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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경쟁촉진위원회로?

등록 2008-01-04 00:00 수정 2020-05-03 04:25

‘작은 정부 큰 시장’ 내건 정부 조직법 개정안 1월 중순 처리 계획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위원장 이경숙)가 12월27일 첫 간사단 회의 뒤 밝힌 새 정부의 8대 어젠다에는 ‘공공 부문 개혁과 정부 조직 개편’이 들어 있다. ‘민생경제 대책’에 이은 두 번째 어젠다로 제시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정부 조직 개편을 비롯한 공공 부문 개혁을 중대 과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의 박재완 정부혁신·규제개혁 태스크포스팀장은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하는 배경을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설명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핵심 키워드인 ‘경제’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5년 동안 정부 조직이 비대해지고 기능은 방만해졌다. 군살을 빼고 국민을 편하게 하는 정부를 만들자는 것이다.” 박 팀장은 “스터디(연구)는 많이 돼 있고, 시안도 마련돼 있다”며 “이제 ‘연구’보다 ‘결단’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재경부는 무소불위의 옛 재경원처럼?

인수위 쪽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국무위원을 임명하려면 1월 하순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계산하고 있다. 그렇게 되려면 1월 중순까지 최종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해 1월 초부터 시작되는 각 부처 업무보고 과정에서 부처별 규제 개혁 및 조직 슬림화 방안을 함께 보고하도록 요구하기로 했다. 정부 조직 개편을 상당한 의지를 갖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일 태세여서 공무원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이 당선자의 정부 조직 개편 의지는 후보 시절의 공약으로 일찌감치 제시돼 있었다. 인수위 출범에 앞서 갖가지 개편안이 무성하게 나돌았던 배경이다. 개편안의 구체적 내용은 장막에 가려져 있는데 큰 방향은 비슷한 기능을 한데 묶는 ‘통합’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 사회의 동요를 고려해 인원은 동결하되 각 부처와 부처 내 조직을 ‘대부처, 대국’으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난립한 위원회 조직들을 대폭 정비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정부 부처에 규제와 감독 중심으로 폭넓게 주어진 권한을 줄여, 최소한의 감독권만 남겨 효율화해야 한다는 이 당선자의 평소 지론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부처와 고위직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당선자 쪽에서 참조하고 있는 여러 개편안 중의 하나인 ‘한반도선진화재단안’은 현행 2원18부4처를 1원10부2처로 바꾸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주도한 이 방안은 재정경제부의 경제정책 기능과 기획예산처의 예산 기능을 합쳐 ‘국가전략기획원’을 만드는 걸 중심으로 삼고 있다. 과학기술과 산업, 정보기술(IT)을 ‘과학산업부’로, 교육과 연구·개발(R&D), 문화 등을 ‘미래인적자원부’로 묶는 방식도 포함돼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에 앞서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심의위원 겸 실행위원장을 맡았던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개편에선) 예산 기능의 기획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에 두려고 했는데, 경제관료들의 장난으로 기획예산처라는 별도 부처로 변질됐다”며 “예산실로 축소해 재경부로 보내는 게 정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체제에선 예산을 고리로 산하기관의 시험문제 출제까지 간섭하는 등 ‘예산 횡포’가 심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정부 조직이란 게 고쳐놓아도 잘못이 반복되곤 한다”며 “크게 흔들어선 본전도 못 찾는 수가 많다”고 했다. 특히 예산 기능에 관한 한 조직 개편 이상으로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들여다보는 정부 바깥의 감시 체제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인수위 안팎에서 거론되듯이 예산 기능이 재경부로 옮겨질 경우 재경부는 무소불위의 옛 재경원처럼 될 것이란 비판에 맞닥뜨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재경부의 금융정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경부를 예전의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통합을 넘어 융합되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줄 가늠자는 공정위의 향방일 것 같다. 대기업 관련 규제 정책을 맡아온 공정위는 규제개혁위원회와 합치는 방안이 거론된다. 경쟁촉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는 얘기도 나온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금처럼 재벌들의 소유구조를 따지고, 이런 것을 하기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불공정 거래 문제에 행정력을 집중하라는 뜻”이라고 밝힌다. 재벌 정책의 후퇴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김광웅 명예교수는 “통합을 넘어 융합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부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정부 부처의 기능 중에서 토지·바다·공간 자원을 하나로 묶는 ‘자원부’의 탄생이나 방송과 통신의 융합처럼 문화·관광·교육·과학 등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가 공약한 농식품부 출범 같은 것은 통합일 뿐이라며 융합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김 명예교수는 말한다.

정부 조직 개편 작업에서 1차 걸림돌은 공직사회다. 통폐합 대상 부처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문제여서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문턱은 또 있다. 국회다. 정부 조직 개편은 법 개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다수당인 대통합민주신당 쪽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은 그래서 나온다. ‘총선용’이라거나 ‘공직사회 기강잡기’라는 해석도 있다. 공조직은 비대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해 일단 카드를 꺼내들어 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인수위 첫 간사회의 뒤 브리핑에서 박형준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은 “정부를 줄이고 예산 효율성을 높이자는 데 반대할 명분이 있겠느냐”며 “통합신당 쪽이 반대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정부 개편에 대한) 당선자 의지는 분명하다”며 정치적 카드로 꺼내든 게 아님을 강조했다.

서두를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

개편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 당선자 쪽으로선 서두를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각 부처 장관을 임명하기 전에 조직 개편을 확정하지 않고, 현 직제에서 장관을 임명한 뒤 나중에 조직을 개편하려고 할 경우 부처 이기주의에 매몰돼 바꾸는 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박세일 교수는 “개편 논의가 길어지면 온갖 이해관계가 여러 형태로 개입돼 전체 이익보다 부분 이익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가 전체의 이익을 판단해 개별 부처 이익이 반영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부 개편의 큰 틀로 세 가지를 든다.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담당했던 것 같은 국가전략 기능을 강화하고, 민간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 지방이 잘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지방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됐던 박세일 교수의 제안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정부 개편안 논의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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