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깊숙히 보기②…미국소는 나쁘고 한국소는 좋다? 생태적 고민할 시점
▣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언론홍보학 kwonhb@dju.ac.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미국산 쇠고기 파문]
월드컵 붉은 악마 응원, 신효순과 심미선 애도 촛불시위, 한국의 중국 유학생이 올림픽 성화 봉송 때 일으킨 난동,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 촛불시위.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 네 가지 현상 모두 내셔널리즘에 의해 추동됐다는 점이다. 월드컵 한국 개최와 한국팀의 4강 진출이 없었다면 그 엄청난 거리축제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고, 두 중학생이 미군 장갑차가 아닌 한국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더라면 대규모 촛불시위는 없었을 것이다. 티베트 학살사건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고 베이징올림픽을 중국 국력의 상징으로 내세우려는 대다수 중국인들의 중화적 태도가 없었어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이여, 정치적 의도는 나쁜가
요즘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촛불시위는 어떨까? 표면적인 이유로는 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 협상 과정에서의 외교적 미숙함, 이명박 정부에 대해 축적된 여러 불만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악성 댓글 수백 개가 달릴 각오를 하고 말한다면 이것은 ‘검역 주권’ ‘굴욕적 외교’라는 말에서 보듯이 한국인들의 대미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은밀히 건드리고 있다. ‘미국=쇠고기=광우병’ ‘한국=한우=건강’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그 덕택에 시위는 민족적 문제에 민감한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정해보자. 만약 한우를 베트남에 수출하는 협상이 타결됐다면? 한우 역시 광우병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면? 베트남 ‘인민’들이 한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길거리에 나온다면? 아마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에 대해 침묵하거나 베트남인들의 속 좁은 민족주의를 질타할 것이다.
내가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찬성론자에 가깝다. 시위는 벌어져야 하고 재협상을 하든지 해서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가 수입되는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다만 반대 시위가 민족적 흑백 이분법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협상을 둘러싼 논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한국 정부가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보상으로 협상 타결을 서둘렀다는 세간의 의혹이다. 이 점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설득력 없는 여러 변명들도 문제지만, 촛불시위를 ‘배후’와 ‘괴담’ 수준에서 바라보며 시위 참가자들의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는 ‘조·중·동’의 입장은 한술 더 뜬다.
과연 ‘순수한’ 태도란 무엇인가? 사회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시위는 이미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 그게 ‘불순’하다면 국회나 정부의 모든 언행도 ‘불순’하다고 봐야 한다. 주류 우파 언론은 2002년의 장갑차 압사 사건에 대한 항의 촛불시위 때도 ‘순수한’ 시위와 ‘정치적’ 행위를 구분하며 시위 참가자들을 압박한 적이 있다. 단순 참가자들이 시위 등을 통해 새로운 정치의식을 싹틔우는 것은 되레 의식의 발전이며 긍정적인 현상이다. 때로는 정치의식이 높은 사람이나 조직이 시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물론 이번 촛불시위에서 생경한 구호를 외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노골적인 시도는 야유를 받았다). 100% 순도의 자발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방향이 참여자들과의 부단한 접속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을 때 그것은 엘리트주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정치화를 통해서 ‘반미좌파’가 힘을 얻고 ‘순수성’이 변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애당초 그러한 문제제기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이데올로기적 언동이다. ‘조·중·동’은 왜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변하는가. ‘쇠고기 동맹’에 정부, 수입업자, 미국 축산업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수 언론도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시위 참가자 중 절반을 넘는 중·고생들의 참여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며 ‘10대가 갖기 쉬운 감성적 사고’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주류 우파 언론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선적으로 나는 10대의 참여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상시에 인간을 생각과 고민이 없는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의 입시지옥 체제에서 개성적·비판적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광우병이 이미 입시지옥에 들어선 중·고생에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학생들이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 것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세대인 것을 감안하고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고도의 정치적 문제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만으로도 한국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느낀다.
여학생 참여, 젠더적 분업 깨뜨려
더구나 여학생의 참여율이 높은 것은 젠더적 분업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들의 참여가 ‘감성적 사고’에 의한 것이든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 또는 ‘과장’한 것이든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그것을 시위를 통해 표출하는 태도는 격려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교육청을 통해 시위 참가 자제를 요구하고 현장에 교사를 파견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교육당국의 태도는 반교육적이며 인권침해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학생이라고 해서 ‘공부’만 해야 할까? 청소년에게서 정치적 주장을 펼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되레 그런 주장을 하는 청소년들을 격려·고무하고 표창해야 하지 않을까? 연예인이나 ‘전교조’ 교사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는 시각은 학생들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꼭두각시’로 전락시키는 관점이다(물론 연예인이나 교사들이 이런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팬이나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표창감이 아닐까?).
다시 쇠고기 문제로 돌아가보자. 여기에는 전문적이고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서 뭐라 단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사안의 불확실성이다. 첫째, 미국 내에서 광우병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은 광우병 발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카트리나 재난 때 영국의 40만 패키지 무료 식사 제공을 거부한 적이 있을 정도다. 논란이 되고 있는 30개월 이상의 소뿐만 아니라 20개월 정도의 소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둘째,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가 한국으로 수입되지 않을 거라는 단정은 금물이다. 도축 전, 도축 후의 모든 소나 쇠고기를 검사하는 게 아니다. 미국 소의 경우 1% 미만이 광우병 검사를 받는다. 셋째, 한국인이 수입된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광우병 진원지인 영국과 북아일랜드에서만 현재까지 166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1990년대 후반 3년간 17만9천 마리의 가축이 광우병에 감염됐으며, 무려 434만7380마리의 가축이 광우병의 위험 때문에 도살됐다. 한동안 매년 3만 건 이상의 광우병이 보고됐다. 넷째, 쇠고기를 먹는 것 외의 방법으로 인간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 화장품이나 라면 스프가 문제로 떠올랐지만 스포츠 드링크 등 다른 경로로도 감염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바이올린 제작 때 동물 창자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2006년 5월21일치). 유아용 음식을 통해서도, 광우병 발생 지역에서 생산된 가축 원료가 들어간 약품에 의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광우병이 전염병 수준으로 퍼지지는 않고 그것에 대해 재앙주의적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설렁설렁 넘어가서도 안 된다.
