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순번 보장받으며 정계 입문하더니 이제는 언론인들끼리 공천을 두고 맞붙기도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총선의 폴리널리스트]
사실 따지고 보면 언론인의 정계 진출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기자’ 출신이었다. 1898년 창간된 주필을 시작으로 언론인 활동을 시작한 이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선배님은 이승만 전 대통령
당시만 해도 기자는 ‘기재원’ 또는 ‘탐보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898년 9월14일치를 보면 “한성신보가 뎨국신문 기자 이승만을 비난했다”는 문장이 발견된다. 이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제1호 기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전 대통령말고도 해방 전후의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 대부분은 언론인 출신이었다.
물론 당시는 언론과 정치의 역할이 분화되기 이전이었다. 지금처럼 언론을 정치권력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세태와는 질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언론과 정치의 영역이 나뉘고 언론에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이 부여된 근대화 이후, 이번 총선처럼 폴리널리스트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온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국회의원 배지를 노리고 언론사를 그만둔 언론인들만 모아도 언론사 하나는 넉넉히 차릴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정치를 지망하는 언론인들이 많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 하나 있다. 언론인 프리미엄이 사라진 것이다. 쉽게 말하면 폴리널리스트는 이제 ‘똥값’이다. 지난 17대 총선만 해도 언론인들은 공천을 약속받고 나서야 정치권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선 안정권에 있는 비례대표 순번을 보장받거나 금싸라기 같은 지역구 단일후보로 약속받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한나라당 공천 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지역구에서 언론인들끼리 공천을 놓고 맞붙는 경우까지 생겼다. 서울 동작갑에서 맞붙는 홍정욱 전 회장과 유정현 전 SBS 아나운서가 대표적이다. 홍 전 회장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처조카 사위다. 유 전 아나운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관악을에서는 박선규 전 한국방송 기자와 박종진 전 MBN 앵커가 동시에 공천을 신청했다. 이들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김성동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물론, 김철수 양지병원 원장이라는 만만찮은 예비후보들과 공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인천 중·동·옹진에서는 엄광석 전 SBS 대기자와 이규민 전 편집국장이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친다. 두 사람 모두 중량급 언론인 출신이어서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문사 vs 방송사, 앵커 vs 방송기자…
4월9일 치러지는 본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보이는 언론인들도 있다. 한나라당 서울 마포갑에 공천을 신청한 강승규 전 기자가 공천을 확정받는다면 마포갑의 현역 노웅래 통합민주당 의원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노 의원은 문화방송 기자 출신이다.
바로 옆의 마포을에서는 TV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 인기가 높았던 정범구 전 의원과 홍윤오 전 기자가 맞붙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물론 홍 전 기자가 공천을 따낸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홍 전 기자는 정몽준 최고위원의 최측근으로 꼽히고 있다.
경기 안산상록을의 경우 한나라당에서는 이진동 전 기자가, 통합민주당에서는 김재목 전 논설위원이 공천을 신청했다. 두 사람이 예선에서 살아남는다면 이 역시 결과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소개한 예비후보들은 선배 ‘폴리널리스트’들과 비교하면, 불행한 축에 속한다.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그곳이 광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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