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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효성, 비자금도 동업자?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일본 현지법인을 통한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 받고 있는 효성그룹</font>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효성과 삼성은 한때 동업자 관계였다. 효성의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1945년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에게 자금을 빌려준 게 계기가 됐다. 이들은 자산규모가 1700만원인 삼성물산을 설립 3년 만에 48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키운다. 이어 제일모직과 제일제당 등 제조업으로 사업을 넓혀갔다. 하지만 15년 뒤, 두 사람은 동업을 청산하면서 지분 분배를 놓고 갈등한다. 결국 조 회장이 3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둘은 결별하게 된다.

“납품단가 200억~300억원 부풀려” 내부 제보

두 회사는 최근 비자금 문제로 다시 한 번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삼성이 비자금 문제로 특검 수사를 받던 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문무일)가 효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의뢰에 따른 것이다. 국가청렴위는 지난해 말 효성 내부자한테서 ‘효성그룹이 2000년께 일본 현지법인 수입부품 거래 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200억∼3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청렴위는 검찰에 효성의 구체적인 비자금 조성 수법과 그룹 내부 회계자료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파악된 효성의 비자금은 효성에 흡수 편입된 옛 효성물산의 일본법인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은 외환위기 바로 뒤인 1998년 효성물산과 동양나일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을 효성으로 통합했다. 현재 효성은 22개 국외 지역에 상사 법인을 두고 있다.

효성은 일단 이번 비자금 사안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효성 홍보담당 임원은 “검찰에서 어떤 요청을 받은 바 없으며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 없다.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효성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은 조석래 효성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관계여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다. 조 회장은 이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큰아버지로, 이 대통령과는 사돈 관계가 된다. 조 회장은 4월15~21일 이 대통령의 미국·일본 순방길에도 동행했다. 조 회장은 4월14일 낮에 이 대통령에 앞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이륙 전까지는 이번 사태를 전혀 몰랐으며 미국 도착 뒤에야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대기업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친기업 정책을 표방하는 새 정부 출범 뒤 첫 기업 수사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앞으로 검찰의 대기업 관련 수사가 어떤 방향성을 띨지 보여주는 가늠자 구실도 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수사 범위 관심

또 이번 사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내부 제보에서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거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도 내부자 제보로 수사가 착수됐고, 현대차 비자금도 내부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 이런 경우 검찰 수사의 성공률이 높다. 두 사건 모두 최태원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국가기관인 국가청렴위에서 이번 사안을 검찰에 넘겼다는 점도 제보의 신뢰성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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