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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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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나라 구경가볼까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재일화교 4세가 본 중국인의 북한 관광…우월감을 느끼려 가고 ‘타이마판’ 세관 직원에 놀라네

북녘 땅을 들고 나는 건 이제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땅을 있는 그대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북쪽이 ‘보여주는 것’만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재일화교 4세인 프리랜스 기자 레이이훙(雷一鴻·가명)이 최근 중국인 관광객 틈에 끼어 4박5일 동안 북한 관광길에 나섰다. 단둥~신의주 국경을 열차로 넘어간 ‘외국인’의 눈에 비친 북한, 그리고 북-중 관계의 현실은 신선한 충격이다. 일본어로 쓴 것을 재일동포 언론인 김향청( 편집자)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편집자

▣ 단둥·평양=글·사진 레이이훙
▣ 번역 김향청

중국어 검색 사이트에서 ‘조선’ ‘여행’이란 검색어를 치면, 단둥의 여행회사가 추천하는 북한 관광상품들이 나온다. 오래전부터 북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중에서도 괜찮아 보이는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언제 출발하냐?” “요금은 3박4일에 3200위안(약 42만원)이다. …하여튼 이름과 생년월일, 근무하는 회사명 그리고 여권을 스캔해서 메일로 보내주시라.”

중국의 1960~70년대를 연상시키는 풍경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쉴 틈 없이 이렇게 말했다. 담백한 대응에 놀라면서도 하라는 대로 일단 메일을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 “당신이 희망하는 출발일은 다른 중국인 신청자가 없다. 다른 날로 옮겨달라. 그래도 가고 싶으면 요금이 좀더 올라간다. 7600위안(약 99만원) 정도다.”

개인적인 일정상 그럴 수밖에 없어 “7600위안이라도 가겠다”고 답했다. 그래도 일본의 총련계 여행사를 통해 신청하는 것보다는 훨씬 싼값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같은 일정으로 2배 이상의 경비가 든다.

사증(비자) 신청을 위해 출발 전날 오후 단둥으로 들어가 여행사 담당자 린(林)을 만났다. 그는 여권을 맡기고 수속을 끝내자, 단둥의 관광지도 안내해줬다. 그에게 북한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중국인들의 북한 여행에 대한 뜻밖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연간 1만2천~1만5천여 명의 중국인들이 관광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유럽 쪽에선 연간 1천여 명, 일본 쪽에선 500명 이하가 북을 찾는다. 유럽 쪽에선 주로 네덜란드와 영국, 독일 사람들이 많다. 이들과 비교해 중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다.”

린씨가 언급한 수치는 북한 국가관광총국에서 지정하는 연간 관광객 규모와 거의 일치한다. 연말에 ‘목표인원’이 거의 달성되면, 북쪽에서 입국 사증을 발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국 관광객 중에는 조선족보다 한족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중산층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이 많고, 나머지는 조부모가 한국전쟁에서 싸웠다거나 북한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중국의 부유층은 보통 유럽이나 일본, 미국으로 여행을 간단다.

“북한은 중국의 국가관광국에서 지정하는 ‘여행 지정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여행사는 원칙적으로는 북한 여행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 하지만 단둥은 ‘중-조우이경제특구’이기 때문에, 이곳 여행사는 예외다. 여행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중국 동북지방 사람들이 많은데, 쓰촨성이나 산둥성 등 내륙이나 화남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이나 유럽 관광객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여행자들도 ‘기이한 나라를 한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북한 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일종의 ‘노스탤지어’와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도 있을 게다. 지금의 북한 풍경은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0~70년대의 중국과 닮아 있으니….”

단체여행은 대부분 10~15명 정도로 구성돼, 국제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들어간다. 단둥에서 평양까지 걸리는 순수 열차 시간은 5시간 정도지만, 입국 심사에 시간이 걸려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도 단둥을 오전 10시에 출발해 오후 3시에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입국 심사에 3시간이 넘게 걸려 결국 평양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께였다.

음식물 잔뜩 싸왔다가 인민 집 문을 두드리다

평양 시내, 판문점, 묘향산 등의 관광지까지는 관광버스를 이용한다. 통상 북한 안내원 2명과 운전기사 1명이 여행길에 함께한다. 일본인이나 유럽인의 경우 관광객 2~3명에 안내원 2명이 동행하는 게 보통이지만,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감시’는 그리 엄하지 않다. 이런 틈을 타 중국 관광객이 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많단다. 린씨는 이렇게 말했다.

