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구조를 완성한 1998년 거래… 한날한시에 전·현직 임원 35명이 헐값 양도한 건 실명 전환이라서?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굿모닝신한증권 도곡지점의 삼성전자 6071주(2004년 10월 당시 시가 26억원 상당).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내용 중 눈길을 끄는 주식 계좌다. 삼성이 예금 계좌뿐 아니라 주식 형태로도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차명계좌와 관련해 김 변호사는 11월8일 1라디오에 출연해 “간혹 (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자금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서 일부 반씩은 준다든지 하면서 해결되는 과정에 내가 관여했기 때문에 내용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차명 주식 보유와 관련해 ‘삼성생명 주식’에 새삼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삼성생명 및 계열사 전·현직 임원들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지분을 둘러싼 의혹은 이미 1999년에 제기된 바 있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98년 12월3일,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및 계열사의 전·현직 임원 35명으로부터 삼성생명 주식 299만5200주를 취득했다. 같은 날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에버랜드도 마찬가지로 삼성의 전·현직 임원들에게서 삼성생명 주식 344만 주를 전격 매입했다. 전·현직 임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을 모두 끌어모아(?) 사들인 이날 거래로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10%에서 26%로,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은 2.25%에서 20.67%로 증가했다. 당시 주식 거래를 통해 ‘이재용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완성됐고, 에버랜드가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가 되면서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작업도 완결되었다.
김용철 변호사 “주식도 비자금 은닉 수단”
이날의 갑작스런 주식 거래와 관련해 1999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생명이 주식 소유 현황을 허위 신고했다”며 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삼성생명이 주요 주주 주식 변동 현황을 제출할 때 이 부분을 통째로 누락 신고한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공정위는 당시 “여러 정황에 비추어 이 행위를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삼성의 전·현직 임원 35명이 갖고 있던 주식의 성격(주식 취득 경위와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당시 임원들이 갖고 있던 주식이 △위장 분산된 이건희 회장의 상속 지분일 가능성(이병철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 주식이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삼성 임원들에게 차명으로 분산돼 있다가 이 회장 이름으로 실명 전환) △계열사에서 조성한 그룹 비자금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물론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의혹만 증폭되었다.
35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과연 주식 실소유주냐를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에버랜드의 2000년 3월 사업보고서를 보면, 348억1900만원을 투자해 삼성생명 주식 386만860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주당 정확히 9천원에 사들인 것이다. 이 회장의 경우 임원들로부터 주당 얼마에 취득했는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같은 날 양수·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역시 주당 9천원에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로부터 불과 7개월 뒤에 이 회장이 삼성차 채권단에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400만 주를 사재 출연(삼성자동차 손실 보전 명목)하겠다고 발표할 때 삼성생명의 주당 가치를 70만원이라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주당 70만원짜리 주식을 주당 단돈 9천원에 판 행위를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그것도 35명이 이 회장과 삼성에버랜드에 판 주식은 총 640만 주에 이르고, 1인당 주식만 봐도 무려 12만∼37만 주에 달했다. 아무리 지배주주 일가가 요구했다고 하더라도 1인당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포기하고 주당 9천원이란 헐값에 판 이유가 뭘까?
특별상여금 형식 지분이라는 설도
