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급물살 탄 삼성특검] “삼성 비자금 10조원 넘을 것”

등록 2008-01-25 00:00 수정 2020-05-03 04:25

김용철 변호사의 법률 대리인 김영희 변호사 “사장급 100억, 고위 임원진·계열사 감안하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인터뷰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중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사정이 생겨서 장소를 바꿨으면 좋겠다며 서울 명동의 한 커피숍을 댔다. 약속한 시각까지 30분가량 남은 10시 반께(1월17일)였다. 오전 11시쯤 도착한 커피숍은 너무 번잡스러워 다시 자리를 옮겨 인근 은행회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 마주 앉았다.

임직원·해외 거주자로부터 제보 많아

김용철 변호사의 법률 대리인으로 ‘삼성 문제’라는 태풍의 한가운데에 있는 처지임을 반영하듯 김영희(42) 변호사(태인종합법률사무소)는 내내 바빠 보였다. 인터뷰 동안에도 자주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1시간쯤 뒤에 또 다른 기자와 만날 약속을 잡아놓고 있었다. 지난해 10월29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 제기 때부터 변호인단에 참여한 뒤 줄곧 이어지는 일상이다.

약속 장소가 바뀐 사실을 떠올리며 오전에 무슨 특별한 일정이라도 있었는지 물었다. “하하, 없었는데….”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삼성 관련)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에 얽힌 비자금 등 삼성 관련 정보를 제공한 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보 중에는 가치 있는 것도 있다. 확인하는 게 어려워서 시간을 쪼개어 쓰고 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김 변호사나 (같이 변호인단에 들어 있는) 이덕우 변호사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해오는 일도 잦다고 한다. “자료를 받아서 확인하다가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객관적인 근거를 찾으려면 국가기관의 서류를 봐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메일로 삼성의 비리를 제보한 예도 있고, 전·현직 삼성 임직원뿐 아니라 제3의 외부자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자료를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실제 불법 비리가 존재하니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며 “아무리 단속해도 제보하는 내부자는 있기 마련이다”며 희망을 비쳤다.

삼성 비자금 은닉 및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한 조준웅 특검팀의 수사는 1월14일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인 승지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이튿날엔 삼성 본관과 이 회장의 자택까지 뒤졌다. 김 변호사에게는 이런 사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특검의 압수수색이 화제에 오르자 김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승지원 말고 자택이 따로 있는 줄 몰랐다”며 웃었다. 승지원이 곧 자택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승지원을 압수수색을 할 것이란 예상은 했다. 피의자의 자택과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건 수사의 기본이니까.” 김 변호사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 뒤) 두 달 반이나 지났고, 삼성 쪽에서 많이 대비했을 것이기 때문에 압수수색 자체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기선을 제압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쥔 이건희 회장의 집에 대해서도 이제 국가 공권력이 집행됐다는 점에서다.

“법의 공평한 집행이라는 데 예외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그동안 삼성이 이런저런 사건에 연루됐음에도 그룹 본관이나 총수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그나마 수사 의지를 보여준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삼성 임직원들 입장에선 회장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꼴이 됐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란이 내부적으로 일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105일은 짧다, 3년 정도는 걸려야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도 삼성 특검의 여러 한계 탓에 성과는 제한적일 수 있음을 걱정했다. 특검팀의 인적 구성뿐 아니라 특검법 자체에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연루된) ‘BBK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사안이다. 비자금 규모가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련 임직원은 전·현직을 합해 2천~3천 명에 이른다. 김용철 변호사 이름으로 된 계좌만도 7개였음을 감안해보면…. 그 사람들 계좌를 다 뒤져야 한다.”

김 변호사는 “수사 기간 105일(특검법에 명시된 최장 기간)은 턱없이 짧고 3년 정도는 걸려야 할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삼성 특검팀에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검사는 3명뿐이다. 이명박 특검팀의 10명보다도 훨씬 적다.

아울러 특검팀의 수사 대상에서 빠져 있는 부분이 많다는 문제점이 거론된다. 국세청,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국가 공공기관에 대한 삼성의 로비만 수사 대상에 포함되고 학계나 언론계 등 민간 부문에 대한 로비는 제외돼 있다는 게 한 예다. 분식회계와 위장 계열 분리 문제, 김&장법률사무소와 삼일회계법인에 얽힌 의혹, 삼성 쪽의 증거 인멸 시도 역시 특검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검찰의 인지 수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이 알아서 인지 수사를 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추가 고발을 하는 방식으로 적극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가 계열사 보유의 삼성투신 지분을 헐값에 넘겨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 총수 일가 4명을 서울중앙지검에 1월16일 고발한 건 그런 맥락이다. 김 변호사는 “ 위장 계열분리 의혹과 관련해선,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회장을 고발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가 ‘개인적인 추정’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삼성 비자금 규모를 10조원 이상이라고 언급한 내용은 다시 한 번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초기부터 지금껏 조 단위에 이를 것이란 추측만 난무했기 때문이다. 근거는 뭘까? “막연히 추정한 게 아니다. (삼성 구조본 재직 당시 전무였던) 김용철 변호사급이 50억원의 비자금을 숨기고 있었으니 사장급은 100억원 정도는 될 거다. 이들을 포함한 고위 임원진 수, 각 계열사에 할당한 비자금 관련 증언을 감안할 때 그 정도는 충분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김 변호사는 세 군데 주요 조직에 몸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적을 두고 있으며 참여연대 감사와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을 아울러 맡고 있다. 모두 ‘삼성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조직이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뒤 이건희 회장,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해 삼성 문제에 대한 사법 당국의 대응을 어렵사리 이끌어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총수 일가의 불법·변칙 의혹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가하며 싸움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김 변호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활동하는 공간이다. 그가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를 맡게 된 것 또한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을 맡은 데서 비롯된 바 컸다.

