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만도 못한 수사 결과 앞에서 한국 사회의 위기를 말하는 전문가와 학자들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진실 규명을 하지 못했으면 못했다고 해야 하는데, 범죄가 없었던 것으로 결과를 내놓으면 어떡하나. 검찰이 규명하지 못하는 국가적 핵심 문제를 해결하라고 특검을 도입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 특검 등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시민·민중단체들은 국가권력을 통하지 않고 직접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어 사회적으로 더 큰 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 총체적으로 실패한 특검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 조준웅 특별검사(왼쪽)와 이건희 삼성 회장은 100여 일 동안 마치 영화 처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위치에 서 있었으나, 결국 이 영화는 이 회장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블랙코미디’가 됐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특검 수사 발표 뒤 인생을 걸고 의혹을 계속 제기하겠다고 밝혔다.(사진/왼쪽부터 한겨레21 류우종·박승화 기자)
국회가 특별법까지 제정해 맡긴 일인데…
조준웅 삼성특별검사가 쥐꼬리만도 못한 수사 결과를 내놓자 전문가와 학자들은 이를 한국 사회에 불어닥칠 위기의 징후로 해석했다.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면서까지 불법적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등 삼성의 범죄 의혹에 대해 수사를 맡겼음에도, 특검이 엄중한 책임자 처벌과 정확한 진상 규명 모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회정의가 약해질수록 사회 시스템과 권력에 대한 불신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특검은 삼성이 정부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깨진 균형을 맞추고 제어해야 할 사법제도가 ‘대기업 총수는 어마어마한 탈세와 불법적인 문제가 있어도 처벌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건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라고 진단했다.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특검도 삼성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인 만큼 앞으로 삼성의 범죄 행위를 수사하고 판단할 더 나은 사회제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특검 수사 결과를 거대 재벌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 시스템 전체의 패배로 보는 이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우리 역사에 없었어야 할 특검이 나타났다”며 “5월 임시국회 때 국정조사를 실시해서라도 삼성의 부정부패를 끝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 특검은 기업인들에게는 분식회계, 배임, 횡령 등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검찰 등 공무원에게는 대기업 돈을 받아먹어도 좋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법질서를 흔들어놓았다. 국가 운영의 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또 다른 민주화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나 싶다.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재고발과 재항고 등의 절차를 거쳐 삼성 특검이 밝히지 못한 의혹들을 끝까지 파헤칠 방침이다.
이전에 실시된 특검과 비교해보더라도 삼성 특검은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바 있는 김갑배 변호사는 “특검이 갈수록 무뎌지고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며 “수사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특검은 비자금 조성 경위가 핵심인데, 수사가 결론도 없고 미흡하다. 수사를 했다는 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혹평했다. 그는 “삼성의 검찰 로비 문제를 빼고는 차라리 검찰에 수사를 맡겼으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 교수도 “과거 특검과 비교했을 때 조준웅 특검에 와서는 ‘봐주기’가 노골화됐다”며 “예전에는 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번 특검은 당사자 소환도 안 해보고 로비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BBK 특검은 정치권력에 굴복했고, 삼성특검은 경제 권력에 굴복했다”고 규정했다.
정경유착·비자금 문제 털 기회 잃어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점에서 삼성에도 이번 특검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특검은 삼성이 정경 유착이나 비자금 조성 문제 등을 완전히 털고 윤리적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결정적 기회였다는 것이다. 또 1위 기업 삼성의 변화는 우리 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특검의 봐주기 수사가 결국 국가 경쟁력 전체를 떨어뜨린 셈도 된다. 박명림 교수가 “이번 수사 결과가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 기준을 후퇴시켰다”고 비판하는 이유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특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며 삼성 특검을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증거가 드러난 것에 대해서도 수사가 미흡했고, 이건희 비자금을 정상 자금으로 만들어주고 세금도 안 내게 만들어준 특검”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특검은 삼성공화국의 막강한 힘을 전율할 정도로 확인해줬다”며 “특검을 했던 이들이 앞으로 (삼성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실망이 크다 보니 현행 특검 제도의 보완론도 일고 있다. 자의적 수사 행태와 전문성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검의 상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처럼 상설화·정례화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즉각 대응하는 방식으로 가고, 특검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에도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데 대한 견제책 마련도 제시됐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번처럼 수사의 자의성 문제도 불거진다. 특검의 권한을 강화하는 동시에 의무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홍성태 교수)
대법원이나 대한변호사협회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김 변호사는 “특검 수사를 통해 더 많은 불신과 폐해가 남아 이를 어떻게 바로잡느냐가 문제”라며 “특검 풀을 만들어놓고 변협 이사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 요소를 제거하는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지, 변협 회장이 그냥 특검 후보자를 지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공안검사 출신인 조준웅 특검이 검찰을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만큼 특검 후보에서 배제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 특검 후보서 배제했어야”
박명림 교수는 특검도 특검이지만 그보다 검찰 기능의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현행 헌법 질서에서는 검찰이 범죄근절, 진실규명, 인권보호, 비리척결 등 존재 목적에 맞게 다시 서는 게 최선이다. 특검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검찰이나 감사원, 공정거래위, 중앙선관위 등을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의 부인 감독부로 독립시켜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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