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영향을 많이 받는 세대적 특성 그대로… 모바일·캠퍼스에선 이명박 독주 아닌 ‘방황’ 보여줘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11월27일, 공식 선거운동 첫날. 서울 명동 거리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선거 유세가 시작됐다. 주황색 점퍼 물결이 가사를 바꾼 트로트 가요와 함께 거리를 채웠다. 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나온 선거운동원과 지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구호를 외쳤다.
2002년에는 세대의 독자적 판단 이뤄져
대부분의 선거 유세장이 그렇듯 모여든 사람은 대개 40~50대 아주머니·아저씨들이다. 그러나 중장년 유권자들 사이로 아직 앳된 얼굴의 20대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영하 1도의 겨울 날씨. 흰 털장갑을 나눠낀 두 학생이 꼼꼼하게 유세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지지 발언을 하는 한명숙 공동선대위원장과 박영선 의원의 이야기도 귀담아듣는 눈치다.
선거 유세도, 선거도 처음이라는 김혜림(20)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다. 김씨는 “파고 파고 또 파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 “BBK·위장취업 등 논란이 자꾸 터지니까 지금은 누굴 뽑을지 고민이에요. 명동에 놀러왔는데, 마침 유세를 하기에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보려고요.” 옆에 서 있던 친구 권하진(20)씨도 “첫 여성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했는데,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씨가 떨어지고 나서는 뽑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라고 거들었다.
2007년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2002년 대선과 달리 800만 명에 달하는 20대 유권자의 움직임은 잠잠하다. 이들은 누구를 지지할까.
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를 보면, 20대가 가장 많이 지지하는 후보는 이명박 후보로 나타났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정동영 후보로 대선 주자를 확정한 지 이틀 뒤인 10월17일 실시한 조사에서 20대의 절반이 넘는 51.7%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이명박 후보의 높은 지지도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 선언 직후인 11월10일 여론조사에서 37.6%로 떨어진다. 이명박 후보 지지층에서 빠져나온 13%는 대부분 이회창 후보에게로 옮겨갔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20대 유권자들의 ‘방황’은 그들의 부모 세대인 40·50대 유권자의 움직임과 비슷하다(표 참조).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2002년에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미선·효순이 사망 사건 등의 영향으로 20대가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지지자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20대의 선택이나 행동을 견인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며 “그래서 이번 대선은 부모 세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 20대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 아직까지 20·50 동조화 현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이 좀더 정확히 반영
실제로 대학생인 박차준(24)씨는 “아직 후보를 결정한 건 아니지만, 이명박 아니면 이회창 후보를 생각 중이에요. 당장 취업이 급하니 이명박을 찍으려 했던 것도 있고, 엄마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영업·판매 업무를 맡고 있는 이영욱(27)씨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이념 논쟁이 치열한데, 솔직히 당장 급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서울시장 하면서 그가 보여준 청계천 복원, 버스중앙차선제 같은 경제적 창출효과 때문에 이명박 후보가 ‘말하면 지킨다’고 믿어요. 도덕성이 좋지 않더라도 도덕성이 우리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20대의 보수화나 20·50 동조화 현상을 2007년의 ‘20대 표심’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고민하는’ 20대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11월28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구성원들이 모여 난타 공연을 하며 ‘이명박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캠코더를 들고 유세 현장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한나라당 선대위 2030기획팀에서 일하는 정아무개씨(25)였다. 20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선거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정씨의 주된 임무다. 그는 매일같이 2030팀이 진행하는 대학가 유세를 도맡으며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만큼 바삐 움직이고 있다. 2005년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이명박 후보를 불도저라고 하는데, 예전에 대학 강연회에서 강연을 듣고 청계천 건설을 위해 상인들을 4천 번 만났다는 얘기 등에 감동받았다”며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게 정말 다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 끝무렵에 그는 속내도 털어놓았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BBK 의혹이 모두 진실로 드러나고, 이명박 후보의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면 굉장히 실망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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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를 통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1월8~9일 엠비존씨엔씨와 문화방송 이 휴대전화를 통해 ‘대선 때 지지하는 후보’를 물었다. 그 결과 20대는 나름대로 독자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이명박 후보 지지율은 28.4%로 부모 세대인 50대(43.1%)에 비해 15%포인트가량 낮았다. 허춘호 엠비존씨엔씨 대표는 “낮에 집에 있는 20대라면 사실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고, 그럴수록 보수적인 경향을 띠기 마련이다”라며 “모바일 여론조사가 20대의 정서를 좀더 정확히 반영한 수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캠퍼스 절반, “결정하지 못했다”
캠퍼스 민심은 어떨까. 은 연세대, 한양대, 광운대 등 서울 시내에 위치한 3개 대학 도서관과 강의실에서 각각 100여 명씩 302명에게 ‘대선 때 지지하는 후보’를 물었다. 그 결과 절반에 가까운 145명(48.0%)이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이명박 후보 지지는 80명으로 26%에 그쳤다. 모바일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하다. 16.2%에 해당하는 49명의 학생은 최근 한 달 사이에 지지 후보를 바꿨다. 지지 후보를 바꾼 이들 가운데 63.3%에 해당하는 31명이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비리 사건에 실망했다’며 이명박 후보를 떠나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이 결과는 ‘투표할 곳을 찾지 못하는 20대의 혼돈’을 보여주는 사례다.