“나의 일은 변호가 아닌 싸움”

김 변호사가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단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27일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한 첫 기자회견 직전이었다. “시내 모처에서 김용철 변호사를 만났는데 민변, 참여연대, 사제단에서 모두 변호를 맡아달라고 해서….” 김 변호사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굉장히 큰일 아닌가. 큰 사건을 해보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 기꺼이 맡았다. 이 일을 맡게 된 걸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김 변호사는 김용철 변호사를 변호하는 자신의 일을 ‘변호’라기보다는 ‘싸움’으로 규정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피의자 처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고발인이다. 고발인에게도 변호인이 필요하다. 고발한 게 기소가 되고 유죄 판결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변호사의 임무다. 따라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변호의 성격은 ‘삼성과의 싸움’이다.”

김 변호사는 변호 요청을 받은 때부터 시작해 2주 동안 이덕우 변호사 등과 함께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을 집중적으로 전해들었다. 공익적인 성격의 제보에선 제일 중요한 게 고발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과 기자회견이 이어져 눈코 뜰 새조차 없었다. 2주 동안 꼬박 하루에 1시간밖에 못 잘 정도였단다. 김 변호사는 진술을 듣는 동안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사건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 ‘기획’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삼성 문제에 대해선 좀 안다고 자부하는 김 변호사에게도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 내용은 충격이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은 했는데, 이렇게 대담하고 공공연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감히 누가 우릴 건드려?’ 하는 무소불위식의 태도가 ‘쇼킹’했다.” 김 변호사는 “처음부터 모두 확신하기는 어려웠어도 김용철 변호사의 말은 다 믿었다”고 했다. 사람을 믿게 하는 진술이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애초엔 걱정과 고민이 컸다고 김 변호사는 털어놓았다. 양심 고백의 내용을 입증하는 문제가 만만치 않아 보여서였다. 김용철 변호사가 제시한 입증 서류들이 있긴 해도 파편처럼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 뒤의 사태는 알려진 대로 생각보다 잘 풀렸다. 외부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관련 증거가 잇달아 제시됐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용철 변호사가 삼성 쪽의 로비를 받았다는 고백은 중요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김 변호사는 평가한다.

김 변호사는 특검의 최대 과제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이건희 회장이 관여한 부분을 밝혀내는 일을 꼽았다. 또 전체 비자금의 조성 내역과 사용처를 밝혀내는 것은 원론적인 일인 동시에 중요한 기본 임무라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경영권 승계 문제에 이건희 회장이 지시하고 관여한 정황은 너무나 명백하다. 김석 삼성증권 부사장(삼성 구조본 재무팀 출신) 같은 사람이 옛날에 거짓 진술을 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이 회장을 소환해 조사하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회장 소환은 증거 확보 뒤에

김 변호사는 “이 회장의 소환 조사는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다.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해 거짓말을 못하게 해놓고 불러야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특검의 수사가 형식적으로 흐르지 않게 동력을 만들어갈 것이며, 이미 확보해놓고 있는 중요한 제보들의 객관적인 근거를 찾아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의 대들보”


사법고시 31기, 새만금·제일모직 소송 이끌어

김영희 변호사는 연세대 법학과 출신으로 1999년 사법고시(31기)에 합격했다. 2002년 변호사로 본격 활동한 초창기부터 시민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활동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갔으며 현재 이 센터를 이어받은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 부소장을 맡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 부자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제일모직 주주대표 소송을 맡고 있으며, 전북 지역 어민과 환경단체들을 대리해 새만금 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제일모직 소송은 현재 1심 단계를 밟고 있다.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으로 넘어가 있는 제일약품 주주대표 소송도 그가 담당하고 있다. 김상조 소장은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하는 고발, 소송건의 많은 부분을 김 변호사가 직접 맡고 있다”며 “경제개혁연대의 대들보”라고 했다.
그는 대학 시절 때부터 시민운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아니었어도 대학교 2학년 때 1987년 ‘민주화’를 겪은 세대답게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같은 학교 동기 ‘이한열’의 죽음은 사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했다. 변호사가 된 것은 ‘공신력을 얻어 운동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월29일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실태를 폭로하자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거대 권력 삼성과 싸움을 벌이는 맨 앞줄에 서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