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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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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어 감옥에 안 가도 되는군요”

등록 2007-10-05 00:00 수정 2020-05-03 04:25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서 만난 사람들 “너무 감사해 듣고 오랫동안 울었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빗줄기가 제법 거셌다. 그 비를 뚫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지난 9월19일 저녁 7시께, 서울 신촌 서강대 정문 맞은편 주택가 한켠에 자리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선 주례 ‘수요 집회’가 막 시작될 참이었다. 십자가 하나 없이, 성서 한 구절이 적힌 액자만 단출하게 내걸린 실내는 예배당이라기보다 ‘마을회관’을 연상시켰다.

21살 대학생의 함박웃음

“지금 2학년 마치고 잠깐 휴학 중이다. 2009년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할 계획이라던데….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졸업을 할 때쯤이면 감옥에 가지 않고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대학생 백현우(21)씨는 연방 함박웃음을 흘렸다. 전날 국방부가 종교적 이유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허용 방침을 밝힌 직후여서인지 조금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곁에 선 어머니 안영순(46)씨가 말을 받는다.

“아들 형제를 뒀다. 둘째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들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도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걱정이 계속 커졌다.” 안씨는 “생각보다 빨리 대체복무가 허용돼 반갑기만 하다”며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 가족모임’이 조사해 내놓은 ‘역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선고형량’ 자료를 보면, 1950년부터 2006년 5월31일까지 파악된 병역거부자는 1만2324명으로, 이들에게 선고된 형량은 모두 2만5483년에 이른다.

안씨의 남편 백재왕(47)씨는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2년 종교적 양심이 시키는 대로 병역을 거부했다. 보충역 판정을 받고 육군 60훈련단에 입소한 그는 “차마 총을 들 수 없다”고 교관에게 밝혔다. 수도군단 헌병대 영창으로 옮겨져 항명죄로 군사재판을 받았고, 지루한 재판 끝에 2년형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백씨는 “특이하게 현역병이 아닌데도, 재판이 계속 연기되면서 헌병대 영창에서 6개월이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광주의 함성을 총칼로 무지르고 집권한 군부가 ‘삼청교육’에 열을 올리던 무렵이다.

“영창에선 매일 엄청난 폭력이 난무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일을 다 당했다.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군에서 가해지는 기합이나 얼차려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대로 다 맞다가는 사람 목숨이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때 당해서 늑막염 등 각종 질병에 걸리거나, 수감생활을 마친 뒤에도 신체적 장애를 겪은 친구들이 제법 많다.” 백씨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그는 “대체복무가 허용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감사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명절 때마다 “자식도 감옥으로 보낼 것이냐, 너 하나로 고통을 끝내야 하지 않느냐”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그였다. 그의 부친은 수감 기간 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아들의 면회를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양심을 지켜가면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아들이 대를 이어 감옥에 가지 않게 된 것에 대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

오랜 세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총 들기를 거부하는 것은 ‘생명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란 성서의 가르침 때문이다. 야만의 제국주의 강점기와 무한 폭력의 군사독재 시대를 견뎌내는 동안 그들의 믿음은 종종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그렇게 한 세기를 보내고 다음 세기를 만나서도 고난의 세월은 끝날 줄 몰랐다. ‘양심’을 꺾지 않은 그들에게 찍힌 ‘전과자’와 ‘광신도’란 사회적 낙인은 사라질 줄 몰랐다.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다.

“시간이 갈수록 국방부 발표의 의미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입법화를 포함해 많은 과정이 남아 있지만, 주무부처에서 대체복무 허용 방침을 발표한 것 자체의 무게감이 크다.” 여호와의 증인 수형자 가족모임의 홍영일(42)씨는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한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국방부의 발표 이후 벌써부터 일부 지역에서 재판 기일 연기 조치가 나오는 등 입법화를 앞두고 가시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인 병역거부자만도 90명, 이 가운데 절반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처우는 한 사회의 인권지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가해진 차별과 폭력은 우리 사회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피해의식’이 왜 없었을까? 홍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러니 (병역거부로 투옥되는 건) 한국에서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일부다. 이런 생각이었다. 이웃나라 대만의 병역거부자들은 훨씬 가혹한 상황이었다. 12~13년형을 선고받곤 했다. 중국이란 큰 나라와 맞서고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을 도리어 많이 했다.” 그런 대만도 지난 200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주면 여호와의 증인으로 개종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개신교 일부에선 국방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대체복무제 도입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라고 비난하고 있다. 기우다. 1997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그리스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인 1996년 모두 2만6613명이었던 그리스의 여호와의 증인 신자는 도입 첫해인 1997년 2만6990명으로 1.4% 늘었다. 이듬해인 1998년엔 2만7300명으로 1.2% 다시 늘었지만, 1999년엔 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현재 그리스의 여호와의 증인 신자는 모두 2만9047명이니,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 늘어난 신자는 2434명에 불과하다.

“글쎄….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체복무제가 허용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볼 게 다름 아닌 법무부다.” 지난 9월19일 밤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수도권 지역의 한 교정시설 간부가 농담처럼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모범수 수준이 아니라 ‘특급수’다. 제 발로 감옥으로 온 사람들이 아닌가. 교정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취장(식당) 등 일반 제소자들이 기피하는 일은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들 몫이다.” 또 다른 교정시설 관계자가 말을 더했다.

“예전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일단 입영을 한 뒤 집총을 거부했다. 그래서 항명죄로 군사재판을 거쳐 민간교도소로 이감됐다. 하지만 최근엔 입영 자체를 거부하고 민간재판을 받는다. 때문에 구속된 뒤 미결수 신분으로 구치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판결이 나와 형이 확정된 뒤에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구치소에 남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구치소 입장에선 여호와의 증인 같은 훌륭한 ‘자원’을 기결수라는 이유로 교도소로 이감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체복무를 수행해왔는지도 모른다.

기피하는 일은 대부분 그들의 몫

“드디어 됐구나 싶더라. 조금만 일찍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변봉순(51)씨의 외아들 박동수(25)씨는 넉 달 전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병역법 위반으로 올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게 지난 5월11일이다. 그는 아들이 실형을 선고받은 내용을 정리해 유엔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으로 자료를 모으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 감정 안 겪어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가족이 ‘중립’(병역거부 선언)을 지키기 위해 재판받고 수감되면, 그러려니 했었다. 막상 내 자식이 그 일을 겪게 되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기쁜 듯, 착잡한 듯 말을 잇는 변씨에게 “아들의 조기 가석방과 사면복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잠시 숨을 고른 변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사실 마음을 여는 문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게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 그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마음을 열어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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