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각자의 ‘자강’에 힘쓰는 추세, 곧 닥칠 총선을 포기하면서까지 몸을 던질까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정동영 후보로서는 억울할 법한 결과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을 치르자마자 언론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정동영이라는 이름 뒤에 ‘후보단일화’ 꼬리표를 붙여줬다. 원내 제1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음에도 여전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유일 대항마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신당이 ‘중통합’ 상태에서 출발했기에…
경선 직후 만난 정 후보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몇몇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정동영 후보의 상승세를 차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후보단일화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며 흥분했다. 경선 효과를 누려야 할 시기에 일부 언론이 이를 막고 있다는 것이 정 후보 캠프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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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후보 쪽의 불만과 상관없이, 후보단일화 요구는 정동영 후보가 맞닥뜨리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문국현이라는 제3후보가 통합신당이 경선에 돌입하기 전부터 이미 장외에 진지를 구축해놓은 상태였다. 시간에 쫓긴 나머지 민주당 본진을 모두 아우르는 완벽한 대통합이 아니라 ‘중통합’ 상태에서 통합신당을 출범한 것도 단일화 압박의 빌미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50%를 오르내리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에 견줘 정 후보의 지지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불안감을 느끼는 범여권 지지층에서 ‘뭉쳐야 한다’는 주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대선의 역사는 곧 선거연합의 역사였다는 사실도 후보단일화 요구를 뒷받침하고 있다. 1987년 대선에서는 민주세력이 DJ와 YS로 분열되는 바람에 노태우 후보에게 승리를 선사했다. 이후 세 차례의 대선에서는 모두 선거연합을 성사시킨 세력이 승리했다.
범여권 지지층은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후보단일화를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고 있지만 단일화에 이르는 길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시간이 없다. 1997년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DJP연합을 성사시킨 김대중·김종필은 대선 직전까지 1년이 넘게 협상을 계속해왔다. 협상을 통해 두 사람은 내각제 개헌과 권력 분점을 중심으로 하는 장문의 단일화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그렇게 꼼꼼히 준비한 DJP연합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와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 동의안 통과로 2001년 9월 깨지고 말았다. 그나마 DJP연합은 준비 과정이나 결과 모두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노·몽 단일화’ 역시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이뤄졌다. 준비 기간도 DJP연합에 비해 매우 짧았다. 여론조사로 단일 후보를 결정한 노·몽 단일화는 대선 하루 전에 정몽준 의원이 공조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준비 과정이 부실했기 때문에 벌어진 부작용이었다.
시간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단일화의 대상인 정동영, 문국현 후보 쪽에서는 단일화 협상보다 우선 ‘자강’(自强)에 힘쓰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통합신당 소속의 한 의원은 “문국현 후보는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상태”라고 전제한 뒤 “손학규, 이해찬 후보 쪽에서도 대선까지는 일단 정동영 후보를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추진 세력도 뚜렷하지 않아
민병두 의원 역시 “후보단일화 논의에 앞서 우선 정 후보의 지지율을 20% 중·후반대로 끌어올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기만 하면 (후보단일화 논의를 포함한) 선거 구도가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 캠프에서도 단일화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비전과 가치관을 함께할 수 있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를 주도할 만한 그룹이 없다는 것도 단일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2002년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여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른바 ‘후단협’의 단일화 압박도 상당 부분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단협 세력은 대선 직후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멸됐다. 김원길·박상규·원유철 전 의원은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겨갔고, 열린우리당으로 건너온 김덕배·송석찬·설송웅·송영진 전 의원 등은 아예 출마를 포기했다.
게다가 이번 대선 직후에는 곧바로 총선이 치러진다. 후단협의 몰락이라는 선례가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일화를 위해 몸을 던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보단일화에 대한 명분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도 과제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태우, 김종필 등이 합작한 3당 합당은 민주세력과 수구·기득권 세력의 합작품이었다. 1997년 DJP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시 이질적 세력의 연합이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개혁·진보 진영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운이 남는 ‘중도적 진보주의’
과거 두 차례나 ‘반한나라당’을 단일화의 명분으로 삼았던 만큼 이번에도 똑같은 명분을 내세운다면, 단일화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정동영 후보가 자신의 정책 노선으로 중도적 진보주의를 강조하는 부분은 눈여겨볼 만하다. 정 후보가 말하는 ‘중도’가 ‘개혁의 후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치 연정’을 통해 거리를 좁혀가고 있는 문국현-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도 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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