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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이 지나면 진짜 싸움 시작될 것”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박찬숙·정두언 등 수도권 공천자 55명의 ‘공신의 난’ 이후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의 팽팽한 신경전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한나라당 권력 투쟁]

4월9일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국민이 매긴 첫 성적표를 받는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원을 거부한 상황에서 이명박이라는 브랜드로 ‘자력 과반수’가 될 수 있을지 여부가 포인트다. 과반수(150석)를 넘으면 ‘A’다. 17개에 이르는 국회의 모든 상임위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는 ‘매직넘버’ 168석을 넘으면 ‘A+’다.

△ 권력의 중심은 늘 이동한다 남경필 의원(1번 맨 오른쪽)의 이상득 부의장 불출마 요구 기자회견은 한나라당의 소장그룹과 원로그룹의 정면 충돌의 기폭제가 됐다. 이재오 의원(2번 오른쪽) 옆에 앉은 이상득 부의장(2번 왼쪽)의 표정이 심각하다. 이번 총선 공천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부의장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한 이방호 의원(4번 왼쪽)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낙점을 받지 못한 이재오 의원(5번 오른쪽)의 최근 표정은 좋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의 권력구조를 만들 파트너로 큰형 이상득 부의장(3번 왼쪽)을 선택했다. 그 다음의 파트너는 누가 될 것인가. 한겨레 강재훈·김종수·국회사진기자단·강재훈·김태형 기자(1번부터)

A학점 이상을 받으면,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은 대운하와 의료보험 민영화 등 논란이 많은 정책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릴 수 있게 된다. 당내 소수파로 전락할 ‘친박근혜계’와 미니 야당에 불과한 통합민주당의 견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조기 레임덕’이다. 의 4월2일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답변은 50.8%에 그쳤다.

동반 불출마 제안 거절한 이상득

이런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지난 3월23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박찬숙 의원과 정두언 의원 등 수도권 공천자 55명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공천 배제를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다들 ‘친이명박계’라고 분류되던 의원이었다. 언론에서는 ‘공신의 난’이라고 명명했다. 반란은 하루 만에 진압됐다. 이상득 부의장은 공천을 받았고, 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에 출마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이상득 부의장을 정점으로 하는 원로그룹과 이재오·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소장그룹의 권력투쟁으로 비쳐졌지만, 본질적으로 이 정권의 집권 초반과 중·후반의 성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3월20일 남경필 의원이 포항에 도착했다. 이상득 부의장을 만나기 위해 내려온 길이었다. 이 부의장은 자신의 포항 사무실에서 남 의원을 만났다. “수도권 민심이 위험하다. 대의를 위해 용퇴를 하시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라고 남 의원은 거듭 말했다. 이 부의장은 완강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1시간의 설전 끝에 남 의원은 그냥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서울로 돌아온 남 의원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를 함께한 정병국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소장파 의원들도 남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 남 의원의 목소리에선 결기가 묻어났다고 한다.

3월21일 한나라당사 기자실에 들어선 남 의원은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가 흔들리고 있다”며 “이상득 부의장님의 국회의원 불출마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경필 의원의 돈키호테식 돌출행동으로 끝나는 듯했던 ‘이상득 불출마론’은 이재오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3월22일 토요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그랜드힐튼호텔로 몇몇 한나라당 수도권 출마자들이 모였다. 이재오 의원과 핵심 측근인 진수희·차명진 의원과 정태근 후보(성북갑) 등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재오 의원이 ‘이상득 부의장과 동반 불출마하겠다. 내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해서 담판을 짓겠다’고 말했다”며 “이에 참석자들은 ‘동반 불출마라면 모든 것을 걸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거사 당일인 23일 오전 10시, ‘그랜드힐튼 모임’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이상득 부의장 불출마를 공개 요구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시간은 오후 4시로 정해졌다. 때마침 오후 2시엔 박근혜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2시간 뒤, 박찬숙 의원(수원 영통)을 중심으로 한 19명의 한나라당 수도권 출마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이상득 퇴진’이었다. 수도권의 흔들리는 민심에 불안감을 느낀 한나라당 의원들이 잇따라 모여들었다. 선언자는 55명으로 늘었다. 그날 저녁 8시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 인근의 삼청동 안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대통령은 형의 편이었다. 역시 그 시간, 포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이상득 부의장은 “내가 출마 안 하면 대안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부의장은 이틀 뒤 후보등록을 했고, 이재오 의원도 같은 날 “불출마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짧은 해명과 함께 후보로 등록했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 공신’을 들라면, 이상득 부의장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재오 의원과 정두언 의원을 꼽는다. 이들은 각각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을 대표한다. 이들 사이의 ‘제1차 권력투쟁’은 원로그룹의 승리로 돌아간 셈이다.

