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람’을 원하는 사회, 당신도 ‘펀의 달인’ 입니까?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요즘 서울 건국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재미’를 배우려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재미도 배울 수 있나? 의구심이 들지만, 건국대는 2006년 3월부터 ‘펀 리더십’ ‘웃음치료’ ‘레크리에이션’ 등 ‘재미’를 가르치는 다양한 강좌를 개설했다. 재미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이유는 꽤 ‘진지’하다. 컴퓨터 강사인 성원숙(35)씨는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지난 7월에 이 학교 ‘펀 리더십’ 강좌를 들었다. 성씨는 “재미있어야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을 하고, 인기 있는 강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고

바야흐로 재미의 시대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건국대를 비롯해 ‘펀’과 ‘레크리에이션’을 가르치는 연구소와, 엔터테인먼트를 컨설팅하고 대행하는 전문 업체들이 앞다퉈 생겨났다. 올해 들어서는 (진수 테리 지음, 김영사 펴냄), (한광일 지음, 미래북 펴냄) 등 재미와 관련된 경영서, 처세서 등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감성을 중시하는 세대의 ‘펀 트렌드’
광고
‘펀 열풍’이 부는 이유는 뭘까. 한광일 웃음센터 원장은 “계속 이어지는 경기침체 등 우울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재미와 웃음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선 건국대 평생교육원 교수는 “기성세대가 일과 소속감을 통해 존재 가치를 인식하던 것과 달리, 감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은 재미, 보람 등 행복과 관련된 상위 욕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펀 트렌드’는 계속 확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J. 울프는 21세기 경제의 특징을 ‘엔터테인먼트 경제’로 규정한다. 오락, 레저,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중심 산업으로 자리잡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돼야 성과가 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펀’은 보편적인 경영 코드로 자리잡았다. 우리은행은 영업점의 분위기를 밝게 바꾸고 고객에게 친절하고 재미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펀 경영’을 도입했다. 전국 각 지점에 있는 직원들 중 평소에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끼 많은 직원 41명을 엄선해 ‘레크리에이션 강사 2급 자격증’을 따도록 해 은행의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문인력으로 양성하고 있다. 삼호중공업은 2005년부터 각 부서 내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활기 프로듀서’를 양성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재미있는 38명의 직원을 ‘활기 프로듀서’로 선정해 유머진단, 펀 리더십, 펀 직장 만들기 등의 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한다. 활기 프로듀서들은 각 부서로 돌아가 조직 내 웃음과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벤트 전문 신입사원’ 인기폭발
‘펀 시대’에 높은 ‘엔터테인먼트 지수’(Entertainment Quotient, 이하 엔큐)는 성공의 필수조건이 됐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개인기’가 곧 경쟁력이다. 엔큐(EnQ)는 단순히 웃기는 유머보다 개념의 범위가 넓다. 정호열(28)씨는 조직에서 엔터테인먼트 능력으로 ‘뜬’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한 정씨에게 붙은 별명은 ‘이벤트 전문 신입사원’. 이벤트와 전혀 상관없는 식품영업팀에서 일했지만,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 마련된 행사 때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해 얻게 된 별명이다.
광고

몸뻬 바지, 빨간 스타킹 등 엽기적인 옷을 입고 신나는 유행가를 부르며 개그맨 유재석이 유행시킨 ‘둘리 춤’ ‘꼭두각시 춤’ 등 온갖 망가지는 ‘막춤’을 추며 무대를 누볐다. 또 문화방송 쇼 프로그램인 을 패러디해 ‘신세계 무한도전 팀’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귀신의 집 귀신에 도전하기, 가수 이효리와 악수하기 등 갖가지 도전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화이트데이 때에는 ‘키다리 아저씨’로 분장해 ‘훈남 정호열과 영화를 볼 수 있는 당첨권이 들어 있는 사탕’을 여성 사원들과 고객들에게 나눠줬다. 끼와 창의성을 인정받은 정씨는 입사 6개월 만에 식품영업팀에서 인사부 조직활성화팀으로 배치됐다.
