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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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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장론, 장밋빛 그림자

등록 2008-01-04 00:00 수정 2020-05-03 04:25

대기업 성장이 저소득층으로 파급되는 모형… 여전히 ‘땀’ 중심, 중소기업·비정규직 지원 방안은 찾을 수 없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 한국 경제 전반에는 기대가 팽배해 있다.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심리가 빠르게 퍼지면서 강남 재건축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등 벌써부터 이른바 ‘이명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자율과 규제 완화· 철폐를 지향하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따라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당장 소득이 늘지 않았다 해도 장기 경제 전망이 나아질 것이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활력이 재점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실용’을 표방한 MB노믹스의 경제정책은 ‘연평균 7% 성장’(성장활력의 재도약)과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 성장으로 가는 길은 ‘더 자유로운 시장’으로 포장돼 있다. 특히 이명박 경제의 구상에 따르면, 7% 성장에 성공하면 어떤 소득계층을 불문하고 누구나 성공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더 많은 민주주의’는 ‘더 많은 시장’으로

사실 7% 경제성장을 향후 10년 동안 지속하면 국내총생산이 2배로 늘어나게 된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급속히 높아지는 놀라운 성장세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경제 살리기)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동안 내세웠던 ‘일 잘하는 정부’를 출범 초기부터 과감한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쪽은 대통령 취임 이전에 유류세 10% 인하, 정부 조직 개편 등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당선자는 12월28일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투자를 독려하는 등 일찌감치 경제성장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이 당선자는 “경제가 산다는 건 결국 기업이 투자하는 것”이라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자체로 투자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경제팀은 분위기만 잘 잡아도 경제가 훨씬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경제에 대한 ‘기대’가 7% 성장을 달성하는 힘이란 것인데, 감세와 규제완화가 앞에서 끌고 기대심리가 뒤에서 밀고 가는 형국이 ‘7% 성장 경제’의 그림이다.

경제정책 기조의 큰 변화는 개인들의 경제적 삶을 뒤흔들어놓게 된다. MB노믹스가 지향하는 규제완화는 곧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고 경쟁을 더 강화하는 것으로, 시장으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어느 정도 보호해주던 각종 규제(제도)가 허물어지고 냉혹한 시장논리에 더 많이 노출되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혹독한 시장 경쟁에서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경제주체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쪽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비생산적 요인을 줄이고 7%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며 “초기에 (시장적 요인의 확대에 따른) 개혁의 고통을 참아내야 이명박 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 10년간 ‘더 많은 민주주의’(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혹은 평등)가 지배 원리였다면 이제는 더 많은 ‘시장의 힘’에 의해 삶이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과 가계에는 국가가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하겠지만 재도전 역시 시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이명박 경제의 운용 기조라고 할 수 있다.

“펀더멘털 없으면 오래 지속될 수 없어

MB노믹스는 성장뿐 아니라 ‘성장을 통한 분배’를 함께 표방하고 있다. “성장의 혜택이 서민과 중산층에 돌아가는” ‘신발전체제’가 대표적이다. 이 체제는 7% 성장 고지에 도달하면 민생경제도 활력을 되찾고 국민 누구나 생활수준이 확 좋아질 것이란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7% 성장 시기에 이르려면 모든 경제주체가 시장논리 강화에 따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과연 7% 고성장이 이뤄지면 양극화도 해결되고 분배도 개선될 것인가? 우리나라의 1970∼2003년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연평균 7.1%였다. 2007년 한국 경제성장률 추정치는 4.8%(하반기 5.0%)인데, 잠재성장률(경제 내의 자본과 노동을 모두 활용해 물가상승 압력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은 4.7%대다. 우리나라의 1995∼2005년 경제성장률(4.4%)이 직전 10년간의 연평균 성장률(8.7%)보다 크게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하락폭을 겪고 있기 때문에 7% 성장 시대에 진입한다면 체감경제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실현 가능할지 모르지만, 집권 5년 동안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추가적인 2%포인트 실질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건 굉장히 높은 것”이라며 “현재 경제 전반에 성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다 하더라도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대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성장 정책에 대한 기대로 소비심리가 높아지더라도 실제 구매력(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소비가 성장을 이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한구 의장은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이뤄지게 하는 것이 (이명박 새 정부의) 실력”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경제의 성장모델은 규제완화로 자유화된 시장에서 ‘기업’이 이끌어가는 모델이다. 국가 재정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진작해 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민간’, 즉 기업의 힘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굵직한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경제를 이끌고 이런 성과가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 파급되는 모형이다. 이한구 의장은 “기업의 경영권 강화 장치를 마련해주고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보험료를 줄여주고 대기업 노조가 사회적 통제를 받도록 하는 등 고용친화적인 정책 대응을 해주면 기업이 투자를 크게 늘리게 될 것”이라며 “경제에 몇 가지 중요한 대응조처만 취해주면 노동공급이 늘어나고 설비투자도 증가하고 생산성도 향상되는 등 총공급능력이 높아져 7%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을 자유롭게 해주면 잠재성장률이 뛰어오르게 될 것이란 얘기다. 한국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직면했는데도 교육·훈련 등 인적자본 투자와 기술 진보보다는 여전히 ‘땀’에 의한 성장을 중심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다. 기술 진보와 교육·훈련을 강화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커야 하는데, 새 정부가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 메커니즘도 노동투입과 설비투자를 통해 성장률 수치를 올리는 쪽에 맞춰져 있다.

