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누구 뽑을지 대략난감ㅡ.ㅡ;

등록 2007-12-05 00:00 수정 2020-05-03 04:25

20대 4인의 메신저 토크… 세금 줄이는 이명박이냐, 아예 백지투표를 할 것이냐

▣ 정리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선자’를 만든 데는 20대의 힘이 컸다.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희망을, 그리고 열정을 좇던 ‘20대’는 어디쯤 있을까. 11월28일 밤 10시, 네 명의 20대가 온라인 메신저에서 만났다. 주제는 대선. “도대체 뽑을 사람이 없다”는 푸념부터 “세금을 줄여줄 이명박이 좋다”는 커밍아웃까지. 그들의 솔직담백 톡톡톡~.

세계평화: 드라마 도 포기하고 오늘 대화 참석. 이번 선거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 누구를 뽑을지 해답 좀 주삼.

고단한 88만원(이하 88만원): 이번이 처음 하는 대선인데 대략 난감ㅡ.ㅡ; 후보가 무려 12명인데 당최 찍을 사람이 없어요. 이명박이 정말 경제를 살리면 다행이지만 부자들 배만 더 불릴 것 같아요.

20대에게 비전 제시하는 사람 드물어요

박이형 화이륑(이하 화이륑): 전 그래도 이명박이에요. 여당도 실망스럽고, 샐러리맨이니 세금을 줄여준다는 정당을 밀랍니다. 경영인 출신이니 나라 살림도 잘할 것 같아요. 직장인 해보면 알겠지만 ‘맨땅에서 최고경영자(CEO) 되기’ 힘들어요.

시골소년 돈 좀 벌자(이하 시골소년): 후보가 너무 많아요. 후보들을 다 아세요?

세계평화: 주요 정당 후보는 알죠. 우리의 허경영님도ㅎㅎ 결혼하면 5천만원에 아파트 입주권까지. 총수님처럼 20대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드물어요ㅋㅋ

시골소년: 계약결혼이 늘지 않을까~.

화이륑: 명박이 형님도 신혼부부를 위해 주택 12만 채를 짓는다고 했어요. 허 후보가 실천력 검증되지 않았다면, 이 후보는 한다면 하잖아요. 좀 걸리는 건 도덕성이에요. 근데 우리나라 지도층 원래 그렇지 않아요? 어차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나> -_-;

세계평화: 정치인에게 ‘도덕성’이 조금 걸리는 것에 불과해요? 어떻게 명백한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거대 비리가 ‘조금 걸린다’로 표현이 돼요? 그 의식이 솔직히 무섭삼.

시골소년: 저도 첨엔 이명박 괜찮았어요. 근데 좀전 뉴스에도 나왔지만, 인감이랑 이면계약서 모두 사실이잖아요. 거짓말도 한두 번이지, 삼세번은 좀 심했다 싶어요. 차라리 이회창 후보가 나아 보여요.

화이륑: 정치인에게 일반인보다 뛰어난 도덕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도덕성과 별개로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고 다수의 이익을 내면 되죠. 그게 현실이에요. 현실을 무시하고 도덕성만 뛰어난 후보를 뽑았다간, 우리나라 앞날 깜깜. 솔직히 서울이 홍콩, 도쿄, 뉴욕과 경쟁하려면 이명박 후보의 추진력이 필요해요.

세계평화: 도덕성은 필요 없고 경영만 잘하면 된다? 전 그 발언 반댈세. 국가가 기업인가? 요즘은 기업도 도덕성이 필요해요.

88만원: CEO 리더십에 대한 맹신도 싫어요.

세계평화: 솔직히 친구들과 얘기하면 화이륑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근데 그 친구들이 그렇게 된 것도 다 ‘경쟁’에 내몰려서 그런 것 같아요.

88만원: 어쩌면 우리는 ‘경쟁’ 때문에 정작 어른이 될 기회를 놓쳤는지도. 좋은 학교 가려고 공부만 열심히 했고, 또 좋은 직장 가려고 토익·인턴·학점에 몰두. 자립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어요. 애들이랑 지나가다가 ‘외국은 20살에 독립하지 않으면 창피한 일이라던데 우리는 집값, 생활비, 학비 등 알바로는 안 되니 독립은커녕 나중에 결혼이나 할 수 있겠냐’고 말했어요. 애들은 그냥 ‘그래도 난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사는 게 좋아’라며 농담 따먹기만 하고. 답답해요.

