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안고 넘어온 히말라야를 다시 넘을 날은 언젤까, 자왈라켈 난민촌의 노인들
▣ 포카라(네팔)=사진·글 임종진 사진기고가 stepano0301@naver.com
남키 할머니는 여든다섯 살입니다. 난민촌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또래인 옆집 할머니와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눈이 살짝 마주쳤습니다. 머쓱하게 인사를 건넸더니 빙긋 웃어줍니다. 우람한 체구의 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큼지막한 손을 펄럭입니다. 냉큼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세간도 많지 않은 단출한 벽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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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불편하거나 어색한 이유일 턱은 없었지요. 손가락으로 나이를 가늠해 서로 알려주면서 그걸로 헤헤거리며 웃습니다. 신경통이라도 있는지 조금 절뚝이는 할머니는 툭 트인 부엌으로 가서 쭈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무슨 봉지를 주물럭거리더니만 주황빛 차 한 잔을 덜썩 내려놓았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손님을 위해 내온 따스한 손길입니다. 마셔보니 뜨거운 오렌지 주스입니다. 어릴 적 무더운 여름날이면 엄마 몰래 살짝 꺼내 얼음을 섞어 타마시곤 하던 가루로 된 그 오렌지 주스랑 같았습니다. 이젠 보기도 어렵지요. 그런데 뜨거운 물에 휘저어 내준 오렌지 주스가 왜 그리 시원하고 달콤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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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의 자왈라켈 티베트 난민촌.
그곳에서 만난 남키 할머니는 종종 창밖 허공을 바라보며 표정이 굳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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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어린아이를 안고 눈 덮힌 히말라야를 넘어온 게 벌써 50년 전이라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주워들었습니다. 고향이 그리운 것인지 이젠 삶을 다했을 두고 온 부모님 생각 때문인지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마을을 돌아보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물레질을 하거나 우리의 염주와 비슷한 마니차를 돌리며 앉아 있는 칠십, 팔십 넘긴 노인들이 지천입니다. 이 마을을 벗어나 어디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습니다. 힘이 좀 남으면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사원을 찾아 시계방향으로 몇 바퀴를 돌면서 중얼중얼 경전을 외웁니다. 저녁이면 마을회관을 찾아 여럿 노인들과 섞여 두런두런 하루를 채워 보냅니다.

언젠가는 고향 땅에 돌아갈 수 있겠지.
가슴에 품어 기대하고 이제나저제나 짐을 쌀 준비도 되어 있는데 세월은 깊은 주름 한 줄 하나 더 남기고 오늘도 하루를 받아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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