엔큐가 높은 사람은 입사할 때에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12월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채용하고 싶은 인재 유형’을 물었더니 77%가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용하기를 원했다. 신입사원 면접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우림건설 김종욱 상무는 “면접 때 심사위원들의 배꼽을 잡을 정도로 활발한 개인기와 유머를 보여준 응시자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면접 점수가 후할 수밖에 없다”며 “입사 후에도 이런 사원들이 조직 적응력이나 업무 성취도가 뛰어나 재미있는 사원들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훈(28)씨도 자신만의 개인기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대한주택공사에 지난해 10월에 입사할 수 있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기 위해 면접시험에서 최씨가 준비한 것은 동전 마술. 500원짜리 동전이 손바닥만큼 커지자, 면접을 하느라 지쳐 있던 심사위원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당시 면접관이었던 한 임원은 최씨에게 농담 삼아 “마술하는 게 재미있어서 뽑았다”고 말하곤 한단다. 최씨의 마술은 입사 뒤에도 빛을 발했다. 전체 회식 때 그의 마술을 본 건축총괄팀 팀장은 그를 만날 때마다 다른 직원들 앞에서 칭찬하며 “시간 날 때 우리 팀에 놀러와서 차 마시고 가라”고 정겹게 대한다.
웃긴 얘기도 그가 하면 왜 썰렁한지
그러나 사회가 엔큐가 높은 인재를 요구할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보기술(IT) 컨설팅 업체에 다니는 박아무개(30)씨는 회사에서 내성적이고 썰렁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평판에는 굉장히 예민하다. “혹시 인사 평가에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을까 고민이 됐다”는 박씨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성대모사를 연습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미있는 유머를 찾아 외워서 사람들에게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웃기는 얘기도 그의 입 밖으로 나오면 싸늘하게 식었다.

최사무엘(27)씨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재미있게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낀다. 몇 달 전 이직을 하면서 이런 강박관념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들으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호감을 얻을 수 있고,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낮에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난 뒤 밤에는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코믹 댄스를 춘다. 게임을 좋아하는 입사 동기와는 새벽까지 게임을 하기도 한다. 녹초가 된 그의 몸은 퇴근 뒤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 여자 동료들과 소통하기 위해 놓친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려다 삶이 고달파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펀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진수 테리(52·한국명 김진수)씨도 한때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7년 동안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이 왜 재미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됐는지 냉정하게 분석했다. “펀(fun)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재미있어야 조직 구성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고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때부터 진수씨는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을 벗었다. ‘컷루스’라는 의류 회사에 입사한 뒤에는 회사 직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매달 이벤트 파티를 열어 다국적 직원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었다. 젊은 흑인 친구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힙합’과 ‘랩’도 배웠다. 다음과 같은 랩송의 가사도 직접 작사했다. “난 달러 몇 푼 들고 이 나라에 왔지. 사람들은 나를 애송이라고 얕봤지만 나는 해냈지. 꿈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지. 진수가 한다면 당신도 할 수 있어.”
통통하고 눈 작은 중년의 동양 여성이 열심히 힙합을 추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서먹한 사람들 사이를 좁혀주고, 힘들고 지친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는 춤과 노래만 한 것이 없어요. 힙합 공연은 언어와 문화의 벽을 허물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입니다.”
조직의 엔터테이너로 변신한 진수씨는 ‘컷루스’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는 소수민족을 격려하고 희망을 준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1년 7월10일을 ‘진수 테리의 날’로 선포했다. 같은 해에 미국을 대표하는 100대 여성 기업인에 선정됐고, 2005년에는 미국 〈ABC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아시안 지도자 11인’으로도 뽑혔다.
“자극적 흥밋거리만 찾아서는 안돼”
그러나 지나치게 ‘재미’만 강조하는 세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재선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텔리비전을 보다가 재미없는 내용이 나오면 바로 리모컨을 누르고 인터넷을 할 때도 재미있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재미는 없지만 중요한 얘기들은 도외시되고, 바로 웃음이 터질 수 있는 자극적인 흥밋거리만 찾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자기를 비하하는 것도 왜곡되고 공격적인 ‘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상에 찌들어 즐겁지 않은데도 ‘재미있어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재미있어지고 싶다면? ‘펀’의 달인들이 제안하는 ‘엔큐 높이는 방법’에서 길을 찾으시라(상자기사 참조).
