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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위기] 미국 제조 폭탄 돌리기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대중 패닉을 넘은 정교한 거래 해온 기관들의 공포심, ‘미국 문제’ 이어 ‘차이나 리스크’로</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전세계 경제가 ‘불만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뉴욕에서부터 상하이·도쿄·홍콩·뭄바이·서울 증시까지 글로벌 주식가격은 1월21·22일 9·11 사태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일제히 폭락했다. 22일 신코증권의 주식딜러 겐 마스다는 “여기는 마치 장례식장 같다”며 “오늘밤 뉴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모두들 장님이 됐다. 뉴욕시장이 열릴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파는 일밖에 없다”고 폭락장 분위기를 전했다. 세계 증권가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는 “전세계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60여 년간 지속해온 슈퍼 호황(super-boom)의 끝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매우 고통스러운 거품 해소’와 ‘기나긴 경기 후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미국 경기침체는 “이미 현실”? [%%IMAGE4%%]

글로벌 경제는 2001년 닷컴 거품 붕괴 이후 2003년부터 4년간 해마다 5.2%씩 성장하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1980∼2000년까지 연간 5% 이상 성장한 나라는 50개 안팎이었으나 2006년에는 104개국으로 늘어났다. 특히 중국·인도를 비롯한 브릭스 등 신흥 개도국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세계 경제의 ‘또 다른 희망’으로 떠올랐다. 미국 경제가 깊은 경기 하강에 접어들더라도 신흥시장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성장 국면’에 돌입했다는 기대가 퍼졌다.

그러나 ‘폭풍 전의 고요’였을까? 미국발 경기침체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면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고, 전세계 이코노미스트들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하다. 1987년 10월19일 블랙먼데이(black monday· 뉴욕 증권시장에서 일어났던 주가 대폭락, 전일 대비 -22.6%)의 잠재적 공포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순식간에 확산되고 있는, 재앙에 가까운 비관론의 진앙지는 미국 경제다. 2006년 현재 미국은 세계 경제 총생산의 27%, 세계 경제 수입액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의 이목은 수입 대국인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에 휘청이면서 ‘경기침체’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미국 고용지표(실업률 5.0%)가 매우 나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고용시장 불안과 주택시장 위축이 점점 더 깊어지고, 경제성장이 상당히 둔화될 위험”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 잔 해치우스는 “각종 지표들에 비춰볼 때 미국의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됐거나,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다”면서 “12월 실업률 상승은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소비지출 확장이 올해 막을 내릴 것을 예고함으로써, 미국 경제가 후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경제지표들이 경기침체의 발생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는 마이너스 성장률이 2분기 이상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골드만삭스는 2008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0.8%로 하향 조정하면서 2분기에는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전망했다.

메릴린치도 미국 경기침체는 “이미 현실”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메릴린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젠버그는 “문제는 침체가 얼마나 심각하게,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라며 “그러나 경기하강이 비교적 완만하고 짧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된 것도 아니고 경계에서 아슬아슬 맴돌고 있다”거나 “가까스로 침체를 피해갈 수 있다. 상반기에 성장률이 둔화되겠지만 하반기에는 성장 속도가 다시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코노미스트들도 있다. 미국이 이미 경기침체에 빠졌을 가능성을 50%니, 14%니 확률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침체 임박이 분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시장에는 극도의 공포심이 대두하고 있다. 사실 미국 경제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은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인지 여부를 떠나 “얼마나 길고 깊은” 침체일 것이냐는 구도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경기 후퇴를 막기 위해 최근 1500억달러 규모의 세금 환급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1월21일 밤 기습적으로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4.25%에서 3.50%로 0.75%포인트나 내렸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처럼 빠르고 과감하게 단기금리를 내렸다면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기 때문일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에서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경제여건)보다는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주식 투자자들의 두려움 자체가 글로벌 증시 폭락을 촉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른바 ‘자기 실현적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포심 차원을 넘어,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뒤 미국 경제의 불균형과 취약성이 각종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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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빚으로 경제를 부양해오다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는 ‘과소비’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은 미국 소비자들이었다. 미국의 경제성장 기여도에서 소비지출이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 경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가 이끌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과소비’라는 데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 달러를 마구 찍어냈고, 발행된 달러는 신흥국가들이 미 국채 매입 등의 형태로 사들여왔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활용해 경제를 부양하고, 소비자들도 달러빚으로 먹고 쓰고 해온 것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소비자들의 무절제한 지출과 차입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경제의 근본 문제 중 하나다. 이것이 개선돼야 미국 경제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근심거리인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바탕에도 과소비가 자리잡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1월23일 “현재의 위기는 전례 없이 낮은 이자율에 미국 사회가 무모한 대출에 빠져들었고, 미국 경제가 대출받은 돈과 대출받은 시간으로 연명해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소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1991년 4분기 이후 없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자산가치 하락’은 신용경색과 소비위축을 불러오게 된다. 미국의 소비 증가율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경기침체에 따라 조만간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일반 투자자보다는 신용경색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헤지펀드와 투자은행 등 기관의 투매가 폭락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대표되는 파생상품 거래의 위험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늘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대중의 패닉이 아니라 정교한 거래를 해온 기관들의 공포심”이라는 주장인데, “투자 위험을 헤지할 수 있다”는 첨단 투자기법과 금융공학에 따른 파생상품 확산이 ‘재앙으로 가는 길’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신종자산들이 복잡한 금융공학에 따라 신용위험을 자잘하게 세분화한 형태(파생증권)로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매매돼왔다. ‘금융 세계화’에 따라 금융시장이 거대한 규모로 커지고, 고삐 풀린 금융자본이 전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첨단 금융공학이 오히려 신용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격이다. 이종우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자금 운용이 전세계에 걸쳐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충격파가 글로벌 증시 전체로 전파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거품은 올림픽 뒤 꺼진다?

