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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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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막판 초치기, 돌아버린 돈돈돈!

등록 2007-12-14 00:00 수정 2020-05-03 04:25

복잡한 대입 노린 ‘입시컨설팅’ 30분에 60만원, 무허가 학원이 차린 2주 논술 캠프에 390만원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12월4일 오후 2시.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7개 사립대가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공동 입시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가 열린 경기여고 강당부터 학교 정문까지 약 100m에 걸쳐 학생과 학부모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논술학원, 입시컨설팅 학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전단지를 뿌리고 있어 더 북적였다. 조아무개(49·서울 당산동)씨는 전단지를 일일이 챙겨들었다. “아들이 재수생인데 수능을 평소보다 못 봤어요. 수능, 학생부, 논술 삼박자가 짝을 이뤄야 한다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컨설팅도 받아보고, 논술학원도 바꿔볼까 해요.”

이날 모여든 학부모와 학생들로 12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경기여고 강당은 꽉 찼다. 의자 자리는 설명회가 시작하기 15분 전부터 다 찼고, 의자에 앉을 수 없는 학부모들은 맨바닥에, 바닥 자리도 잡지 못한 이들은 통로를 빽빽이 채웠다. 설명회가 끝나자 고3 엄마들은 대학 입학처 관계자를 붙잡고 질문을 쏟아냈다. “저희 아이가 수능이 2-1-2-2(언어-수리-외국어-사회·과학 탐구) 등급이 나올 것 같아요. 문과인데 수학만 잘하는데 ㅅ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저희 아이는 1-2-2-2일 것 같아요. 논술로 뒤집을 수 있을까요?”

대학별·과별, 등급·반영 비율 다 달라

12월7일 2008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발표되면서 2008년 대학 입시도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대학 입학 정원의 50%를 뽑는 수시 전형은 합격자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고, 각 대학들은 12월20~26일에 정시 지원 원서를 접수한다. 그러나 올해 입시는 ‘최고의 입시전문가’ 고3 학부모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복잡하다.

가장 큰 이유는 올해 처음 도입되는 수능등급제 때문이다. ‘369점’ ‘387점’ 등 명확한 점수가 아니라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과학 탐구 네 영역에 대한 등급의 조합이 그 학생의 점수가 된다. 대학별로, 또 지원하는 학과별로 각 과목의 등급 간 점수차도, 반영 비율도 다 다르다. 여기에 논술 반영 비율, 내신성적 반영 비율까지 고려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내신·수능·논술이 최적의 조합을 이뤄 성적 대비 가장 ‘좋은 학교’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대학별 평가항목을 들여다봐야 한다.

고3 아이를 둔 박아무개(50·서울 논현동)씨는 “대학이 한두 개도 아니고 골치가 아프다”라며 “이러다 지원하는 데마다 다 떨어지지 않을까 겁도 나고, 객관적으로 우리 애보다 점수가 낮은 아이가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정만 성균관대 입학처 주임은 “요즘 매일 입학처로 상담·문의 전화가 폭주해 전에 없던 상담 창구를 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의 혼란도 크다. 황아무개(52) 중앙여고 진학지도주임은 “원래 진학지도는 지난해까지의 입시 결과를 토대로 하는데 지금은 자료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고, 평소에 학교 공부를 잘하던 학생과 못하던 학생이 비슷한 등급을 받기도 해서 지원할 학교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진학지도는 상위권보다 중하위권 학생들이 더 어렵다. 상위권 대학은 몇 안 되는데다, 정보도 많다. 현재 최상 등급인 ‘1111’ 등급인 학생은 전국에서 644명으로 0.11%에 불과하다. 그러나 등급이 내려올수록 학생 수가 많아진다. 박아무개 울산제일고 교사는 “중하위권 대학들은 정보도 많이 없다”라며 “대학들이 다 경쟁률이 높을 텐데 합격률이 지난해보다 많이 낮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시원 방에 고등학생이 더 많다

갈피를 못 잡는 이들이 찾는 것이 입시컨설팅이다. 이아무개(19·서울 일원동)군은 12월5일 현재 예약해놓은 ‘입시컨설팅’만 다섯 군데다. 50분에 30만원을 받고 지원 대학을 함께 찾아주는 ㄱ교육컨설팅, 15만원짜리 ㅈ학원, 10만원짜리 ㅊ학원 등에 예약을 해뒀다. 컨설팅료만 다 해서 80만원이다. 이 중 세 군데는 꼭 상담을 할 예정이고 나머지 두 군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약을 해뒀다. 이군은 “학교 선생님은 얼마나 정보를 갖고 있을지, 또 나에게 얼마나 신경써줄지 믿음이 안 간다”라며 “‘믿을 만하다’고 소문난 컨설팅 업체로부터 받는 게 수백 개 대학 중에서 내가 가고 싶고 갈 수 있는 대학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달아오른 입시컨설팅의 과열 조짐은 심상찮다. 이군이 예약했다는 ㄱ교육컨설팅은 이미 10월부터 예약이 꽉 차 더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 이런 컨설팅 업체들이 조기 마감되자 기존 학원들도 ‘5시간 분석 후 방문해서 상담해드립니다’는 등 학원마다의 전략으로 50분에 50만원, 30분에 60만원 등으로 가격을 높여서 예약을 받고 있다.

