학년 ‘다중’은 대체로 냉소적이거나 패배주의적이거나 유보적이다. 실은 학점 관리와 영어 공부 등 자기 앞가림 하느라 고교 4·5학년처럼 쫓기며 지내고 있다. 그럼 고등학생들은 웬일로 거리에 나왔을까?
사용자제작콘텐츠(UCC) 동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지난 5월3일 열린 서울 청계천 광장의 대규모 집회(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물문화제) UCC를 보면 두 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무대에 올라가서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5년 지나면 스물 한 살입니다~ 이제 캠퍼스 누비면서 자유를 누릴 시간입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힘들게 지냈는데, 그렇게 자유로울 때 죽기 싫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잃기 싫습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더욱 낭랑하고 힘찬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얘 친구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EBS 지식 채널에서 광우병 동영상을 봤습니다…광우병에 걸린 소가…서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무지한 소녀들의 울부짖음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친구가 이어서 말한다.
“동방신기 한번 더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더 보고 싶고, 동방신기가 아픈 것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이상 http://blog.daum.net/spottv/3989345)
어른들은 흥미로운 분석들을 한다. ‘철없는’ 10대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가수 ‘오빠’가 나중에 군대 갈 때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고 죽을까봐 열성적으로 시위에 참여한다거나,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나이에 ‘괴담’을 퍼뜨리며 거리로 나왔다는 이야기들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10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건은 의미심장한 일이며, 나는 그것의 의미심장함을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보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
초반에 촛불시위를 ‘거국적 행사’로 주목받게 한 주체는 팬클럽 멤버들이었다. 스타를 아끼는 팬들의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이다. 대중문화를 향유하지 않는 기성세대는 이런 팬덤(팬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애국심과 비슷한 것이다. 일제시대 이후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해서 무엇이든 내주고 싶어했던 것처럼, 팬들도 좋아하는 스타를 사랑하고 그의 건강을 돌보고 그에게 헌신하고 싶어한다. 10대의 어머니들이 교회에서 목사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헌신하듯이 말이다.
학교의 규율관리 체제에 적응하면서 내신관리를 해야 하고 방과후에는 밤 12시까지 학원에 가는 분주한 삶이지만,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동방신기’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이미 태안반도 봉사활동을 다녀왔고 스타 오빠를 위한 홍보 활동도 해왔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작은 생활 반경을 넘어서 거리로 나오고 ‘사회’ 안에서 자신을 보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돌보는 마음’이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애국심이라는 감정이 유럽에서 1·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으로 삶을 초토화시켰었고 또 베트전과 이라크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아는 지식인들은 집단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위험시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사랑은 사회학자 뒤르켕이 말한 대로 인간 삶을 이루는 기본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모두를 자기애에 빠지게 하는 사회,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보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배려하고 염려하는 마음은 점점 소멸되어 가기에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새롭게 발견한다.
광우병 촛불시위의 불을 지핀 10대들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정이 든 ‘사회’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 그 사회를 위해 자기를 넘어서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을까? 우리 세대는 부모를 위해, 학교를 위해, 선생님을 위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헌신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헌신적 사랑이, 실은 한 사람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지탱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어릴 때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사랑하는 마음, 돌보는 마음을 어디서 키워가고 있는가? 학원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신자유주의가 위험한 것은 돈 외의 것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헌신적인 사랑의 능력을 가진 아이를 키워낼 수 있을까? 나는 뜬금없이 UCC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잘 살다 죽을 수 있는 삶을 상상하는 능력
언론에서는 거리에 나온 10대들을 ‘쌍방향 소통 2.0 세대’의 출현이라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나 역시 지금의 10대가 매우 새로운 정치 주체가 될 가능성에 동의한다. 그들은 인터넷과 EBS 지식채널 등을 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온라인 커뮤니티나 심지어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면서 ‘사회’에 대한 감각도 키워갔다. 그들은 경쟁만을 하라는 현 체제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생운동 세대인 ‘386 세대’의 자녀들이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은 “좋은 시절을 살아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냥 살고 싶어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식탁과 삶의 안전에 대해 발언하러 그곳에 갔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가, 학교가, 그리고 친절한 학원과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부모가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 할 것 같다는 것은 감지하고 있었던 듯 하다.
나와 함께 살던 아이가 11살 때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어?”라고 말해 나를 망연자실케 한 적이 있다. 귀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온 날(피어싱), 또 한번 놀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루터스, 너도냐?”라는 눈길을 던지는 내게 그는 말했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사시겠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그것을 잊지 말라고 뚫었어요.”
나는 그날 막연한 불안감으로 밤을 지새웠고, 최근 그 불안의 정체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다수가 제 명에 죽지 못하게 될 시대. ‘보이지 않는 손’이 구성원들의 생사관리권을 쥐게 된 ‘생명정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푸코는 그의 책 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중세 군주의 권력은 ‘죽어지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근대 국가의 권력은 ‘살아지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기획에 포섭되지 않은 무수한 생명이 죽게 내버려지는 체제, 그것이 근대 인간중심 체제의 본질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것은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회에서 ‘잘 살고 싶다’는 소녀들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말은 아직 봉건적 체제가 남아 있던 시대를 살았던 조부모와 부모들이 말한 ‘잘 살고 싶다’와는 성격이 다른 소망이다.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자만 살아남으라”면서 모두를 죽게 만드는 시대, 죽음에 대한 상상을 불허하면서 인간을 비루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을 소녀들은 어렴풋이나마 감지하고 있었다고 나는 보고 싶다.
‘운동권’ 아닌 새 지평의 사회운동으로
나는 이 두 소녀가 스물한 살이 되어 자유롭게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EBS 지식채널을 함께 볼 애인을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며 노곤한 행복에 젖어드는 순간을 즐기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설레이는 가슴에 잠 못 이루며 광우병 걱정 없이 학교 급식을 먹게 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지속한 가능한 삶이 위태로와진 시대다. 우리는 이제 이 아이들과 함께 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를 회복해가야 한다. ‘겁 없이’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은 어른에게 당부하건대, 10대를 조급한 ‘주권국가’ 시대의 ‘운동권’으로 만들지 말기 바란다. 2008년 5월 촛불시위에 대한 기억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그들이 스스로 자기 생명을 지켜가는 전혀 새로운 지평의 사회운동을 열어가도록 해야 한다. 올해는 유럽에서 68학생혁명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고 미리 살아내는 사회운동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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