두 그룹은 내각 및 청와대 비서실 구성(1~2월)과 총선 후보 공천 과정(3월)부터 이미 많은 ‘국지전’을 치렀다. 승세는 초반부터 원로그룹에 기울었다. 이 부의장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출신인 장다사로 정무 1비서관이 핵심 역할을 했다. 청와대 비서실 구성 당시 정두언 의원과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은 애초 호남 출신들이 다수 들어간 비서관·행정관 인선안을 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박영준 비서관 쪽에서는 영남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인사안을 마련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의 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결국 박영준 비서관이 대선 때 조직한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에 대거 발탁됐다”며 “선진국민연대의 약진은 박 비서관과 그 뒤에 있는 이상득 부의장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9시 이후 독대하는 대통령과 실세

정두언 의원이 2월25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인선과 한나라당 공천은 총선에서 압승한다는 전제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수도권 표밭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고 공개 비판한 것은 그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 표출이었다. 이재오 의원도 다음날 “한나라당이 이룩한 정부가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고 있지만, 정부의 잘못을 비호 또는 은폐 축소하는 데 당이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거들었다.

‘한나라당 정부≠이명박 정부’라고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재오·정두언 두 의원이 느낀 소외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발언들이다. 정두언 의원은 요즘 매일 밤 소주를 마시며 눈물을 흘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통령 임기 초반, 권력이 집중되는 2년. 그때 대통령과 밤 9시 이후에 단둘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이가 바로 최고의 실세가 된다. 대통령과 독대한 횟수가 그가 쥔 권력의 ‘바로미터’가 된다. 이때 올라가는 보고서, 이때 대통령 귀에 들어가는 말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지금 한나라당의 내부 권력투쟁은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연말·2010년 전후가 권력 재편기

통합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런 폐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 독대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도 수시로 불러서 독대하는 그룹이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유인태 의원과 문희상 의원, 이광재 의원 등이 그 그룹의 핵심이었다. 든든한 지원자였던 이기명·명계남씨도 포함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한화갑씨 등 동교동계 가신 그룹과 박지원씨 등 측근 그룹, 김중권씨를 비롯한 영남 출신 참모들을 번갈아 가며 독대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주 청와대에서 ‘일요가족예배’를 본 뒤, 차남 현철씨에게서 정국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런 독대는 평일 밤에도 수시로 이뤄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상득 부의장을 중심으로 한 원로그룹을 택한 이유는 집권 초기에는 ‘안정’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읽힌다. 이 부의장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멘토’다. 이 부의장은 집안에서부터 사업과 정치까지 이 대통령에겐 ‘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곁의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의 핵심적인 차이는 ‘시점’이다. 원로그룹은 현재의 권력과 운명을 함께할 구성원들이지만, 소장그룹은 미래의 권력(정권)을 재창출해야 하는 강한 의지와 의무를 함께 가지고 있다. 여당과 청와대가 협력하면서도 끊임없이 긴장하는 것이 바로 이 현재의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소장그룹은 늘 그런 긴장 요소를 지닌 존재다.

소장파 55인의 기자회견이 실패한 쿠데타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소장파들이 설치한 시한폭탄의 초침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소장파들은 이상득 부의장과 그 핵심 측근인 박영준 비서관이 물러나야 할 이유로 수도권의 민심을 들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또는 기대치에 미달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소장파들은 이를 근거로 이 부의장과 그 주변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소장파에 속하는 한 한나라당 의원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진짜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부터가 진짜다”라고 말했다. 투쟁의 목표가 될 권력은 바로 당권일 것이다. 오는 7월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운명은 정해진다.

이명박 정부의 권력구도는 이르면 올 연말에 소폭 또는 중폭으로, 중간고사 성격인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선 대대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이라는 말을 듣는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에 대한 비판 여론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친인척(큰형)과 사조직(선진국민연대)이 청와대와 권력의 주변을 장악하는 ‘말기적 현상’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원로그룹을 비판하는 소장파들의 목소리다. 권력의 재편기에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은 또다시 정면 충돌할 것이다.

여의도는 물 위의 섬이다. 국회의사당은 물 위에 뜬 배의 형국이다. 민심의 파도가 휘몰아칠 때, 이에 거스르면 배는 뒤집어진다. 그 어떤 권력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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