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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독립성이 원칙이다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인수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 방침은 권력분립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한 것

▣ 임재홍 영남대 교수·법학부

지난 1월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수위가 내걸고 있는 표면적 이유는 헌법적 문제다. 즉, “인권위와 방송위는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위원회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며, 때문에 지나치게 격상된 조직의 위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권위와 방송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인수위 입장은 인권위의 반발을 넘어 거센 사회적·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고, 수많은 인권단체들이 인권위를 ‘권력의 시녀’로 재편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국제적으로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인수위에 보낸 서한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계획을 재검토해 인권위가 국내적·지역적·세계적 수준에서 훌륭하게 하고 있는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성명을 내고 독립성을 훼손시키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온 역할에 대해서는 상반된 정치적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권위가 국민에게 인권친화적인 국가기관으로 자리매김한 점은 누구든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여론이나 정부 정책과 대립하면서도 인권 옹호라는 관점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9·11 테러 여파로 국가정보원이 추진한 ‘테러방지 법안’에 대해 인권위는 시민사회 단체와 전문가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체 연구·분석을 통해 이 법안이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이라크 파병,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등을 두고 노무현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기도 했다. 이는 인권위가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대통령 직속기구가 된다면 이러한 인권위의 역할은 상당히 후퇴할 것이다. 우리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 소속기구가 된다면 대통령 소속기구인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과 같은 권력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해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인권위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1년 11월25일이다.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데 목적을 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면서 가능했다. 인권위의 설치는 인권 대통령이라 자임했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인권보장을 위해서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개별 국가별로 설립할 것을 오래전부터 권고해온 국가기구이기도 했다. 1998년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을 위한 논의 초기부터 인권위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특수법인으로 하자는 정부(법무부)와 국가기관으로 하자는 인권단체 사이에 격렬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또한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통령 직속기구로 하자는 주장과 독립된 행정위원회로 하자는 주장이 대립했다. 이러한 논란 과정을 거쳐 인권위를 어느 헌법기관에도 소속시키지 않고 독립위원회로 하는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유엔과 국제규범의 원칙을 받아들인 점에 기인한다.

유엔의 권고나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파리원칙’을 볼 때, 인권위의 독립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규범들은 법적 자치와 운영상의 자치를 통한 독립성을 제일 중시하고 있다. 바로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 그 구체적인 의미다. 그래서 인권위원회가 대통령과 의회에 대해서 직접 책임을 지는 지위를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권위원회법 제정 당시 한나라당도 독립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2001년 입법 당시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인권법(안)도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하도록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위원회를 운영함”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법안 곳곳에서 인권위원의 신분 보장과 재정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독립기구로 하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충실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인수위나 한나라당은 정권을 잡으면서 분명 인권위의 위상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삼권분립 원칙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근대 헌법의 형성 과정에서 권력분립 제도는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해서 고안된 제도다. 즉,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고가 근저에 깔려 있다.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설립된 인권위는 권력분립을 도입한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권력분립을 이유로 인권위를 국가권력기관에 소속시키려 한다는 주장은 권력분립 원리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인권위가 헌법기관은 아니지만, 그 업무의 성격이나 지위를 볼 때 장차 헌법기관화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권에 기반한 공동체 형성에서 인권위 혹은 인권위와 유사한 국가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일이다. 바로 이 점에서 헌법상 규정된 기관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기관으로서 인권위를 인정하고 종합적 인권보장 기관으로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은 높지 않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새로운 인권정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빈곤과 사회 양극화로 표현되는 새로운 반인권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 아니라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확대된 인권정책, 인권행정이 필요한 때다. 이런 상황에선 인권위를 격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인권위가 실질적인 인권보장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인권위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어느 정당이 여당인지를 불문하고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을 실현해나가는 국가기구로 맡겨진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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