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개방·일본 용서·대운하 추진·장차관급 재산문제 등 끝없는 헛발질, ‘탄핵 청원’에 40만 명 서명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불만이 도를 넘었다.
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인터넷 청원글에 서명한 사람이 5월1일 현재 40만 명을 넘었다. 참여자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 불어나고 있다. 더 현실적인 요구로는 쇠고기 협상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관련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인터넷 청원도 있다. 이 역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글과 실제 탄핵이 가능한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도 쏟아지고 있다.
강재섭 대표 미니홈피 분풀이당해
이 대통령의 미니홈피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비난 글로 이미 일부 폐쇄됐다. 이 대통령의 홈피가 문을 닫자 성난 누리꾼들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미니홈피로 몰려갔다. 2004년 6월 문을 연 강 대표 미니홈피의 누적 방문자 수는 5만여 명. 이 가운데 5월1일 하루 동안 방문한 사람이 1만 명을 넘었다. 이 대통령 대신 강 대표가 분풀이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누리꾼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 이유는 뭘까. 직접적 계기는 문화방송 〈PD수첩〉 방송이었다. 〈PD수첩〉이 4월29일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송하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우려는 구체적인 분노로 조직화됐다. 방송에서는 인간 광우병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인터뷰와 광우병 의심 소의 충격적인 도축 현장이 그대로 소개됐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 개방 문제가 최근의 성난 민심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지난 몇 달간 누적돼왔던 불만이 ‘광우병 공포’를 통해 표출됐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재벌 편향적 정책 드라이브와 부적절한 인사 문제 등 이명박 정부가 비난받을 부분은 많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상당수 국민들에게 당장 직접적 피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이와 달리 누구에게나 피해가 돌아갈 수 있고, 이해하기에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쌓였던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뇌관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과 궤변만을 늘어놓았다”며 “‘고소영’과 ‘강부자’로 상징되는 인사 문제와 경부운하 강행 추진, 뉴타운 ‘사기극’ 등을 지켜보던 민심이 〈PD수첩〉 방송과 이 대통령의 잇단 문제적 발언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적 발언이란 이 대통령이 4월21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을 가리킨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이라며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양보했다는 건 정치논리”라며 반대 여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4월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4766명의 친일 인사 명단을 발표했을 때 이 대통령이 했던 발언도 논란이 됐다. 이날 이 대통령은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라며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이 일제히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일본을 용서하고 말고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 탄핵 추진으로 이어지긴 힘들어
이런 와중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경부운하 추진을 두고 엇박자를 냈다. 4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회를 보면 대운하는 193개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4월29일 라디오에 출연해 “꼭 운하가 아니더라도 치수나 수질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을 때면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가도 잠잠해질 만하면 또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행태가 벌써 몇차례나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4월 말 또다시 불거진 청와대 장차관급 인사들의 재산 문제는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동관 대변인도 농지 매입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했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같이 정국에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연속으로 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라온 문제의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 게시물을 보면 앞서 거론한 경부운하 문제부터 인사 문제 등이 두루 거론돼 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만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인터넷을 통한 성난 민심의 표출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탄핵 서명 러시가 당분간 이어지더라도 실제 탄핵 추진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누리꾼들의 탄핵 청원 서명은 법적 효력도 없다. 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서명 운동은 어디까지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현쯤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설령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촛불 집회 등 형식으로 오프라인 집회를 연다 해도 이 역시 단순한 시위 차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곽동수 한국사이버대 교수(컴퓨터정보통신학부)는 “탄핵 청원에 서명을 하는 행위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주목해야 할 것은 탄핵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청원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청와대의 반응이다. 탄핵 청원 사태는 제쳐두더라도 미국산 쇠고기 개방 등을 바라보는 불만 여론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부 입장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젊은 층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는 현상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정부에서도 과거처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딱히 물러설 곳도 없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이 대통령이나 정부가 반대 여론을 쉽게 인정하고 물러서는 자세를 보인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미국과 협상을 끝낸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딱히 물러설 곳도 없다. 뜻하지 않은 지점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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