세계평화: 헐~ 경쟁이라. 첨 취업할 때 저도 엄청 고단. 서류나 면접에서 막 떨어지지, 취업률은 최악이라고 뉴스가 떠들지. 주변에서 더 안달복달하지. 딱 머리가 하얗게 새는 심정이랄까.

화이륑: 저도 캐나다 가서 1년 백수 하다가 돌아오니 지난해 6월. 오자마자 토익 준비 몇 개월 하고 이력서 수십 개 날리고 맘고생 하다가 지난해 이맘때쯤 맘이 편해졌네요^^

88만원: 전 어머니가 아프셔서 어쩌다 보니 가장이 됐어요. 4학년 졸업반인데 어깨가 더 무거워졌죠, 뭐. 빨리 취업해야지.─.ㅜ; 이상한 건, 무상 의료를 주장하는 건 민주노동당인데 권영길 후보를 찍을 수가 없다는 거. 아마 민노당 경선에서 심상정 의원이 됐다면 민노당 찍었을 수도.

화이륑: 민노당 공약은 세금 많이 걷는 건데, 저 같은 샐러리맨은 안 좋아해요.

세계평화: 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선거 후보 고르기가 어려워요. 제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저는 열심히 따져보고 판단해서 김민석을 찍었는데 그가 저에게 상처를 줬어요. 여기저기 붙어서 야합이나 하고. 내 판단이 이것밖에 안 되나, 정책을 따져서 뭐하나 하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어요.

샐러리맨은 세금 많이 걷는 민노당 안 좋아해요

88만원: 희망을 주는 후보가 안 보여요. 정책 살펴보면 뭐해요? 실현을 안 하잖아요. 후보들이 정책을 만들 때 진짜 하려고 한 건지 의심스러워요. 추상적이고 포장만 번지르르. 당이 자주 바뀌고 없어져서 책임을 물을 수도 없어요, 참나.

세계평화: 그러니까. 내가 뭣 땜에 대통령 뽑는다고 사서 고민하나, 회의가 들 정도로 무책임한 공약 남발.

시골소년: 저한테도 2002년 대선이 상처라면 상처. 굉장히 희망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는데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게 없어요.

화이륑: 전 2002년엔 기권했어요. 그냥 피곤해서. 이번엔 만화 를 보고 투표의 중요성을 깨달았는데, 기준은 과거 실적입니다. 콩트의 실증주의를 신봉해요, 전. 우하하.

세계평화: 어떤 실적이오? 청계천?

88만원: 제가 볼 땐 청계천이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시골소년: 지금 청계천이 한 해에 보수 공사비로 300억을 넘게 쓴다고요. 그거 다 세금에서 나가죠.

세계평화: 게다가 청계천에 퍼붓는 수도세는 모두 수도공사가 부담한다구욧.

88만원: 아무튼 2002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노무현 말고 다른 사람을 찍을 것 같진 않아요. 지금도 진통쯤으로 봐야지. 개혁세력이 반성해야 할 과제가 명확해졌다고 할까요.

박정희식 모델이 통할까요

세계평화: 이번에 몇몇 대학의 총학생회장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플라타너스를 보며 박정희를 그리워했다던 몇 년 전 소개팅남이 떠올라요. 우린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현실이 조금만 힘들어도 바로 미화된 과거로 숨어버려요. 그 소개팅남이 딱 그랬어요.

88만원: ‘경제발전=성장’이라는 개념이나 박정희식 모델이 아직도 통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는 거 같아요.

세계평화: 한 사람에 의해서 정책이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화이륑: 정국이 시끄러울 땐 한 사람의 독재자가 나은 경우도 있지요.

세계평화: 선진사회로 갈수록 갖춰진 시스템으로 국정이 운영되죠.

화이륑: 그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리더겠죠.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리더고요. 경제가 성장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88만원: 지금은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양극화예요. 지표가 성장했다고 모두가 잘사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얼마인 줄은 아시남?

시골소년: 꼭 돈을 많이 버는 게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88만원: 암튼, 대선이 코앞인 지금 희망도 기대도 없어요.

세계평화: 차라리 백지투표를 할까봐요. 투표는 하지만 뽑을 사람이 없다고요. 답답.

화이륑: 글쎄요, 전 아직 희망을 걸고 있어서. 이번에 뽑은 그가 실망을 준다면 저도 담에는 그럴 수 있겠죠.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