서브프라임 부실 규모는 파생 금융상품과 엮여 있기 때문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 메릴린치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지난해 말 대규모 상각 처리를 통해 서브프라임 관련 부실을 털어냈음에도 서브프라임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관측도 우세하다. 실제로 서브프라임 부실이 미국뿐 아니라 영국·독일·오스트레일리아·한국 등 전세계 은행을 덮치면서 자산평가 손실이 속속 드러나고, 부실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미국 내의 주택 문제가 전세계에 걸쳐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양상인데, 시장에서는 씨티그룹 파산설까지 루머로 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 또 부실이 터질지 모른다”는 글로벌 공포가 확산되고, 금융 세계화의 영향으로 신용위기가 독감처럼 퍼지면서 세계 경제가 극적인 수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식과 채권을 팔고 금·원유·곡물 등 더 안전한 자산으로 돈이 이동하는 ‘질로의 도피’(Flight to Quality)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부실 수렁에 빠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는 양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 문제’에 이어 ‘차이나 리스크’까지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문제는 요즘 주가 폭락세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동안 중국·인도 등 주요 신흥시장은 미국 소비자 다음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동안 신흥경제의 성장으로 세계 경제의 축이 다변화됐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가라앉아도 대신 중국을 위시한 신흥국의 왕성한 수요가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이른바 ‘글로벌 디커플링‘(탈동조화) 이론이 인기를 얻어왔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어느 때보다 더 밀접하게 얽혀들고 있다. 김세중 팀장은 “그동안 중국과 인도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별개로 자체 성장 모멘텀으로 갈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며 “그러나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면서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증시는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머징 경제의 성장 스토리는 유효하다”는 믿음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중국 은행들도 서브프라임 부실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홍콩 주식시장은 폭락세로 돌변했다. 글로벌 경제의 상승 사이클을 이끌어온 신흥시장에도 서브프라임 부실이 전염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고, 신흥시장의 불확실성마저 높아지면서 증시 폭락세에 불이 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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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끝나기 직전에 가장 재미있는 법이다. 미국 경제가 냉각됐다면 차이나 리스크는 ‘과열’이 문제다. 상하이 종합주가지수는 2005년 말부터 2007년 8월까지 무려 446%나 올랐다. “중국 증시의 폭락이 지연되고 있지만 조만간 중국의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이 터질 것이다. 다만 베이징올림픽 이후에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분석은 오래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폭의 조정이 임박했다는 경고에도 디커플링 믿음이 주가를 떠받치면서 중국 증시는 지난해 11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완만한 조정을 거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글로벌 주가 폭락의 원인으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주식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기침체가 중국·인도의 수출에 타격을 가하는 등 신흥경제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의구심이 고조되고, 신흥시장이 세계 경제의 또 다른 피난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폭락장으로 돌변한 것이다.

사실 중국 정부는 부동산·주식 등 자산 거품으로 인해 가중되고 있는 물가 인상 압력을 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장기적이고 건전한 성장을 하려면 과열을 억제하고 자산에 낀 거품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은 긴축의 고삐를 더 죄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긴축으로 중국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고 거품 붕괴까지 겹치면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미국과 중국 경제는 지난해 세계 경제 성장에 각각 17%씩 기여한 것으로 집계된다.

11.5% 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는 지난해가 중국 경제 성장의 정점을 찍은 해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중국 수출품의 19%가 향하는 곳이다.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면 중국 경제의 성장동력 둔화도 불가피하다. 게다가 중동·중남미·아프리카 경제의 성장을 지탱해왔던 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도 미국 경제침체의 영향권에 서서히 편입되고 있다. 신흥경제까지 성장률이 둔화되면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이제 금융에서 실물경제로 이전되는 단계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일까.

과연, 이번 미 연준의 신속하고 대폭적인 금리 인하가 세계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카드’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과소비 등 미국 경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또 다른 거품을 잉태하는 미봉책이 될 것이란 얘기다. 2001년부터 미 연준은 닷컴 버블 붕괴에 따른 경기 하강에 대응하기 위해 6.5%였던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계속 내렸다. 그러나 오랜 저금리의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산가격은 대폭 상승했고, 가계부채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불어났다. 사실 서브프라임 사태는 과잉 유동성과 저금리가 불러온 거품이 붕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연준이 미국 경제의 근본 문제에 대한 고통스런 해결을 외면한 채 유례없는 ‘유동성 잔치’를 통해 경제를 부양해왔고, 이것이 전세계적인 자산가격 거품을 만들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잉 유동성을 바탕으로 미국 주택시장이 과열돼왔다. 지금은 제조업이나 기업의 수익성 쪽이 아니라 금융 측면에서 과열 유동성의 후유증이 터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만의 계절’ 뒤 ‘실망의 해’

연준의 금리 인하는 또다시 유동성을 공급해 서브프라임 부실을 지연시키겠다는 것인데, 전세계적인 유동성 과잉으로 자산가격 거품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질 수 있다. 국내의 한 투자분석가는 “연준이 금리를 계속 내리면 2분기 이후 주가가 다시 한 번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제는 더 망가지게 된다. 지금은 거의 마지막 버블이란 느낌이 자꾸만 든다. 힘들게 견디면서 거품을 빼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연준의 금리 인하로 주식투자 열기가 다시 한 번 끓어오를 수 있겠지만 이는 버블이 폭발하기 직전의 양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국적인 상황은 아니라도, 지난 4년간 세계 경제가 누린 좋은 시절이 끝나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은 지난해 말, 2008년은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끝내고 ‘실망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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