“음식물을 잔뜩 싸가는 관광객이 많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북한에는 식량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관광객들은 외국인 전용호텔에서 머물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일부 중국 관광객들은 귀국날이 가까워지면 안내원이 안 보는 사이에 북한 주민들이 사는 집 문을 두드리고는 ‘조선의 형제동지, 중국 인민들이 보내는 소박한 선물입니다!’ 같은 독한 농담을 하곤 남은 음식물을 그 집에 두고 갑니다. 개성 주변의 민가나 평양의 아파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안 안내원이 엄격히 경고를 하지만 중국인들에겐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국제열차를 타고 가다 농민이나 부랑아를 보면 창문으로 음식물을 던지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사실 국제열차가 다니는 철로변에선 떠돌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뭔가를 달라’는 듯이 열차에 돌을 던지면서까지 재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 촬영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북한에서는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 사진 촬영을 금지되어 있는데, 중국 관광객들은 안내원이 없으면 맘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북한 출국심사 과정에 디지털 카메라 사진을 한장한장 ‘검열’받는 경우도 있다.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찍은 사진을 ‘지워라’ ‘못 지운다’ 하며 관광객과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1명이 ‘검열’을 받는 동안 메모리카드를 숨기거나 아예 입속에 넣어서 숨기는 이들까지도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단다. 신의주에서 등에 큰 짐을 진 누더기옷을 입은 노인의 사진을 찍은 중국 관광객이 있었다. 군인과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달려와 카메라를 빼앗고 벌금 7천위안을 부과했다. 그 관광객은 벌금 영수증을 달라고 했지만 받지 못하자, 되레 화를 내며 “니들 호주머니 속에 다 넣어버리는 거지! 이 나쁜 놈들! 카메라를 다시 줄 때까지 출국을 안 하겠다”며 플랫폼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결국 북한 안내원이 간신히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을 설득해 카메라 몰수도, 벌금도 면했다는 게다. 린씨는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이 조선혁명박물관 안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때 박물관 직원이 ‘그런 지저분한 차림으로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건 결례’라고 말했다. 그 관광객은 다박수염(다보록하게 난 짧은 수염)에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러자 관광객은 화를 내며 견학하러 온 북한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들이 입은 옷보다 몇십 배 비싼 옷’이라고 말한 뒤, 티셔츠를 벗어버리려 했다. 결국 경비원들이 그를 붙들었다.”

북한 최신 정보의 보고, 중국 블로그

중국 관광객은 거의 평양에서 가장 고급스럽다고 알려진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숙박한다. 여기서도 중국인 여행자들의 평은 좋지 않다. 국제열차 안에서 만난 중국인 사업가 셰(謝)는 이렇게 말했다.

“호텔 1층에는 마카오 자본이 운영하는 카지노가 있다. 중국 동북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겐 이곳이 가장 가까운 카지노다. 그러니 카지노에서 놀 목적으로 방북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주체사상탑이나 혁명박물관 같은 ‘재미없는 데’는 안 간다고 하면서, 여행 기간 내내 카지노에서만 지낸다. 카지노는 북한 현지 주민은 출입을 금하기 때문에 안내원도 안에는 못 들어간다.”

카지노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경제교류를 목적으로 방북한 한국인들이 카지노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경비원이 제지하며 “여기는 외국인 전용이다. 당신들은 조선 민족이니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게다. 한국인은 북한에서 ‘외국인’이 아닌 셈이다.

카지노 옆에는 사우나도 있다. 중화권에서 ‘사우나’는 유흥업소를 뜻한다. 이곳에서도 가장 비싼 코스를 선택하면 성매매를 할 수도 있단다. 그러나 여성들은 모두 단둥에서 온 중국인들이다. 북한인을 성매매할 수 있다고 생각한 중국 여행자들은 크게 실망한다. 사업가 셰의 말이다.

“북한 안내원에게 ‘여자는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단념한다. 호텔 매점이나 식당의 여종업원들에게 치근덕대는 관광객도 있다. 물론 종업원들은 줄행랑을 친다.”

