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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서 제주 해군기지를 빼라”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천주교 주교회의와 녹색연합·민주노동당 등 잇단 기자회견 “건설 강행 반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지난 9월16일 제주도는 물폭탄에 수장됐다. 제11호 태풍 나리의 위력이었다.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도 예외없이 난타를 당했다. 화훼와 감귤 시설재배를 주로 하는 주민의 70~80%가 침수피해를 당했다.

수해는 강정마을에 뜻밖의 ‘선물’을 남기고 갔다. 해군기지 유치 문제를 두고 찬반으로 갈려 대치해온 마을 주민들이 수해 복구에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온 게다. 하지만 ‘기이한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양홍찬 강정해군기지 유치반대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달포 남짓 복구작업을 벌이는 사이 ‘잠복기’에 들어갔던 해군기지 문제가 10월 말부터 다시 주민을 갈라놓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부 ‘일방통행’ 제주도 ‘밀어붙이기’

강정마을 민심을 더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찬성 쪽 주민들은 “해군이 수해 복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주민 75%가 기지 유치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 4월 ‘약식’ 마을총회를 거쳐 기지 유치 신청서를 내고 해군기지 찬성운동을 주도해온 윤태정 마을회장은 8월 초 주민총회를 통해 해임됐다. 이어 같은 달 말 강동균 새 마을회장 주도로 주민투표를 치러, 압도적 표차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의사를 거듭 밝혔다. 그럼에도 분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주민 여론을 무시한 채 기지 건설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일방통행’과 개발 논리를 앞세운 제주도 당국의 ‘밀어붙이기’ 탓이다.

국방부는 2008년도 예산안에 ‘국방 부문 방위력개선 프로그램 함정사업 해군부대 시설사업’ 몫으로 모두 324억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게다. 이에 발맞춰 김태환 제주도지사도 11월 말까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국방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나리가 할퀴고 간 상처를 딛고 일어선 강정마을이 또다시 해군기지란 초특급 태풍 앞에 선 게다.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가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여러 차례 ‘주민 동의’를 얻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지금 제주에선 해당 마을 주민들의 반대 의사조차 무시한 채 해군기지 건설계획이 밀어붙이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11월8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배영호 신부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발언에 나섰다. 한국 가톨릭 교계를 이끄는 지도부인 주교회의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대한 공식 의견을 내놓은 셈이다. 배 신부는 “평화는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회의 가르침과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는 뜻으로 정부와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을 무리하게 강행하지 말 것을 촉구해왔다”며 “국회에서 심의 중인 2008년도 예산안에 포함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산 324억원은 전액 삭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천주교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위원장 김창훈 총대리 신부)가 나서 전국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벌인 제주 해군기지 반대 서명운동엔 이미 47만여 명이 참여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서명 용지가 6개의 상자에 나눠담겨 회견장 중앙에 놓였다. 제주교구 사목국장 고병수 신부는 “연말까지 100만 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정치권이)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땐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에서 응당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강정 앞바다서 멸종위기종 관찰 돼

주민들이 강조해온 강정마을의 ‘생태적 가치’도 환경단체의 실태조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녹색연합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은 11월9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7월 말~8월 초 강정 앞바다에서 수중 조사를 벌인 결과, 환경부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따라 지정한 멸종위기보호 2급인 금빛나팔돌산호와 멸종위기종 1급인 나팔고둥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2000년 강정 앞바다 범섬·문섬 일대가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됐고, 2004년엔 이 지역 연산호 군락지가 ‘천연기념물 제442호 등 보호구역’으로 설정됐다. 기지 건설을 위해 해군의 계획대로 8만5천 평 매립작업에 나설 경우 생태계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거는 게 국회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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