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의석수·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차기 당권의 행방 놓고 어지러운 ‘친이’와 ‘친박’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한나라당 권력 투쟁]
4월9일 총선 이후를 내다보는 한나라당의 관심사는 세 가지다. 한나라당의 예상 의석수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 그리고 차기 당권의 행방이다.
한나라당 시각으로 볼 때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없다. 게다가 이 세 개의 변수는 앞으로의 정계 개편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과반 의석 확보 여부와 총선 책임론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 총선 이후의 한나라당 상황을 꼬집어 예측하기란 어렵다”며 “분명한 사실은 당선자가 많든 적든 당이 굉장히 시끄러워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토론회서 ‘원조 친박 논쟁’ 코미디
총선을 앞둔 4월3일 부산KBS에서 사하갑에 출마한 현기환 한나라당 후보와 엄호성 친박연대 후보가 맞닥뜨렸다. 이날 방송토론회에서 두 사람은 양보 없는 ‘원조 친박’ 논쟁을 펼쳤다.
먼저 현기환 후보가 “엄 후보가 정말 친박 의원이라면 공천에 탈락했다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 박 전 대표를 돕는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 후보는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 캠프에서 대외협력단부단장을 지냈다.
엄호성 후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현 후보가) 친박이라면서 원조 친박 논쟁이 나오자 박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치운 이유가 뭐냐”고 되받았다. 현 후보는 한나라당 공천이 확정된 직후 박 전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대형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같은 친박 진영의 엄 후보가 사하갑 출마를 선언한 뒤 현수막을 내렸다. 친박 현역 의원과 ‘친자 논쟁’을 펼쳐봤자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엄 후보 쪽에서는 현 후보가 4월 초 박 전 대표의 사진을 내린 뒤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으로부터 공인받은 자신만이 진짜 친박 후보라는 논리이다.
코미디와도 같은 장면이지만 이는 한나라당에서 박 전 대표가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부산의 한 초선 의원은 “당에서 공천받은 친박 후보 대부분은 당선 안정권에 있고, 공천을 못 받아 뛰쳐나간 친박연대 후보들도 박 전 대표 바람 덕분에 선전하고 있다”며 “공천 개혁을 한다며 친박 쪽 일부 인사를 내몰았지만 결과적으로 친박 진영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잃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친이’ 쪽에서는 공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 가운데 상당수가 낙선 위기에 처했고,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아예 출마도 포기해야 했다. ‘친박 죽이기’에 나섰다가 외려 친이 진영에 골병이 들어버렸다.
박 전 대표가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 총선 분위기 속에서 만약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다면 문제는 커진다. 당장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지도부 책임론의 부상이다.
한나라당 내 비주류 쪽에서 거론하는 지도부 책임론의 근거는 많다. 우선 50%를 웃돌던 정당 지지도가 공천 파동을 거치는 과정에서 수직 하강했다는 사실이다. 언론에서 200석이 넘을 것으로 예측하던 판세가 뒤집어졌다는 것도 책임론의 소재다. 자연스럽게 강재섭 대표와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 이방호 사무총장 등에게 화살이 돌아가게 된다.
친박 쪽 핵심 관계자는 “원래는 통합민주당이 수도권을 통틀어 고작 5석을 확보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이 지경이 되도록 당 지도부는 무엇을 했나”라고 반문한 뒤 “이 문제는 총선이 끝난 다음에라도 반드시 따져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정계 개편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박 전 대표가 열쇠를 쥐고 있다. 경부운하 등 대형 국책사업을 총선 뒤로 미뤄놓은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과반 여당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여당발 정계 개편 수요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손을 내밀 수 있는 쪽은 우선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다면 당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박 전 대표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계 개편 열쇠도 박 전 대표 손에
총선이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당 안팎에서는 한나라당이 170석 이상을 얻는 것도 결코 무리한 목표는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 국회 모든 상임위에서도 수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칼자루는 일단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주류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유세 거부로 곤욕을 치른 친이 진영 일부에서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연대를 끌어안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불거져나올 수 있다. 아울러 ‘계륵’ 역할을 했던 친박 진영을 밀어내고 동시에 MB계와 당 밖의 일부 비박근혜계 무소속을 합치는 방식의 정계 개편 시나리오도 당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친박 쪽 핵심 관계자는 “친박 진영을 빼고도 과반 의석 유지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서면 갖은 트집을 잡아서 박 전 대표를 내보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와서 해당 행위 등의 명목으로 박 전 대표 제명을 요구하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4월1일 해당 행위를 이유로 한나라당으로부터 제명당한 고진화 의원은 자신의 제명은 박 전 대표를 제거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고 의원은 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는) 친박연대에 대해 사실상 간접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며 “다음 단계로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 몰아내기에 착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170석 이상을 확보할 확률은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할 확률만큼이나 낮다. 상대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예측은 ‘과반 이상, 170석 미만’이다. 말하자면 크게 이기지도, 크게 지지도 않는 결과다.