북한의 최신 정보를 얻자면 중국인들의 개인 블로그를 보는 게 좋다. 엄청난 수의 ‘북한 여행기’가 풍부한 사진과 함께 게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진을 어떻게 찍었을까?’ 할 정도로 북한의 보기 힘든 풍경들이 수없이 담겨 있다. “김일성 생가의 우물물을 마셨다가 설사를 했다”거나 “판문점에서 왁자지껄 장난치면서 분계선을 넘는 척 하다가 군인에게 붙잡혔다”는 얘기도 등장한다. 그러나 많은 블로거들은 “상상 이상의 가난에 경악했다. 하루빨리 (북한도) 형편이 좋아져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인들에게 북한 관광은 자존심을 충족시켜주고, 우월감에 휩싸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린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국전쟁 이래의 피의 동맹’이란 말은 허구에 찬 위선으로 느껴졌다.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업신여기고 낮춰보고 있다. 여행회사의 린도 북을 낮춰보면서도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 장사가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반응은 북한 쪽도 마찬가지다. 평양에서 동행한 북한 안내원은 중국 관광객들이 “예절이 없다”고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린다거나, 식사를 할 때도 소란스럽고, 김일성 동상 등 혁명 사적지에서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는 게다. 많은 북한 안내원은 중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아는데, “가능하면 유럽 사람들 가이드를 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예절이 없다” “노동자의 질이 낮다”

일 때문에 북한을 드나드는 중국인 사업가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국제열차에서 같은 객실을 이용한 왕(王)은 “평양 교외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 합병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북한에 진출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북한은 인건비가 매우 싸다.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은 30위안(약 3900원) 정도다. 그러니 중국 동북지방 제조업자들은 싼 노동력을 찾아 북한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 의류나 식품가공, 일용품 제조업 등이 많다”고 말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알려진 중국 사업가들이 ‘인건비가 싸다’고 느낀다면, 선진국에서 보면 공짜나 마찬가지일 게다. 그러나 “문제도 많다”고 왕은 말했다.

“노동자의 질이 낮다. 북한 노동자 5명이 하는 일을 중국인 노동자 1명이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한을 못 지키고 정전으로 인한 조업 중단도 많다. 이번에 방북하는 것도 예정했던 날보다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생산라인 가동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주에서 피복합병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 사업가 우는 26살의 젊은이다.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학생처럼 보였다. 그는 “지금 북한 장사는 기세가 좋다. 한 달에 대충 10만위안(약 1300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자랑했다. “다만 여기에 있으면 오락거리가 거의 없어서 힘들다.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휴대전화도 없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우니 일주일에 두 번은 단둥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

그러나 쉬운 일만은 아니다. 중국 비즈니스맨들이 입을 모아 ‘타이마판’(太麻煩·골치 아픈 존재)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세관 직원들이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완전히 뇌물사회다. 합병사업을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게 ‘선물’이다. 정부 쪽 책임자나 공장 책임자들에게 가전제품 같은 것을 준비하고, 노동자들에겐 라면 같은 음식물과 담배를 줘야 한다. 이런 선물은 최소 2개씩은 준비를 해야 한다. 왜? 1개는 세관에서 ‘공물’로 사용된다. 물론 다 몰수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매번 방북할 때마다 수천위안의 비용이 든다. ‘신의주에서 세관 직원을 1년만 하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다’고 다들 말한다.”

북한의 세관 심사는 엄한 걸로 유명하지만, 부패의 농도는 더욱 짙었다. 나도 목격했다. 가방 검사를 하려다 잘 열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칼로 찢기도 했다. 짐 검사를 한 뒤에는 내용물 몇 개를 예삿일로 ‘몰수’했다. “야, 담배” 하고 소리쳐 담배를 꺼내 한 개비 주려 했더니, 갑째 가져가버리기도 했다. 짐 검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무실로 들어가 내기 주패를 하거나, 몰수한 ‘여성 미용잡지’에 나오는 반알몸의 여자 모델 사진을 돌려보면서 천하게 웃는 축들도 있었다. 평양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는 이렇게 전했다.

“신의주 세관 직원들에겐 1만위안(130여만원)은 돈도 아니다. 최신 세탁기 20대를 북으로 들여가려다 7대를 몰수당한 동료 사업가도 있다. 부패가 너무 심해서 중국인 사업가들이 참지 못하고 최근 중국 상무부에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10월 신의주 세관장이 바뀌었다. 옛 세관장은 공개 처형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신의주 세관 직원, 1년 하면 집을 산다

자국 내 부패 관료들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중국인들조차도 “북한은 심하다”고 느낀다니 놀랍다. 그래도 중국 사업가들은 “돈을 위해” 북한에서 사업을 계속한다. 관광과 사업의 현장에서 마주친 두 나라 관계의 현실은 기존에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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