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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미군과 시민운동] “이와쿠니는 한국 평택과 마찬가지”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주일미군 재편계획에 따른 기지 확장에 반대 투쟁 하고있는 이와쿠니시

일본에는 오키나와부터 도쿄 인근까지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 역할을 하는 많은 미군기지가 있다. 주일미군은 전환과 재편의 시기를 맞고 있다. 미군기지가 있는 지역의 지방자치와 시민사회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미군기지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1월1~12일 일본을 방문해 미군기지 문제에 꾸준하고 끈질기게 대응하는 일본 풀뿌리 운동의 현주소를 살펴보았다. 이번 방문에는 군산미군기지피해상담소, 녹색연합, 평택평화센터,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이 참여했다. 편집자

▣ 글·사진 강상원 평택평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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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7일 일본 남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를 찾았다. 주일미군 재편계획에 맞서 시장과 시의원, 주민들의 투쟁이 한창인 곳이다. 야마구치현은 일본 우익세력의 정치적 고향이자, 주일미군 재편계획에 앞장섰던 아베 전 총리의 고향이기도 해 일본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정부 반대하자 지자체에 재정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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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일본 정부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주일미군 재편의 중심 사안이었던 이와쿠니 기지 확장에 대해 이와쿠니시가 주민투표를 하며 중앙정부의 계획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당시 주민투표는 민관 협의기구를 통해 실시된 것으로, 결과는 58.68% 투표율에 95%의 압도적인 반대로 나타났다. 반대는 예상된 것이었지만, 일본 지방선거의 평균 투표율이 30%대인 것에 견주면 참여율이 아주 높았다. 이 소식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에 전파됐다. 고이즈미 내각이 이끌던 일본 정부의 주일미군 재편계획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와쿠니 미군기지는 1938년 구 일본 해군의 비행장으로 건설됐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일 안전보장조약에 의해 주일미군의 기지가 됐다. 이곳은 미 해병대의 항공기지로 각종 전투기와 군용기의 이착륙에 따른 환경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비행기 낙하물에 의한 사고와 소음 등이 주민들의 일상을 위협했다. 주거 밀집지역과 기지가 붙어 있고 인구밀도가 높은 일본 가옥의 특성상 비행기에 의한 안전사고의 위험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수십 년 전부터 이와쿠니 기지의 이전을 요구해왔으며, 주민투표를 통해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주일미군의 재편계획을 보류하는 듯하면서 뒤에서는 ‘새로운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삭감하는 동시에 지역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압박과 회유’에 나선 것이다.

이와쿠니시에도 재정 압박이 가해졌다. 이와쿠니시는 구청사를 신청사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 초 49억엔(약 390억원)의 정부지원금 중 39억엔(약 310억원)이 내려오지 않아 공사는 파행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이와쿠니 기지 확장반대 운동을 주도해온 이하라 가쓰스케 현 시장은 지역 반대세력의 역공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의 토호나 자민당 계열 지역 정치인들이 이를 빌미로 그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조직적으로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하라 시장은 “기지 의존도가 높을수록 미군기지는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다”며 미군기지에 대한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돈으로 압박해오지만 결코 여기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기지로 인한 문제는 결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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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 이전·지역 개발’이란 거짓말

이와쿠니시의 미군기지를 놓고 일본 정부는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 주일미군 재편 논의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인 1992년, 미군기지 이전을 요구한 이와쿠니 시민들에게 일본 정부와 주일미군은 활주로를 바다 쪽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환영했다. 기지로 인한 생활피해가 줄어들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활주로 이전은 이와쿠니 기지의 확장과 강화 차원에서 진작에 준비돼 있던 계획이었다. 바다 쪽으로 활주로가 넓어지면서 접안시설의 수심은 15m 이상 깊어졌고, 웬만한 전투함은 물론 항공모함까지 드나들 수 있는 항만으로 바뀌었다. 항공모함까지 접안하게 되면서 전투기의 야간 이착륙 훈련(NLP)이 빈번하게 진행돼 주민 피해는 더욱 커졌다. 민원 해결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주일미군의 필요에 따라 일을 추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와쿠니 기지 확장과 함께 일본 정부는 아타고산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100ha가 넘는 부지에 1500가구 5600명의 인구를 유입하겠다는 신시가지 조성계획으로,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내세운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이 또한 거짓말이었다.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기지 확장을 위해 213ha에 달하는 해수면을 메울 토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지역개발 논리에 시민들은 동요했고 그 틈을 타 일본 정부는 순식간에 성토공사를 해치웠다. 이와쿠니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보던 아타고산은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지역개발 사업은 2000년부터 시작해 2009년까지 계획돼 있는데 지난 7년간 850억엔을 투자했으나 지금까지 251억엔의 적자가 발생했고 앞으로 얼마의 적자가 더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전투기 폭음이 점점 심해지는 ‘군사도시’를 찾아 들어올 주민들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이와쿠니시 자체 조사 결과 새로 이주해올 것이라던 1500가구 가운데 10~15%만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이 술렁이자 일본 정부는 올 1월 이곳을 주일미군의 주택지역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서둘러 발표했지만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꼴이었다.

인근 히로시마현까지 주민 저항 시작

야마구치현과 인근의 히로시마현까지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불붙어 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이들은 자치회를 통해 항의 성명을 내고 집회를 열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인 히로시마현의 미야지마 신사가 전투기 위협에 시달리면서 사람들의 ‘공분’은 급격히 확산됐다. 이와쿠니 전투기 부대 확장계획은 미야지마 신사 쪽으로 전투기 이착륙을 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하라 시장과 함께 이와쿠니 미군기지 찬반 투표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다무라 준겐(54) 시의원은 끝까지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을 하겠다고 했다. “미군기지의 이전과 확대는 거짓과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한국의 평택과 마찬가지다. 지금 힘겹지만 시민들은 불의에 맞서고 있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는 이와쿠니에서만은 관철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쿠니시의 미래는 정부가 좌우할 수 없다. 오직 이와쿠니 시민들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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