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 특검 임명에 보수적 정권 탄생… ‘꼬리 자르기’식 수사되지 않을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할 특별검사에 조준웅 전 인천지검장이 임명된 것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12월20일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을 통해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지 50여 일 만이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관리해왔을 사람들
조 특검은 임명일로부터 20일 동안, 3명의 특검보를 임명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후보 6명을 추천하고 파견 검사 3명, 파견 공무원 40명, 특별 수사관 30명의 지원을 요청하거나 임명하는 등 수사 준비 작업을 벌이게 된다. 특검팀의 본격적인 수사는 새해 1월 중순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특검은 근거법에 따라 준비 기간 만료 다음날부터 60일 안에 수사를 완료하고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기간 안에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통령에게 그 사유를 보고해 최대 45일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삼성 특검팀의 수사는 이르면 새 정부 출범 직후인 3월 중순, 늦으면 4월 하순에 마무리된다.
삼성 특검팀의 수사 대상은 두 줄기로 돼 있다. 첫째는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 및 재판 과정의 불법 행위 의혹과 수사 방치 의혹이다. 또 하나는 삼성그룹의 불법 로비와 관련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와 그 비자금이 2002년 대선자금과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의혹과 공직자에 대한 뇌물 제공 의혹이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문제도 작지 않은 사안이지만, 역시 핵심은 이건희 삼성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권에 얽힌 문제다. 삼성과 총수 일가의 운명이 걸린 사안이어서 특검팀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임무의 중대성에 비춰 삼성 특검에 대한 바깥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삼성 비자금을 잇따라 폭로한 사제단, 삼성 비자금을 검찰에 고발해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쪽 모두 조 변호사의 특검 임명에 일제히 반발했다. 삼성 수사 의지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제단 등의 반발은 일찌감치 예고돼 있었다. 반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특검 후보 추천권이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주어졌다는 점이 빌미였다. 변협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 뒤 의뢰인의 비밀을 누설했다며 김 변호사의 징계를 거론해 빈축을 산 바 있다. 삼성 쪽에 편향돼 있다는 중립성 시비를 스스로 불러일으킨 것이다. 특검 후보 추천권자는 특검법에서 정하기 나름이고, 애초 통합신당은 ‘대법원장’을 추천권자로 삼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변협으로 바뀌었다.
삼성 특검이 최종 임명되기도 전에 비판과 회의감을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요인은 변협이 추천한 특검 후보 3명의 면면이었다. 특검으로 임명된 조 전 지검장이나 또 다른 두 후보인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 고영주 전 서울남부지검장이 모두 검찰 고위직 출신이란 사실이 반발을 샀다. 삼성그룹이 검찰 고위직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온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구색도 맞추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 특검에선) 검찰도 주요 수사 대상인데, 세 사람 모두 검찰 출신으로 채워 최소한의 구색도 맞추지 않았다”며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변협이 법규상의 추천권을 남용해 대통령을 ‘조롱’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뻔히 짐작가는 바가 있다”고도 했다. 삼성, 검찰과 한 덩어리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변협이 검찰 논리에 충실한 인사를 특검으로 내세워 검찰이 크게 당하지 않도록 배려한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청와대 쪽에서 썩 내켜하지 않았던 세 후보 가운데 애초 유력하게 거론된 인물은 정홍원 전 원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둘은 공안 검사 출신인 반면, 정 전 원장은 대검 중수과장, 서울지검 특수부장 등 특수 수사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였다. 최종 임명 과정에서 조준웅 전 지검장으로 바뀐 것은 삼성 관련성을 최대한 배제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조 전 지검장의 경우 비교적 오래전인 2001년 검찰을 떠나 상대적으로 삼성 연관성이 적을 것으로 평가됐다.
조준웅 특검은 임명 당일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삼성과 수임 관계를 맺은 적도 없고, 내가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세광)도 삼성과 수임을 맺지 않았다”며 삼성으로부터 독립돼 있음을 강조했다. 특검 수사 의지의 잣대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이는 이건희 회장의 소환 조사 여부에 대해선 “지금 당장 확언할 수 없지만 수사에 필요하다면 소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을 비롯해 30명을 웃도는 삼성 핵심 관계자들은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에 의해 출국이 금지돼 있는 상태다.
특검 임명일에 맞춰 해체된 검찰 특별수사·감찰 본부는 11월15일 설치 이후 수사 기간에 적어도 비자금 부분에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삼성증권 본사·전산센터 등을 압수 수색해 삼성 전·현직 임원 200여 명의 비자금 차명 계좌 300~400개를 찾아냈다. 삼성 비자금 가운데 1천억원 이상이 고가 미술품을 사는 데 쓰이는 등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사실도 여럿 확인했다. 검찰 내부에선 특본에서 확인된 것만으로도 이건희 회장 등을 기소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 특검의 앞날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특본의 수사가 비자금 문제에 집중됐을 뿐 삼성 문제의 핵심인 경영권 불법 세습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제한된 수사기간과 인력 부족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특검의 비상한 ‘의지’ 없이는 큰 성과를 낼 수 없는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새로 탄생할 정권의 성격이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특검의 앞날에 드리운 또 하나의 먹구름이다. ‘삼성을 흔들면 대한민국이 흔들린다’는 보수적 경제 인식은 특검의 수사 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점에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특검에서 모든 문제를 다룰 수 없고, 특검 이후엔 다시 검찰 수사로 이어져야 하는데, 보수 정권 아래에선 이 또한 녹록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특검의 수사가 빙산의 일각만 건드리고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으로 끝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 ‘금융·산업 자본 분리’ 공격해와
삼성 총수 일가 쪽에서 볼 때 특히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 시절 ‘금융·산업 자본분리 원칙’을 부단히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이 원칙이 무너질 경우, 현행법 체계에선 불법적인 요소를 안고 있는 그룹 체제를 온존시키면서 이재용 전무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토대가 형성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할 새 ‘정권’과, 비자금 파문의 충격을 최소화해야 할 삼성 총수 ‘가문’ 사이에 일정한 협조 관계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것이 새 정권과 삼성의 앞날에 반드시 득이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문제를 덮고 간다는 점에서 길게 봐선 양쪽 모두에 ‘독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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