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자위대 파병은 일본이 전쟁하는 것”

등록 2008-05-02 00:00 수정 2020-05-03 04:25

일본 ‘이라크 파병 위헌’ 판결까지 4년3개월간 소송 이끈 구노 히데아키 사무국장

▣ 도쿄(일본)=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자위대의 활동, 특히 항공자위대가 이라크에서 현재 벌이고 있는 미군 병사 등의 수송활동은 타국의 무력 행사와 ‘일체화’하는 것으로, 이라크 파병 특별조치법 제2조 2항, 헌법 제9조 1항에 위반된다.”

지난 4월17일 일본 나고야 고등법원이 ‘일’을 냈다.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전쟁을 부인하는 일본 헌법 9조에 위반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나고야 고법은 판결문에서 “평화적 생존권은 모든 인권의 기초로, 단순히 헌법의 기본적 정신과 이념 표명에 머무르지 않는 구체적인 권리”라고 못박았다. 은 소송 원고인단 모집부터 위헌 판결까지 4년3개월여동안 법정다툼을 이끌어온 ‘자위대 이라크 파병 저지 소송모임’의 구노 히데아키(58) 사무국장을 만나 그간의 사연을 들어봤다.

‘평화적 생존권’ 외치며 모인 3268명

파병 저지 소송을 낸 이유가 궁금하다.

=베트남전 이후 40년간 일본은 일-미 군사동맹 강화로 치달았고, 자위대 이라크 파병은 (비전투 분야라도) 참전과 매한가지다. 보급과 운송 없는 전쟁이 있나? 지금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일본의 사회 상황은 내 청년 시절보다 몇십 배 나빠졌다. 파병을 간단히 해버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원고단은 어떻게 꾸려졌나?

=어떤 배경도, 정당이나 단체의 지원도 없는 시민들의 집합체다. 2004년 1월 몇십 명이 시작해 주변을 설득하고 전국에 호소한 결과 3268명에 이르게 됐다. 14차례에 걸친 재판의 구두변론단에는 한국인도 있다. 처음에는 많아야 500명 모이면 성공이라 여겼다. 그런데 1심에서 패하고 나서 갑자기 원고인단이 1200명으로 불었다.

소송의 목적은?

=첫째, 자위대 파병 저지다. 둘째, 자위대 파병이 평화헌법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게다. 셋째, 자위대가 이라크에 파병됨으로써 우리가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는 것을 국가로부터 강요당하는 정신적 피해를 입게 된 데 대한 손해배상이다.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는 뭘까.

=이른바 ‘평화소송’은 이제껏 정부와 사법부에 의해 문전박대를 당했다. 극히 일부 사례를 빼고, 사법부는 자위대나 평화헌법 9조와 관련된 ‘고도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한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판결문도 헌법 9조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한다. 평화헌법이 설령 개악되더라도 9조 1항은 지켜야 한다는 게 확고한 민심이다. 해외 파병이 위헌이라는 판례를 남기는 게 앞으로 파병 움직임에 중요한 법·제도적 제어장치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판결에 대해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유감’을 표시했고, 다모가미 도시오 항공자위대 참모총장은 아예 “신경 안 쓰다”고 했는데.

=사리분별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발언이다. 공무원은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법원의 판단을 무시하는 사법 비하 발언은 공무원이란 신분을 망각한 행위다. 후쿠다 총리의 반응은 무지의 소치이며, 여론을 무시하는 일본 정부의 틀에 박힌 행태다.

판결에서 손해배상 부분은 기각됐는데.

=‘평화적 생존권’ 문제는 이제까지 소송할 근거가 없는 권리라고 여겨져왔다. 개인의 생각일 뿐 법이 보호해야 할 권리는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평화적 생존권’도 기본권이라는 점이 인정됐다. 헌법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재판부에 존경을 표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이번 판결은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걸 법원이 확인시켜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임시국회나 내년 7월 파병보급법 기한까지 강력한 ‘제동장치’로 기능할 것이라 본다. 판결 내용을 ‘전국화’해나가기 위한 보고대회와 학습회가 이미 지역 풀뿌리 단체를 중심으로 발빠르게 번지고 있다.

판결문에 살과 피를 더해 보급할 것

‘학습회’라고 했나?

=판결문이 모두 26쪽 분량이나 된다. 모두들 전체 내용의 1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원들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위대 병사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국회의원을 비롯해 많은 일본인들이 공유해야 한다. 자위대 출신들의 자살률이 다른 공무원의 2배에 이른다. 파병 경험자는 6배에 달한다. 방위청 보고만으로도 그런데, 실제 정신질환을 앓거나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자위대를 그만두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정신적 고통을 받은 이들은 엄청날 게다. 이번 판결문 26쪽의 문자 하나하나에 뼈와 살과 피를 더해,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게 우리 역할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