‘과반 이상, 170석 미만’ 땐 서로 공격
이 경우 당내 계파 간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한 권력투쟁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총선 책임론 공방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친이 주류 쪽에서는 과반만 된다면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 쪽은 “과반이 됐다면 일단 승리한 것으로 봐야 할 텐데, 공천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친박 쪽의 분위기는 다르다. 과반이 됐더라도 과반의 ‘질’에 대해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당 밖에서 친박무소속연대라는 이름으로 텐트를 치고 있는 김무성 전 최고위원은 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의석수 과반이 됐다고 문제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못 받아 탈락한 사람이 밖으로 나와 많이 당선된다면 그것도 한나라당이 민심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4·9 총선이 한나라당의 ‘어중간한 승리’로 끝날 경우, 친이 주류 쪽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총선 기여도가 낮다는 사실을 공격할 수 있고, 반대로 친박 진영은 공천 책임론으로 맞받아칠 수 있다.
양쪽의 셈법이 다른 것은 차기 당권 경쟁에 대한 유불리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해법은 결국 전당대회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미 7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일정을 5월로 앞당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30일 시작되는 제18대 국회 일정에 맞춰 전당대회를 치르자는 것이다.
“국회 일정 맞춰 전당대회 앞당기자”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어차피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는 각 당원협의회장들에게 당직은 물론 국회 각 상임위원장과 원내수석부대표 등 국회직 등도 ‘미끼’로 제시해야 한다”며 “그렇다면 전당대회를 굳이 국회 원 구성이 다 끝나는 7월에 하기보다 국회 개원 일정에 맞춰 치르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강재섭 대표의 핵심 측근은 “전당대회를 앞당겨서 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일리가 있지만 이 역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많아서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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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는 과연 당권에 직접 도전할까. 4·9 총선 직후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물론 박 전 대표 본인은 한번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의사와 무관하게 총선 이후 당내 상황이 그의 출마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박 전 대표가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만 한다면 당권 경쟁 구도에 일대 파란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치러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은 대략 40여 명 선이다. 나머지 190여 명의 위원장은 일단 친이로 보는 것이 맞다. 박 전 대표가 출마한다면 190 대 40의 불리한 조건을 무릅쓰고 나서게 된다.
관건은 이들 당협위원장의 수가 아니라 결속력이다. 친박 쪽에서는 “당권 경쟁을 숫자 싸움으로만 이해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싸움이지만 결과가 꼭 그대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우리 쪽 당협위원장은 80명 수준에 불과했지만 결과는 당시 이명박 후보와 대등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협위원장들이 표심에 직접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대의원과 일부 핵심 당원들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일반 당원의 표심은 국민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1인2표제로 치러진다는 사실도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당권을 노리는 후보로 누가 나오든 두 표 가운데 한 표는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높은 박 전 대표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강점은 친박 진영의 결속력이 어느 계파보다 단단하다는 점이다. 친이로 분류할 수 있는 190명의 당협위원장이 ‘비박연대’를 형성한다 해도, 연대의 형태는 똘똘 뭉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친박 진영에 비해 느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권에 도전하는 사람이 박 전 대표 혼자만은 아니기 때문에 친이 진영 모두가 연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박 전 대표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이들의 선택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차지하게 된다면 여당에 대한 통제력을 사실상 잃게 되는 셈이다. 2010년 지방선거 공천에 대한 권한도 박 전 대표에게 맡겨야 한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아무래도 껄끄럽다.
이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당내 인사는 “집권 여당의 초대 지도부는 아무래도 정부와 대통령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 위주로 구성되는 것이 좋다”며 “반대로 긴장 관계에 있는 인사가 당 대표를 맡는다면 안정적 국정운영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김형오 전 원내대표 카드다. 친이 인사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크게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총선 책임론을 비껴간다는 전제 아래 강재섭 대표도 거론되고,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정몽준 최고위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아울러 안상수·홍준표·남경필·원희룡 의원도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만 이들 가운데 강 대표와 김 전 원내대표는 당권에 관심이 없다. 강 대표 쪽은 “당 대표를 다시 맡을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는데도 계속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며 오히려 당혹스러워했다. 김형오 전 원내대표 쪽도 마찬가지다. 김 전 원내대표 쪽 고성학 보좌관은 “당 대표라면 아무래도 조직 등 자기 세력이 있어야 한다”며 “아무래도 당 대표보다는 국회의장 쪽에 마음이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당 대표가 되는 그림도 현재로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다. 우선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잠룡들 입장에서는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외부 인사가 불쑥 들어와서 당권을 틀어쥐는 것을 마뜩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게다가 현대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상황에서 여당 대표마저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 최고위원이 차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당 대표를 맡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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