이미 성적이 확정된 ‘수능’은 과거지사다. 논술은 수능 등급을 보완해서 ‘뒤집기 한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 때문에 논술학원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ㅂ논술학원은 일주일에 세 번 수업한다. 한 달 수강료는 158만6천원. 여기에 일요일마다 3시간씩 하는 구술 면접 대비반 수업(28만원)까지 함께 들으면 학원비는 186만6천원이 된다. ㄱ논술학원도 서울대 정시반의 경우 언어· 수리 논술, 구술까지 모두 합해 169만원이다. 대치동 학원들은 대부분 한 회당(4시간 기준) 10만~14만원꼴로 학원비를 받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이정희 원장은 “지방에서는 아직 수강료 현실화가 안 돼서 회당 5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가격과 상관없이 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무조건 강남으로 가기 때문에 지방 논술학원은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허가받고 신고하고 하는 학원들 가격이 이 정도고, 소규모로 모아서 과외 형태로 하는 강사들의 경우 학생당 200만~300만원을 호가한다”고 덧붙였다.

강남 대치동 논술학원 밀집 지역 근처 고시원에는 빈방도 잘 없다. 12월6일부터 ㅁ학원에서 서울대 정시 논술 수업을 듣는 이아무개(20·부산 해운대구)군은 방을 구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학원에서 근처 16개 고시원의 위치와 전화번호가 적힌 간이 지도를 나눠줬다. 강씨는 차례로 전화했지만 “방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여덟 번째 전화한 ㄱ고시원에서 “빈방이 딱 하나 있다”고 했다. ㄱ고시원 주인은 “37개 방에 논술 공부하러 온 고등학생들이 일반인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레지던스 빌려 숙박 논술 캠프도

12월4일 밤 9시30분. 논술학원 밀집 지역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최아무개(19· 울산시 옥동)양은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최양은 11월26일에 서울로 올라와 ㅁ학원에서 연세·고려대 정시 논술 수업을 들으며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월·수·금은 학원에 가려고 고시원을 나오는데, 수업이 없는 날에는 꼼짝 않고 고시원에 박혀서 점심이나 저녁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답답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지만 이것도 한 달이면 끝나잖아요. 이후엔 내가 원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을 테니까 참아야죠”라고 말한다. 그는 “반에서 수능 잘 봐서 논술시험을 봐야 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올라왔다”며 “우리 반에서만도 6명 정도 서울에 올라온 걸로 안다”고 말했다. 최양은 올라온 친구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공부하러 왔는데 서로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대학이 내신을 무력화해”