2004년 국정감사 때 국세청은 대규모 주식 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삼성 임원들이 납부했느냐는 질의에 대해 “개별 납세자료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 쪽은 비상장기업 주가산정 방식에 따라 삼성생명 주식가치를 계산하면 9천원 이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이 특별상여금 형식으로 삼성생명 지분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1999년 6월 삼일회계법인은 삼성생명 주식의 순자산가치를 주당 20만원이 넘는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삼성 임원 35명이 순자산가치의 2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에 자기 주식을 판, 지극히 비합리적인 행위를 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삼성생명은 1996∼2001년까지 해마다 주주들에게 주당 500원∼1천원(배당률 10∼20%)의 배당금을 줬다. 은행 예금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배당금을 받고 있는 주식을 주당 9천원에 팔았다는 점도 당시의 대규모 지분 변동이 실제 거래가 아니라 차명주식이 실명으로 전환됐을 뿐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특히 35명 중 퇴직한 임원도 여럿인데 어떻게 임원들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을 한날한시에 모두 불러모아 매입할 수 있었을까? 이 역시 ‘명의신탁된 주식’이란 의혹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생명 주식 보유 현황에 대한 당시 금융감독원 자료(1994·1999년)를 보자. 1994년 1월, 이 회장을 빼고 삼성생명 주식을 2% 이상 보유한 사람은 이종기(5%)·이수빈(4%)·강진구(3%) 3명이었고, 1∼2%를 보유한 개인 주요 주주는 신훈철·소병해·이명환·황선두·송세창·이형도 등 20명이었다. 이 밖에 소액주주 26명이 334만 주(17.8%)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8년 12월 수상한(?) 대규모 주식 거래가 있은 뒤인 99년 6월 말 삼성생명 주식 개인 보유자를 보면, 94년 당시 지분이 1∼2%였던 20명 가운데 홍종만·이해규(각 1.67%), 김헌출·현명관(각 1.5%), 이형도(1.33%) 외에 나머지 15명이 모두 보유지분 전체를 팔아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기타 소액주주의 보유지분도 49만 주(2.67%)로 줄었다. 이 15명에다 소액주주 26명 중 일부를 합쳐 총 35명의 삼성생명 전·현직 임원 및 계열사 임원들이 1998년 12월에 문제의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1994년 당시 2% 이상 지분을 갖고 있던 이종기·이수빈· 강진구 등은 99년에도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건 지분을 매각한 35명 가운데 37만4400주 보유자가 3명, 31만2천 주 보유자가 3명, 28만800주 보유자가 2명, 18만7200주 보유자가 3명, 15만6천 주 보유자가 9명, 12만4800주 보유자가 4명이란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소유 주식 수가 똑같은 임원이 여럿임을 알 수 있다. 임원들의 보유지분이 개인 투자 목적이었다면 어떻게 여러 명이 똑같은 주식 수를 보유하고 있었을까?
똑같은 수를 보유한 사람이 여러 명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전 그룹 비서실장)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28만8천 주를 둘러싼 소문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소문은 1998년 12월의 수상한 주식 거래 당시 삼성생명 주식지분이 2% 이하였던 대다수 임원들은 주식을 9천원에 팔았는데 유독 현 전 회장만 팔지 않고 지금까지 들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삼성 쪽과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삼성생명 주식의 전·현직 임원 차명 보유 의혹은 2006년 10월 이종기 삼성화재 전 회장(고 이병철 회장의 사위이자 이건희 회장의 매형)이 타계한 뒤에도 잠깐 터져나왔다. 이종기 전 회장은 세상을 뜬 뒤 자신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 4.68%(93만5천여 주)를 삼성생명공익재단에 증여했는데, 이 사회환원액은 삼성생명의 당시 장외 시세(56만7500원)로 계산할 때 53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고, 개인 기부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삼성 쪽은 이런 좋은 일을 공식 발표 없이 조용히 처리했고, 금융감독위원회에도 지분 증여자를 명시하지 않은 채 신고했다. 왜 그랬을까?
35명의 임원들이 주식 실소유자라면 무려 640만 주나 되는 삼성생명 주식을 어떻게 보유하게 된 것일까. 1998년 말 당시까지 삼성생명에서는 스톡옵션이 제공되지 않았고, 우리사주조합을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도 없었다. 물론 삼성생명 설립 이후 1970∼80년대에 기존 주주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가 네 차례 있었고, 80∼90년대에 대규모 무상증자가 두 차례 있었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연구팀장은 “삼성생명이 비상장기업이므로 유상증자할 때 (기존 주요 주주인) 계열사들이 의도적으로 주식 인수를 포기(실권)하고 이것을 임직원들이 떠안는 식으로 주식을 가졌을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임원들에게 회삿돈으로 구입 자금을 대출해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명주식 형태로 숨겨져 있던 계열사 비자금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전 회장에게서 상속받은 지분을 차명으로 위장해 뒀던 것이라면 △상속세(상속액의 50%) 혹은 양도세를 피하기 위한 목적 △막대한 주식 배당금에 대한 금융소득 누진과세 회피 목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문경영인 주식부자 많은 그룹
지난 2001년 3월 삼성생명 주식 지분을 보면, 소액주주(개인) 969명의 지분은 2.13%에 불과하고, 대주주와 특수관계에 있는 기타 주주(개인) 총 11명이 503만 주(25.13%)를 보유하고 있었다. 1998년 12월 임원 35명이 지분 34.42%를 이 회장과 에버랜드에 팔아넘겼음에도 삼성과 특수관계에 있는 개인 11명이 2년 뒤에도 여전히 25%에 이르는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이 발간한 ‘비상장기업분석 2007’에 따르면 전문경영인 주식부자 상위 5명을 모두 삼성그룹에서 차지했다. 삼성생명을 포함한 삼성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삼성 임원들이 대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오너 일가가 지분 대부분을 보유한 롯데그룹 등과 뚜렷이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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