광우병에는 소가 걸렸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이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것은 축산 공장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가축의 일부, 특히 양의 고기를 사료로 만들어서 소에게 먹인 결과다. 최근 유럽연합에서 돼지고기의 특정 부위를 닭 사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동물권자와 환경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생태계의 자연적 순환과 먹이사슬을 무시한 이러한 결정들은 결국 생명 파괴적인 자업자득의 결과를 낳고 있다.
쇠고기 중심 식사법은 매우 반생태적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현재까지의 광우병을 둘러싼 논란이 미국 대 한국이라는 도식에 갇힘으로써 쇠고기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광우병에 집착하느라 정작 쇠고기 중심의 식문화가 갖는 문제를 간과한다. 즉, 소의 국적에 따라(소에게 국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소, 좋은 소로 구분할 수는 없다. 미국산 쇠고기만 위험하고 한국산 쇠고기는 좋다는 인식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 소도 한우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고, 광우병에 걸리지 않아도 쇠고기가 갖는 여러 위험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우선 쇠고기 중심의 식사법은 매우 반생태적이다. 미국에서는, 정치적 채식주의자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표현을 빌리면, ‘고기에 대한 신앙’이라 부를 정도로 고기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미국인들은 연평균 65파운드의 쇠고기를 먹는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고기를 파는 ‘가든’이다. 그렇다면 고기, 그중에서도 쇠고기는 왜 반환경적일까? 문명비판가 제레미 리프킨의 ‘쇠고기를 넘어서’()를 참조해 복합적인 이유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우선 1파운드의 쇠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축사료용 농작물 생산으로 화석연료 2만cal 혹은 1갤런의 가솔린 혹은 16파운드의 곡물을 소모해야 한다.
둘째, 약 13억 마리에 달하는 소는 지구 땅덩어리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1960년 이래 중앙아메리카 숲 25%가 목초지 조성을 위해 파괴됐다. 햄버거 하나를 위해 6평방야드(약 5.02㎡)의 숲이 벌채돼야 한다. 주로 다국적기업이 주도한다. 지난 50년 동안 세계 전체 목초지의 60%가량이 방목으로 파괴됐다. 그 결과 지구 땅덩어리의 약 30%가 ‘사막’으로 변했다.
셋째, 한 달에 900파운드의 식물을 먹어치우는 소 때문에 흙이 바람과 물에 쉽게 침식된다.
넷째, 축산단지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메탄, 이산화탄소, 일산화질소를 대기로 방출한다. 그중 메탄은 논과 매립장에서도 발생하지만 현재는 소들이 뀌는 방귀에서 더 많이 생겨난다.
다섯째, 동물학대의 문제다.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 축산업자들은 소에게 성장촉진 호르몬 등 화학물질을 투여하고 소에게 사료로 먹이는 옥수수나 콩에 제초제를 살포한다. 심지어 산업폐수를 먹이기도 한다. 축산업자에서 유기농 채식주의자로 변모한 하워드 리먼은 화학비료, 화학제초제, 항생제, 성장호르몬을 가축에게 투여해서 생산하고 키우는 축산농의 병폐를 고백한 적이 있다. 이것은 소의 권리를 파괴하는 행위다. 더욱 큰 문제는 소들이 운반돼 도살장에 이르기까지 고문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휴식, 먹을 것, 물도 없이 때로는 다리와 골반이 깨진 채 트럭의 좁은 공간에 갇힌 상태로 도살장까지 수송된다.
여섯째,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사료로 사용된다. 가축의 먹이를 풀로 바꾸면 1억3천만t의 곡물을 절약할 수 있다. 제3세계의 4억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양이다. 여기에는 과잉식사를 하는 제1세계인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제3세계인들을 외면하는 윤리적 문제가 암시돼 있다.
마지막으로 쇠고기 중심의 식사는 포화지방의 과잉소비로 대장암, 유방암, 심장질환 등의 원인이 된다.
수입반대운동에서 더 나아가자
이런 점에서 한우와 미국 소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한국 국적의 소는 건강하고 미국 국적의 소는 병든 것일까? 수송 과정만 좀 다를 뿐 비슷하지 않을까? 가축의 동물권은 무시되고 소 같은 경우는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서 검사 직전에 물을 최대한 많이 먹이는 게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영세한 축산 농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수입 쇠고기에 반대해서 한우를 적극적으로 먹자는 캠페인은 문제가 있다. 한우도 쇠고기가 갖는 문제점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다수 생태주의자들이나 동물권론자들이 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이유에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유를 이해한다. 물론 쇠고기를 전혀 안 먹는 문화를 갖기 힘들고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쇠고기 소비를 최소화하는 채식 위주의 식사법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그것은 인류가 전통적으로 해온 방식이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이 쇠고기 중심의 식문화를 넘어서는 한국인의 생태적 고민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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