20대가 혼돈 속에 마냥 넋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대학생기자연합, 2007 대선승리! 대학생 정치참여운동본부, 사회체험연합동아리 ‘대학희망’,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이명박대학생팬클럽 UMB, 대학생 정치참여위원회 등 6개 단체는 “20대만을 위한 대선 후보의 토론회가 필요하다”며 12월12일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김선경 대학희망 대표는 “20대도 참여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후보를 찾아 투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삼성SDI 사내하청기업 하이비트에서 지난 3월 해고된 이미연(26)씨. 삼성 본사에 ‘부당한 비정규직 해고 철회’를 주장하기 위해 지난 11월16일 서울로 올라왔다. 이씨는 “그동안 부산에서 살았고, 제가 비정규직이었지만 부산 정서대로 한나라당을 지지했고, 이회창씨를 지지했어요. 근데 이번에 해고되면서 ‘비정규직 법안’을 알게 됐고, 지금은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게 됐어요. 저에게 필요한 투표가 뭔지 알았거든요.” 민주노동당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이씨는 지금도 여전히 ‘민노당’이 어색하다. 하지만 그는 ‘투표가 삶의 조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매일 삼성 본관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잔치 될 수 있을까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지금 한국 사회는 혼돈과 양극화의 한가운데에 있고, 20대들은 더욱 그렇다”라고 말했다. 궁핍과 배고픔을 겪지 못했던 이들이 외환위기 이후 무한경쟁을 거쳐 자립해야 함에 따라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노명우 교수는 “어쩌면 많은 20대가 ‘성공’에 집착하는 것은 그런 사회적 성장 배경 때문”이라며 “지금 이 혼돈을 고립된 자신만의 ‘플래너’에 의존해 헤쳐나갈지, 아니면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으로 집단적으로 헤쳐나갈지 선택은 20대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선거는 잔치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그들만의 잔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번 선거. 20대는 과연 이번 선거를 ‘우리들의 잔치’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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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다 보면 비중과 상관없이 유독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다. 최근 42개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지지 선언 기사가 그랬다.
“오로지 땀과 맨주먹 하나로 일어선 사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여 자아를 실현한 사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겨도 강한 추진력으로 해내는 지도자, 그가 바로 이명박 후보이다.”
42명의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내놓은 선언문의 핵심 내용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름 석 자만 가린다면 초등학생용 만화 위인전의 발문으로도 손색이 없다.
솔직히 매우 궁금했고, 한편으로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대선을 앞두고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해 이처럼 노골적으로 파격적 헌사를 바치는 42명 총학생회장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것이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는 대학의 현주소인가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 후보 지지 선언은 어설픈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지지 선언 명단에 포함된 상당수는 지지 선언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최강식 경상대 총학생회장은 11월28일 과의 전화통화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주변의 모 대학 총학생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밝힌 것뿐인데 지지 선언 명단에 포함됐다”며 “공식적으로 지지 선언을 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영동대 유준석 학생회장 쪽에서도 “지지 선언을 한 사실이 없고,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도록 허락한 적도 없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9명의 총학생회장이 지지 명단에 포함된 한국폴리텍대학연합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
자발적으로 서명한 총학생회장들 역시, 논란이 확산되자 총학생회 등 대학 구성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슬그머니 발을 뺐다. 총학생회장 자격으로 지지한 것이 아닌데도 ‘총학생회장’이란 직함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같은 보수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뉴라이트대학생연합의 최재동 상임대표(연세대 대학원·정치학)는 “학생들의 투표로 뽑힌 총학생회장이라면 행동을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지지 선언에 참여한 총학생회장들이 그런 고민을 충분히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가지 더. 이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요구한 것은 ‘취업 문제 해결’이었다. 이번 지지 선언을 주도한 김영태 경남대 총학생회장은 “요즘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당면한 최대 고민은 취업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적 의사 표현에는 지원해주고 지원받아야 하는 관계가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도 덧붙였다.
‘거래’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이들이 선택한 거래의 대상은 과연 적절했을까. 참고로 이명박 후보는 지난 9월12일 충남 목원대 취업박람회 현장에서 열린 대전·충남 지역 대학생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눈높이’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한 학생이 청년실업 대책을 묻자 이 후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들이 눈을 조금 아래로 낮추면 아직도 일자리는 많다.” “좋은 일자리를 잡아야 여자친구, 남자친구 보기에 좋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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