최양과 같은 고시원에 있는 정아무개(19·울산시 남화동)양도 “수리논술은 지방에서 제대로 가르쳐주는 데가 없다”라며 “괜히 울산에서 미적대며 학교 다녔다가 서울애들 다 받는 논술 교육도 못 받고 대학 떨어지면 우리만 손해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본인이 원해서 고시원 생활을 하며 서울에서 논술 준비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학원비 97만~103만원, 고시원비 60만원, 그 외 생활비 30만여원까지 합해 서울에서 논술 준비로 각각 200만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괜히 지금 돈을 아꼈다가 나중에 재수하면 그게 더 손해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런 논술 사교육 ‘과열’ 현상 때문에 수강료 과잉 징수, 무허가 학원 난립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서울시교육청과 교육인적자원부는 11월29일부터 12월4일까지 닷새간 논술학원가 단속에 나섰다. 그 결과 조사 학원 35곳 중 21곳이 학원 수강료를 초과해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1곳은 강남에 있다. 서울시교육청 평생학습진흥과 관계자는 “시간당 3만원으로 신고하고 9만원까지 받은 학원들이 있었다”며 “210%가량 수강료를 높여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무허가 학원도 난립한다. 서울 대치동 휘문고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오면 3층짜리 허름한 건물에 현수막 하나만 덜렁 걸린 학원이 있다. 간판 대신 언제든지 떼고 자리를 뜰 수 있는 현수막만 붙어 있다. 이 학원은 2학기 수시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서울로 몰려오는 지난 7월에 문을 열었다. ‘논술 교육의 메카’라고 광고하는 것과 달리 학원은 학생 수가 2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이 학원의 장사는 ‘논술 캠프’에서 이뤄진다. 수시가 시작되기 전 ‘서울대 수시 캠프’ ‘연·고대 수시 캠프’ 등을 모집했다. ‘캠프’를 차린 학원은 강남의 레지던스를 빌려 학생들을 숙박시키면서 4박5일, 5박6일간 강의를 한다. 이 학원 심아무개 대표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최고의 환경인 호텔을 제공해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아껴 집중적으로 논술 공부를 시킨다”고 말했다. 심씨는 “논술 공부는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다”라며 “일주일 집중 교육으로 충분히 대학 합격이 가능하다”고 광고하기도 한다. 12월23일부터는 정시를 겨냥한 1~2주 장기 캠프도 실시한다. 이 학원의 공아무개 원장은 “비용은 220만원 선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미 정원이 다 찼다”고 말했다.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ㅇ논술아카데미도 정시반 캠프를 12월23일부터 모집 중이다. 가격은 390만원 선으로 이 학원 역시 학원 허가를 받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황아무개 논술학원 원장은 “허가받지 않은 학원들은 책임 있는 논술 강의를 하지 않고, 4박5일 가르치고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아 지방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올라온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건희 군산청소년문화의집 관장은 “논술은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촘촘하고 세밀한 교육이 필요한데, 공교육이 논술 교육을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한 채 사교육에서 암기력과 유형을 주입하는 형태로 논술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한다.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대표는 “올해 처음 도입되는 수능등급제가 논술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사교육 붐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이는 대학이 내신을 무력화하는 대입 전형을 실시하기 때문”이라고 대학을 비판했다. 생각이 아닌 ‘암기’만으로 이뤄지는 논술 교육은 ‘판박이 대학생’만을 낳을 뿐이다. ‘제대로 된 대학생’을 뽑기 위한 방법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등급제가 대혼란의 원흉?

줄세우기 완화되고 변별력 있지만 상위권 대학들이 무시해

올해 입시 대혼란의 원흉은 ‘수능등급제’로 낙인찍히는 분위기다. 12월7일 수능 성적표 발표를 보면, ‘수리 가’ 영역은 3점짜리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져 많은 학생들이 낙담하고 있다. 우려했던 수능등급제의 ‘구멍’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비판도 나온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3 수험생들도 “우리가 도장 찍히는 돼지고기 같은 기분이 든다”라며 “수능등급제가 사교육을 더 부추기니 꼭 비판해달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학부모들은 “두 개 틀린 우리 아이가 다섯 개 틀린 옆집 아이와 같은 등급이라니, 너무 변별력이 떨어지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수능등급제는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를 영역별로 총점이 아니라 등급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성적표에는 총점이나 백분율은 기록되지 않는다. 대신 백분율에 따라 1~9등급까지 등급이 구분된다. 상위 4%의 학생이 1등급, 상위 4~11%의 학생이 2등급, 상위 11~23%가 3등급, 상위 23~40%가 4등급, 상위 40~60%가 5등급, 상위 60~77%가 6등급, 상위 77~89%가 7등급, 상위 89~96%가 8등급, 상위 96~100%까지를 9등급으로 나타낸다. 0.1점 차이로 당락이 갈리던 예전에 비하면 오히려 학생들의 점수에 따른 줄세우기가 완화된다고 볼 수 있다. 네 과목을 9개의 등급으로 구분하면 6561가지의 조합이 나오고 이번 시험 결과를 보면 네 영역 모두 1등급인 학생은 전체의 0.11%, 세 영역(언어·수리·외국어)이 1등급인 학생은 전체의 0.75%로 변별력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학생들을 뽑는 대학이다.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상위권 대학 대부분이 정시모집 인원의 50%를 수능성적우수자별로 뽑는 수능성적 우선선발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수능성적 우선선발 전형이 아니더라도 이들 대학의 내신성적 실질 반영 비율은 내신 4등급 이하의 경우 0.53~1.5%로 현저히 낮다(전체 내신성적 실질 반영 비율 17.97~23.50%).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대표는 “이는 내신 등급이 1~4등급인 우수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내신 반영 비율을 줄이고 수능성적 줄세우기 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뜻이어서 수능등급제의 취지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는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상위 1%의 합격률과 상위 5%의 합격률이 같고, SAT 만점도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라며 “우리도 수능 점수를 학생 선발의 최소 기준으로 삼고 등급 제도를 잘 활용하는 등 더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 선발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운영이 잘못되면 그 제도는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수능등급제의 승패는 제도 운영에 달려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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