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문제적 뇌] 지나치게 친근한 것도 병

등록 2007-10-05 00:00 수정 2020-05-03 04:25

구라남, 깔깔녀, 폭력남, 중독녀… 각종 ‘문제적 인간’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뇌 전문가 김종성 박사(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과장)는 “당신의 배우자가 오늘 당신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해도 용서하라, 그의 뇌는 신경 전달 물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인간의 성격과 행동은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지만, 뇌의 구조나 신경 전달 물질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김 박사의 책 (사이언스 북스 펴냄)는 각종 ‘문제적 인간’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뇌졸중 후, 괜히 웃는 환자

측두엽 간질 환자들 중에는 성격이 지나치게 친근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평소 말을 장황하게 반복해서 한다. 언어 중추가 있는 왼쪽 뇌에 이상이 생겨 단어 선택 능력이 크게 저하된 탓이다. 자주 사람을 방문하고 실례되는 시간에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과 자꾸 신체적으로 접촉하려는 경향도 있다. 글을 쓸 때는 지나칠 정도로 자질구레하게 묘사하고, 밑줄을 긋거나 괄호를 쳐댄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도 이상으로 심각하고 진지하고 유머가 없으며 종교에 깊이 빠지기 쉽고, 대체로 성욕이 감소된다. 측두엽의 신경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활성화된 결과이다. 반대로 변연계 회로가 절단되는 등 측두엽이 손상된 이들은 성욕과 식욕이 강해지고 주변 동료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일명 ‘클루버부시 증후군’으로 측두엽 간질 환자와는 반대되는 증상이다.

52살 여성 환자 ㅈ씨는 뇌졸증을 앓은 뒤 팔다리 마비 증세가 왔다. 마비는 나아졌지만, 새로운 증세가 생겼다. 괜히 웃는다. 친척이 면회를 오거나 담당 의사가 병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깔깔 웃는다. 손만 잡아도 웃는다. 재활 센터에서 운동 치료를 받는 다른 환자들을 봐도 웃음을 터뜨려, 늘 쫓겨나다시피 병실로 올라올 정도이다. 우스운 일이 아닌데도 웃는 현상을 ‘병적 웃음’이라 한다. 이런 감정 조절 장애는 뇌졸증 환자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거꾸로 평소 울지 않던 이가 엉엉 울기도 한다.

김 박사의 외래 진료 환자 가운데 뇌졸중 환자의 34%가 감정 조절 장애를, 18%가 우울증 증세를 나타냈다. 감정 조절 장애자의 MRI 사진을 보면 전두엽, 기저핵, 뇌간 등이 손상된 걸 발견할 수 있다. 뇌의 신경 전달 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 수용체가 풍부하다고 알려진 부위들이다. 뇌졸중 환자의 32%는 충동적이고 화를 잘 내고 안절부절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들의 뇌 손상 위치도 감정 조절 장애를 일으키는 부위와 거의 같았다. 당신이 가끔 화가 나고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것은 일이 잘 안 풀려서가 아니라 어쩌면 뇌의 세로토닌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남성의 공격성은 어릴 때부터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임신 6일 만에 수태된 수컷 쥐를 거세하면 그 쥐는 어른이 돼 일반적으로 다른 수컷 쥐들이 갖는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남성 호르몬을 주입하면 비슷한 공격성을 보인다. 남성 호르몬이 공격성과 비례하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혈중 남성 호르몬 수치는 공격적이고 우세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높다. 이런 공격성은 암컷이라고 비켜가지는 않는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암컷이 특별히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수컷과 함께 생활하는 사회에서 직접 남을 공격하는 것보다 차라리 우세한 수컷을 택하는 전략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일단 공격성을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중독도 유전적 차이에 따라

공격성 혹은 범죄 성향은 어느 정도 유전적일까? 1993년 소개된 네덜란드의 한 가계는 한마디로 ‘구제 불능 가족’이었다. 그 집안의 거의 모든 남자는 방화범에서 강간 미수범까지 다양한 범죄자였다. 학자들은 이 가족에게 모노아민 옥시다아제라는 효소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유전자는 뜻밖에도 X염색체에 있었다. 하지만 이 유전자가 공격성, 범죄와 관련된 유일한 유전자는 아니다. 전두엽은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기관으로 ‘뇌의 경찰’에 해당한다. 전두엽의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은 고삐 풀린 말처럼 난폭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전두엽 기능 저하설은 세로토닌 저하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세로토닌 시스템에 장애가 초래돼 공격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인간의 복잡한 범죄 행동에 바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범죄자의 책임인가 하는 복잡한 법적 문제가 생긴다. 그리스 신화의 장님 예언자 테레시아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운명을 말하기 전 왕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지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지혜롭다는 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영화 에서 텔리비전 토크쇼를 광적으로 시청하는 사라는 사기꾼에게 속아 자신이 토크쇼에 출연할 것이라고 믿는다. 출연 전까지 늘어난 뱃살을 줄여야 하므로 마약 성분이 있는 살 빼는 약(암페타민으로 추정됨)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출연 요청은 오지 않고 약물 중독에 폐인이 돼 버린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에 귀신 같은 몰골로 방송국에 나타나 자신이 출연할 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