![]() | ||||
![]() | 잘난 척 버리고 엽기 본능 살려라 |
1. 웃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이재선 교수는 “뒹구는 낙엽 속에서도 재미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 잠자고 있는 엽기 본능을 깨워라. 정호열씨는 “사람마다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이 있다”며 “어릴 때 개미 똥구멍을 훑던 엽기 본능을 되살리면 재미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3.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 말라. 진수 테리씨는 “한국은 사회·문화적 특성상 체면과 위신을 너무 따진다”며 “쓸데없는 권위를 버려야 신나는 노래도 부르고, 코믹 댄스도 출 수 있다”고 말했다.
4. 자신감을 갖는다. 용혜원 유머·자신감 연구원 원장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유머의 가장 큰 적”이라며 “자신감이 있어야 적절한 타이밍에 상황에 알맞은 재밌는 말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5. 자신을 낮춰라. 정호열씨는 “재미있으려면 잘난 척, 있는 척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없어 보이고, 겸손해야 상대방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될 수 있다.”
6. 자기만의 개인기를 살려라. 최지훈씨는 “성대모사든 마술이든 자신이 잘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기를 찾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고 말했다.
7.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억지로 유머를 쥐어짜다가 실없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진지하고 과묵한 사람이라면 그 콘셉트를 애써 바꾸려 하지 말고 거기서 출발하라. 자연스러워야 유머가 산다.
8. 펀 정보를 수집하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각종 매체나 인터넷 등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찾아 유머감각을 익힌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재미있는 말을 던질 수 있다. 그때부터 ‘은근히 재밌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9. 거울을 자주 보라. 다양한 개그맨의 표정을 따라해보거나, 재밌는 광고 장면을 패러디한다.
10. 배려하라.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해야 상대의 눈높이에 맞는 엔터테인먼트를 선보일 수 있다.


![]() | ||||
![]() | 보디랭귀지는 힘차고 명랑하게 |
얼굴 표정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 한 사람에게는 웃지 못하도록 입술로 펜을 물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웃을 수밖에 없도록 이로 펜을 물고 있게 한 뒤 똑같은 만화를 보게 하면, 웃는 표정을 지은 사람이 만화를 더 재미있게 본다고 한다.
(김영사 펴냄)에서 진수 테리는 재미있는 사람을 이렇게 정의한다. △재미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은 일단 철면피처럼 낯이 두꺼워야 한다. 마음속의 거리낌이나 두려움, 소심한 생각 따위는 떨쳐버리자. △재미있는 사람은 분위기를 장악한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있으면 장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감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진수 테리의 귀띔이다.
1. 부정적인 단어는 쓰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마라.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긍정은 또 다른 긍정을 낳는다.
2. 약점을 숨기려 하기보다 장점을 보여주라.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자기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에, 어떻게 하면 나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낼지 연구하라.
3. 변화와 모험을 즐겨라. 새로운 상황, 낯선 환경이 닥치면 두려워 말고, 그 속으로 몸을 던져보라.
4. 보디랭귀지를 힘차고 명랑하게 하라. 몸동작이나 표정을 밝게 하면 마음과 생각도 긍정적이 된다. 활기찬 사람처럼 보이면 활기찬 사람이 된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전문] ‘윤석열 파면’ 헌법재판소 결정문 ①
[결정문 분석] ‘5 대 3의 희망’ 정형식·김복형·조한창도, 파면에 이견 없었다
‘불소추특권’ 잃은 윤석열…형사 법정 여기저기 불려다닐 처지에
‘윤석열 파면’에 길에서 오열한 김상욱 “4월4일을 국경일로”
헌재 “야당 입법독주? 거부권 행사했는데”…윤석열 파면 ‘핀셋 판단’
‘가시방석’ 떨쳐낸 대구 시민들 “묵은 체증 내려가…힘든 지형 체감”
극우에 길 터준 ‘윤석열의 1375일’, 비용은 국민 몫으로 남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명문”…헌재 선고 요지 칭찬 릴레이
윤석열 파면에 “아이고, 나라 망했다”…전광훈 “내일 3천만명 모이자”
오늘부터 다음 대통령 예비후보 등록…6·3 대선 유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