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소·잠복기 환자 수 등 매우 큰 불확실성… 논의에 전문가나 정책결정권자뿐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야
▣ 김명진 성공회대 강사·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미국산 쇠고기 파문]
지난 4월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뒤 광우병의 위험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관한 대중적 우려가 터져나왔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것은 정부나 여당 의원, 보수 논객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면서 ‘확률’의 용어에 크게 호소했다는 사실이다.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토론자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로또에 당첨되어 돈을 찾으러 가다가 벼락 맞을 확률”과 같다고 주장했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골프에서 홀인원하고 돌아서 벼락 맞을 확률”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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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얼핏 들으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이나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계산해낼 수 있는 것처럼 판단내리기 쉽다. 이미 확률값은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고 남은 것은 그 정도 크기의 (희박한) 위험을 우리가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사회적’ 판단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히도 광우병(을 포함해 현대 과학기술이 다루는 수많은 문제)에 따르는 위험에서 그런 손쉬운 판단은 가능하지 않다. 그 속에 수없이 많은 정치적·사회적·과학적 불확실성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검사 과정의 의문들
한 예로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리는 소가 매년 몇 마리나 될까 하는, 일견 간단해 보이는 사안부터 한번 따져보자. 미국에는 대략 1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고 매년 420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된다. 이 중에서 미국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광우병 소는 2003년과 2005년에 확인된 세 마리가 전부다. 그렇다면 1억 마리 중 겨우 세 마리이니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먼저 미국의 광우병 대응책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1996년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병하자 이듬해 미국은 소의 사체를 다시 소에게 먹이는 사료로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보행불능 소’(downer)를 포함한 이른바 ‘고위험군’ 동물 중 매년 2만 마리(전체 도축 두수의 0.05%)에 대한 광우병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단체와 공익단체들은 이런 조처가 미국의 광우병 위험을 파악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고, 2003년 12월 미국에서 첫 광우병 소가 확인됨으로써 우려는 현실로 탈바꿈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광우병 대응책이 과연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미국 농무부는 2004년 여름부터 일명 ‘강화된 광우병 감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2년여 동안 75만여 마리의 동물을 새로 검사해 이 중 두 마리에서 광우병 발병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검사 결과로부터 미국 농무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의 발생 확률이 아주 낮으며 매년 도축되는 4200만 마리 중 광우병에 걸린 소는 아마도 4∼7마리에 불과할 거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2006년부터 미국은 매년 4만 마리의 소만 검사하는 표본검사 방식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이후에는 광우병 소를 한 마리도 찾아내지 못했다.
얼른 보면 이는 ‘1억 마리 중 세 마리’보다는 많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광우병 소는 매우 적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숫자들 속에는 여러 가지 석연찮은 점들이 숨어 있는데, 이웃 나라인 캐나다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이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비슷한 사료 정책을 가지고 있고 광우병 대응책 마련에서도 미국과 보조를 같이해온 국가이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2004년 이후 매년 5만여 마리의 소에 대한 표본검사를 통해 현재까지 11건의 광우병 사례가 확인됐다. 이는 같은 기간 훨씬 규모가 큰 검사에서 2마리의 광우병 소밖에 찾아내지 못한 미국의 검사 결과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표본 추출이나 검사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었거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한 모종의 은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품게 되는 대목이다.
미국이 캐나다에 비해 사료 규제 정책 집행이 훨씬 부실해 광우병 확산 위험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의혹은 더욱 커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97년 사료 규제 조처를 공포하면서 소의 사료와 (소의 부산물이 들어가는) 돼지 및 닭의 사료를 생산하는 공정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분리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러한 명령은 제대로 강제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2001년 FDA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료 공장 7곳 중 한 곳꼴로 이러한 분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았으며 더 많은 공장들은 아예 조사가 이뤄지지도 못했다.
미국에서 정말 광우병에 걸린 소가 몇 마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검사가 필요하다. 매년 도살되는 120만 마리의 소에 대해 전수검사를 하는 일본을 따라 하지는 않더라도 30개월 이상의 모든 소를 검사하는 유럽연합 정도의 조처는 있어야 미국 내의 광우병 발생 현황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검사의 확대는커녕 수출 쇠고기에 대해 자체적으로 전수검사를 하겠다는 육가공업체 크릭스톤 팜스의 요청조차 허용하지 않는 미국 농무부의 태도를 보면, 이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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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차 인간광우병 ‘파도’ 닥칠 수도
광우병의 위험이 낮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인용하는 또 하나의 수치가 있다. 지금까지 질병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160여 명에 불과하고, 발병 환자 수도 2000년의 28명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해 현재는 한 해에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1996년에 인간광우병이 처음 발견됐을 때 장차 수십만 명의 환자가 발생할 거라는 예측이 나돌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그렇다면 수천만 명의 영국인들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에 노출됐을 거라는 점을 감안할 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여전히 크게 갈린다. 인간광우병 환자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수백∼수천 명에 그칠 거라는 낙관적인 예측이 힘을 얻고 있는 반면, 수십만 명에 달할 거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여전히 존재한다.
비관적인 예측을 하는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인간의 프리온 유전자에서 나타나는 유전자형의 차이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특히 취약한 이유’로 널리 알려진 MM/MV/VV 유전자형이 한 예이다. 영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현재까지 발생한 모든 인간광우병 환자는 MM 유전자형을 보유했다. 이런 사실은 한때 MV나 VV 유전자형이 인간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저항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 섞인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04년 수혈을 통해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MV 유전자형 환자가 뒤늦게 확인되고, 올해 초 VV 유전자형을 가진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가 보고되면서 이들 간의 차이는 단지 잠복기가 좀더 짧은가 긴가의 차이일 뿐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식인 풍습을 갖고 있던 파푸아뉴기니의 포레 부족에서 1950년대에 나타났던, 인간광우병과 유사한 질병인 쿠루와 비교해보면 전망은 더욱 불길하다. 현재까지 나타난 인간광우병의 잠복기는 평균 10년 정도인데, 인간광우병 연구자들은 이것이 지나치게 짧다고 본다. 동족 식육을 통해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쿠루의 잠복기가 평균 12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에서 인간으로의 종간 장벽을 넘어야 하는 인간광우병의 잠복기는 더 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광우병 연구자들은 앞으로 2차, 3차의 인간광우병 ‘파도’가 차례로 닥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쿠루가 창궐했을 당시 매년 포레 부족민의 1%가 이 질병으로 희생됐는데, 초기 희생자들 역시 MM 유전자형을 가졌고, 다른 유전자형의 경우 잠복기는 최대 50년에 달했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존 콜링지 같은 연구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지금까지 발병한 광우병 환자들은 MM 유전자형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다른 유전적 특성에서도 인간광우병에 취약한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 질병이 잠복 중인 사람들 중에 앞으로 발병할 환자 수는 훨씬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과학이 답을 줄 수 없다면…
결국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에는 매우 큰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매년 광우병에 걸리는 미국 소가 몇 마리나 되는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확한 답이다. 아무도 모르는 확률값을 서로 곱해봐야 신통한 답이 나올 리 없다.
어떤 위험의 크기를 잘 모르는, 심지어 그 위험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고도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서의 질문들에 대해 ‘과학’이 딱 부러지는 답을 제공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다른 위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확률이 낮지 않느냐는 식의 주장들은 좁은 의미의 ‘과학’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가치판단’의 결과이다. 따라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판단은 이른바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좀더 폭넓게 일반 시민들의 참여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개방해야 한다. 현재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런 방향으로 가는 올바른 첫걸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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