‘고용 없는 경기회복 시대’인데…

그러나 이런 성장모델에서는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을 경우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기 어렵다. 2006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4.8% 중 민간 소비가 성장에 기여한 비중은 2.4%포인트인 데 반해 설비투자의 성장기여도는 0.2%포인트에 불과하다. 이명박 경제팀이 내세우는 대기업과 설비투자 중심의 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전체 일자리 가운데 중소기업 일자리가 80% 이상인데, 경제성장의 효과를 서민들이 체감하려면 중소기업까지 파급돼야 한다”며 “그러려면 7% 성장은 내수 성장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05년 4.4%, 2006년 3.1%, 2007년 1∼9월 2.5%로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MB노믹스는 노동공급 확충을 통한 성장을 내세우지만, 7% 성장이 가져다줄 고용 증대도 불확실하다. 최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7% 성장하면 연간 60만 개(5년간 3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건 과거의 취업계수를 이용한 산출일 뿐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정보기술(IT)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우리 경제가 ‘고용 없는 경기회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경제의 효과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고용이 늘어날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용과 관련해 이명박 성장모델에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교육·훈련을 확대해 고용안정과 소득향상을 지원해주는 방안은 발견하기 어렵다. 다만 7% 성장 목표가 이뤄지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경제철학이고, ‘따뜻한 시장경제’라는 목적지도 성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결국 7% 성장 수치에 실패할 경우 경제는 후유증에 봉착하게 될 공산이 크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음료수 그릇)을 치우는 것(걱정거리를 언급하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역할”이라며 “새 정부가 국가 예산을 10%(20조원) 절감하겠다고 하는데 예산을 10% 줄인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만큼 경기부양 효과가 줄어들게 된다. (7% 성장 목표에 매달리다 보니) 경제정책이 상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명박 새 정부는 현행 법인세율(13∼25%)을 10∼2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세금을 적게 거두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도 복지 강화를 함께 내걸고 있다. 민생경제의 경우 △근로소득자 소득공제 대폭 확대 △중산층 50%에서 70%로 확대 △청년실업률 8%에서 4%로 축소 △기름값·통신비·고속도로 통행료·약값 등 서민 생활비(4인 가구 기준 148만원) 연간 530만원 감면 △영세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율 3∼5%에서 1.5%로 인하 등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감세와 동시에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초래하게 된다. 물론 이른 시일 안에 경제가 7% 성장 궤도에 들어선다면 세수기반이 확대되어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7% 성장이 늦춰질수록 감세 정책 아래서 증가하는 복지지출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그동안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부담금이 많이 늘어난 탓에 새 정부가 소득공제를 확대해 가처분소득이 늘면 얇아졌던 지갑이 다소 두툼해졌다는 느낌은 받게 될 것이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공약들을 보면 개혁적 보수 혹은 실용정부란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비해 경제정책이 (시장친화적인 쪽으로) 5m, 10m만 더 나가더라도 경제정책 선회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유류세를 인하하고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등 세금을 줄여주면 서민들은 ‘뭔가 좋아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확실히 갖게 될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팀이 파격적으로 생계형 신용불량자 사면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들을 소비층으로 끌어올려 소비능력을 키워줌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벌써부터 ‘이명박 효과’가 확연한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도 소비 기반 확충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7% 성장’에 대한 기대가 팽배할수록 경제는 물가상승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신용카드 남발 등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는다 해도,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묘수’를 찾아야 한다. 사실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상승 기대도 커지고, 그러면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집 없는 서민이나 봉급생활자는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의 대운하를 뚫기만 하면 된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우리는 실용을 추구한다. 성장하는 데 필요하고 효율적이면 어떤 정책도 도입할 수 있다. 콤비네이션(정책혼합)만 잘되면 7% 성장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완화, 감세, 자유로운 시장이란 분명한 정책기조가 이명박 경제의 힘이고, ‘친시장·친기업 환경’이란 경제의 대운하를 뚫어놓기만 하면 모든 국민이 성공하는 ‘신발전체제’가 열릴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시점이다. 이명박 경제가 성공할 것이냐, 혼돈에 빠질 것이냐는 7% 성장이 실현될 수 있는지, 더 정확하게는 ‘얼마나 빨리’ 7% 성장이 가시화될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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