마약과 같은 담배, 알코올, 육식

중독은 한 개체가 어떤 물질에 노출된 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물질의 공급을 지속적으료 요구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중독 물질이 뇌에 끼치는 영향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신경 전달 물질의 변화이다. 도파민, 세로토닌, 니코틴, 글루타민, 카나비노이드 등 중독 물질로 인한 뇌신경 전달 물질의 변화는 사람마다 다르며 유전적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알코올 중독자 부모를 둔 자식이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확률은 40~60%로, 마약 중독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카나비노이드는 마리화나에서 추출된 중추신경 자극물질(THC)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풀에 불과한 대마초가 인간의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다니. 을 쓴 마이클 폴란은 대마초는 결국 이 ‘비슷한 물질’로 인간을 유혹하고, 인간이 자신을 재배하도록 하여 결국 전 세계적으로 번성하려는 책략을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약은 신경 세포에 새로운 물질도 만들어낸다. 더 이상 마약을 주지 않아도 이 ‘새로운 물질’은 증가된 상태로 신경 세포에 남는다. 중독자의 뇌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과 기쁨은 생존에 합목적적일 때 자연스럽다. 하지만 마약의 즐거움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마약과 같은 효과를 가진 것은 담배와 알코올, 육식 중독. 캐나다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흡연을 하려면 차라리 마리화나를 피우라고 설득한다고 한다. 육식 중독증에 걸린 영미권 사람들이 전 세계 농경지를 소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바꾼 것은, 간접 흡연처럼 남에게 지대한 피해를 끼치는 짓이다.

인간은 여러 문제적 행동을 하지만, 예술과 종교를 논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김 박사는 “이 모든 게 유전자의 전략일지 모른다”고 한다. ‘문제적인’ 것은 뇌가 아니라 유전자일까.



찬바람이 불면 감자칩이 먹고 싶다

감정적·사회적 행동에 중요한 세로토닌의 비밀

성인의 4~6%는 찬바람이 불면 우울해진다. ‘계절 우울증’이다. 이들은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 음식(감자칩, 파스타, 빵, 사탕, 과자 등)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탄수화물이 세로토닌의 원료가 되므로, 뇌의 부족한 세로토닌을 보충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이런 음식을 찾는 것이다. 아이가 틈만 나면 아이스크림과 빵을 먹으려 든다면, 의심해볼 일이다. 이왕 먹는다면 과자보다는 과일이 낫다. 과일 속의 당분은 과당 상태이므로 과자 속의 포도당보다 서서히 흡수된다. 인슐린 분비도 비교적 천천히 일어나므로 호르몬 교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뇌에서 식욕이나 잠을 조절하는 부위는 시상하부. 겨울에는 시상하부의 세로토닌 수치가 떨어진다. 세로토닌이 지나치게 적으면 우울한 기분과 함께 비정상적인 식욕과 잠이 유발된다. 약제 처방도 한 방법이겠지만, 밖으로 나가 햇빛만 봐도 세로토닌 양이 증가된다.
세로토닌은 영장류 및 인간의 감정적·사회적 행동에 중요한 신경 전달 물질로, 작용하는 뇌의 부위와 수용체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 뇌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복잡한 시스템을 이룬다. 세로토닌이 생명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 원시 생명체의 기본 행동을 조절하던 세로토닌은 생물이 진화하면서 작용 범위를 넓혔을 터. 진화한 동물일수록 사회적 관계 설정이나 짝짓기 혹은 다른 동료와 관계 맺기 등의 행동이 발달했는데, 세로토닌이 이런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보인다. 원숭이 사회에서 척수액에 세로토닌의 양이 적은 원숭이가 대체로 사회적 계급이 낮다는 연구도 있다. 뇌의 세로토닌 양을 높여준 수컷 원숭이는 암컷과 자주 교미하며 인기도 높아졌다.
정신과 환자들 가운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환자들이 높은 환자들에 견줘 자살 시도가 더 많다고 한다. 이런 행동장애를 뇌의 세로토닌 저하로 설명하기도 한다. 콜레스테롤을 적게 먹은 원숭이의 척수액에서는 세로토닌 대사 산물이 현저히 적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학에서는 지방질 섭취가 적은 부족이 전쟁을 오히려 더 많이 일으킨다고 얘기한다. 세로토닌 저하에 따라 동물성 음식을 구하려는 본능으로 과격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에 따르면 히틀러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것도 그냥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